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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번역되는 작품들이 작가가 발표한 순서와 달라서 독자에게 불안감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정말 이렇게 아무렇게나 읽어도 되는 걸까?' 순서가 정말로 중요한 작가도 확실히 있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겠습니다.1. 레이먼드 챈들러: 필립 말로는 흔들림 없는 인물이긴 하지만 조금씩 달라지고 신념에 회의를 품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특히 <리틀 시스터>와 <기나긴 이별>은 앞의 작품들과 상당히 다릅니다. 따라서 읽기에 따라 첫인상이 많이 달라지지요. 전 <안녕 내 사랑>을 처음에 읽고 그 다음에 <기나긴 이별>을 읽었더니 실망스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젊고 팔팔한 말로가 왜 이렇게 지치고 감상적이고 느끼하게 되었는가 하고. 해설과 교열 일을 하면서 다시 순서대로 읽었더니 변화가 이해가 가더군요. 그 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좋고, 정 안 되면 최소한 <리틀 시스터>와 <기나긴 이별>은 좀 나중에 읽는 것이 좋습니다.
2. 로스 맥도널드: 딴 건 몰라도 <움직이는 표적>과 <마의 풀> 같은 초기 작품과 <위철리 여자>, <소름>, <순간의 적>, <지하인간> 같은 중, 후기 작품은 구별해야 합니다. 사실 중후기 작품을 읽다가 초기 작품을 읽으면 신선한 느낌을 받을 수 있긴 합니다. 상반기와 하반기 작풍과 탐정의 모습이 꽤 달라지기 때문에 상반기만 읽고 평가를 내린다거나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반기 작품들이 더 걸작의 풍모를 갖고 있습니다.
3. 엘러리 퀸: 라이츠빌 시리즈 이전과 이후를 구별해서 읽어야겠지요. 가급적이면 국명 시리즈 등을 먼저 읽고 라이츠빌을 읽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라이츠빌의 다소 무거운 분위기와 중후한 엘러리를 보다가 국명 시리즈의 가볍고 경박한 엘러리를 보면 실망할지도 모르지요. 딴 건 몰라도 <열흘 간의 불가사의>와 <꼬리 아홉 달린 고양이>는 순서대로 읽어야 합니다.
4. 크리스티: 크리스티는 사실 순서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만 가끔 몇 작품은 순서를 가릴 필요가 있습니다. 유명한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과 <커튼>은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으로서 연결되기 때문에 순서대로 읽어야 좋습니다. <할리 퀸> 다음에 <3막의 비극>을 읽는 게 좋고. 토미와 터펜스 시리즈는 <비밀 결사>를 처음에 읽어야 합니다. 젊고 팔팔한 연인이 다정한 노부부로 변해 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 좋겠죠.<오리엔트 특급>을 읽은 다음 <죽음과의 약속>을 읽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후자에서 전자를 언급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화요일 클럽의 살인>을 마플 시리즈 중에서는 처음에 읽는 것이 좋긴 하군요. 여기서 마플 할머니가 초라한 듯 시치미를 떼고 등장해서 점차 입을 벌리게 하니까요.5. 체스터튼: 브라운 신부 시리즈도 은근히 순서가 중요합니다. 적어도 <동심> 또는 <결백>은 처음에 읽어야 합니다. <푸른 십자가>와 <비밀의 정원>도 반드시 차례대로 읽어야 하고요. 그리고 신부에게 매번 잡히던 플랑보가 나중에 탐정이 되는 과정과, 신부와 헤어져 스페인에서 살다가 재회하는 과정이 시리즈가 진행되며 나옵니다. 중간에는 신부가 미국에서 유명인사가 되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6. 아야츠지 유키토: 관 시리즈도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탐정의 이름과 신분이 바뀌기도 하고 작가의 테크닉이 점점 발전하기도 합니다. <시계관>을 먼저 읽었더니 처음에 탐정과 가와미나미의 관계 등이 잘 이해되지 않더군요. 그리고 <십각관>이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고.7. 퍼트리샤 콘웰: 스카페타 시리즈도 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발전해 가기 때문에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저도 많이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http://www.aladin.co.kr/blog/mypaper/6999368. 에드 맥베인: 87분서 시리즈는 여러 형사가 주인공으로 계속 돌아가기 때문에 순서가 꽤 중요합니다. 풋내기 형사로 등장해서 베테랑으로 성장하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 전입하기도 하고. <살의의 쐐기>가 <10플러스 1>에서 농담으로 인용되기도 하므로 순서대로 읽으면 좋지만 책을 구하기가 어려우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9. 밸린저: 이건 좀 다른 의미입니다. 국내에 소개된 두 작품 <사라진 시간>과 <이와 손톱>은 어느 쪽을 먼저 읽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집니다. 먼저 읽은 작품을 더 좋아하게 되거든요. 전 <이와 손톱>을 먼저 읽어서 이 작품을 더 높이 평가합니다. 하지만 <사라진 시간>을 먼저 읽은 분들은 또 <사라진 시간>을 더 높이 평가하지요. 아마도 이 작품이 구하기가 쉬워서 이런 분들이 더 많으리라 봅니다.10. 콜린 덱스터: 요즘 많은 분들이 의문을 표합니다. 해문에서 순서대로 나오지 않는데 정말 괜찮은 거냐고. 지금 확실히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만... 덱스터가 TV 시리즈에 맞춰 인물의 모습이나 설정을 나중에 바꾸었습니다. 독자들이 대부분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스와 루이스의 나이 문제가 이것 때문에 생겼지요. 그리고 모스 경감이 점점 나이를 먹고 병에 걸려 쇠약해져 갑니다. 사실 해문에서 먼저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을 낸 것에 약간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시리즈 중에서도 아주 특이한 것이라 무척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국내 독자들은 대부분 이 작품으로 모스를 만나는 바람에 그 다음에 나온 <숲을 지나가는 길>을 더 낫다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옥스퍼드>는 모스 시리즈의 외전에 가까운 것인데 말이죠.그리고 <숲을 지나가는 길>과 <사라진 소녀>는 매우 흡사하므로 읽은 순서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먼저 읽고 <우드스톡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읽으면 좀 실망할지도 모르고요. <우드스톡>은 시리즈 첫 작품이므로 좀 빈 듯한 느낌이 들지요.
http://www.aladin.co.kr/blog/mypaper/587471이외에도 생각나는 것이 많지만 나머지는 다른 분들께 맡기지요.
-출처: 싸이월드 화요추리클럽 장경헌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