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자줏빛 끝동의 비밀
Mulan 2025/04/0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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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줏빛 끝동의 비밀
- 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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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줏빛 끝동의 비밀](지혜진, 다른)
-스포일러 주의
이 책은 주인공의 심리 묘사와 인물들의 말이 인상적이다. 어쩌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매료되었다. 밑줄을 얼마나 그었던지.
표지에 나오는 인물은 단종(노산군)의 아내인 정순왕후다. 책에서는 군부인으로 나온다. 자줏빛 끝동에 수놓인 소나무와 자줏빛 수건에 수놓인 씨앗이 눈에 띈다.
주인공 단오는 얼굴에 화상 자국이 있다. 치료가 되지 않는 시기에 살아, ‘짓무르고 곪아가는‘ 상태에 있었다. 가정 형편도 넉넉하지 않다. 아버지는 아무에게나 돈을 빌렸고, 노름을 했으며, 그나마 일을 하게 해주는 막수 아저씨네 밑에서 일 하나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사고를 치기 일쑤였다. 단오는 늘 아버지가 친 사고 수습에 앞장서야 했다. 단오를 동정하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사고 친 대가가 퉁쳐지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단오의 마음은 착잡하다.
🏷아버지를 불러들인 혜민원 관리는 짓무르고 곪아 가는 내 얼굴을 보고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어린 시절 집에 불이 나 이리 되었다는 아버지의 말에 나는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내 아픔은 왜 누군가의 핑계가 되어야 하는 걸까. 나는 모욕을 온전히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지만 이럴 때는 차라리 그 불이 내 목숨을 앗아갔다면 더 좋았을 거라 생각했다.(45쪽)
단오는 어릴 때의 비밀을 알고 더 비참해진다. 아버지는 집에 불을 질렀고, 어머니는 불길에 휩싸인 단오를 구하지 않았다. 단오를 구한 건 막수 아저씨였다. 부모에게 버림을 받은 것과 다름없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단오는 내 생각보다 더 큰 아픔을 느꼈다.
🏷좁은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를 마주치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버려졌다는 사실보다 그러고도 살아남은 내가 싫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22쪽)
얼굴 때문에 일하기도 쉽지 않지만, 막수 아저씨의 딸 영초와 친하게 지내며 약초꾼이 되어간다. 막수 아저씨는 단종 복위를 위해 일하던 사람들을 도왔기 때문에, 자연히 영초도 단종을 복위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종 복위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며 단종(노산군)은 죽임을 당하고, 군부인은 동네 사람들에게마저 희롱을 당하며 어려움을 겪는다.
🏷˝복위 시도를 하지 않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먼저 가신 노산군뿐만 아니라 군부인께서도 조금은 더 편안하게 지내셨을 수도 있잖아. 옳다고 생각했던 일이더라도 결국 누군가를 망쳐 놓았다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을 수도 있어.˝
옳은 일은 그저 옳다고 믿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버지, 어머니가 옳다고 믿고 행한 일들은 나에겐 옳지 않은 일이 되었다.
˝단오 너, 설마 왕위를 빼앗은 사람들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
이건 왕권이라든지, 왕위의 정통성이라든지 하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다. 가난한 집 어딘가에서 일어난 비극도 이리 버거운데, 어린 왕이 감당해야 했던 비극은 도대체 얼마나 벅차고 무거웠을까?(39쪽)
이 시대의 수많은 ‘옳은 일은 그저 옳다고 믿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 부분이 특별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정치일 것이다. 정의는 행복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고,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행복과 옳고 그름이 섞여 있다. 행복한 것이 곧 옳은 것일까.
누군가를 돕는 행위가 모두 정당화되거나, 옳은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은 갸륵하지만,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그 도움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단종은 도움을 받았으나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감정이 과연 순수하고 맑기만 할까? 받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그저 더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 하는 마음은 도대체 누굴 위한 것일까? 지금까지 사람들의 숱한 동정과 연민의 시선을 받으며 자란 나조차도 정답을 찾아낼 수 없었다.(38쪽)
단오의 아버지는 또 돈을 빌리고 갚지 못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막수 아버지와 친구이면서 적으로 돌아선 청파다. 청파는 단오에게 일거리를 주었고, 군부인이 만든 자줏빛 천을 몰래 가져오면 아버지가 진 빚을 탕감해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청파의 질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독서토론 질문으로 좋은 것 같다.
🏷˝자. 여기 옳은 일이 있고, 꼭 필요한 일이 있다. 딱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너는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이냐?˝(92쪽)
청파의 말을 들어보면, 청파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에 대한 소문을 너도 잘 알 것이다. 나는 본디 천한 출신이었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부를 얻기까지 많은 고비와 위험이 있었다. 나는 동생이 아파 의원에 가야 했고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돈을 빌렸는데 갚질 못했지. 돈을 벌려면 내 양심을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두들겨 맞아 한쪽 눈을 못 쓰게 됐고, 내 동생도 목숨을 잃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난 후 옳고 그름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은 필요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가장 옳은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93쪽)
단오는 멋졌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얻게 되는 결론은 단 하나였다. 누군가를 곤경에 빠트리면서 내가 필요한 것을 얻을 수는 없다는 것. 그런 방법을 쓰지 않고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지키고 필요한 것을 얻고 싶었다. 옳지 못한 방법을 배워 가며 살고 싶지 않았다.(117쪽) 요즘은 누군가를 곤경에 빠뜨리면서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는 것 때문에 양심에 가책을 받을 사람이 적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으면 누군가가 곤경에 빠진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단오는 군부인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생각을 확신하게 되는 것 같다. 🏷˝단오야, 누군가의 수단이 되어 살면 언젠가 세상 모두를 미워하게 된단다. 너는 네 자신의 씨앗이 되어야 해. 너의 싹을 스스로 틔워야 해.˝(118쪽)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씨앗의 모습처럼, 불행의 씨앗을 심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사람이 아파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또다른 불행의 씨앗이었다. 살아남은 나를 보는 일이 어머니에게 그랬을 것이고, 위험에 빠진 영초와 군부인을 보았을 때 내 마음이 그랬다. 소중한 누군가가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 시작은 바로 나 자신이어야 했다. 변덕스러운 계절의 바람을 맞으면서도 끝내 싹을 피워 내는 씨앗처럼 그래야 했다.(143쪽) 그리고 결국, 모두를 지켜낸다. 🏷부모님은 나를 지켜 주지 못했어도 나는 부모님을 내버려둘 수 없었다. 가끔은 나를 부담스럽게 하는 동생들이지만, 그 아이들에게까지 상처를 주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영초 역시 나에게 가족과도 같은 아이였다. 그러니 나도 영초를 지켜야 했다.(120쪽) 너무 가슴 아픈 말이었다. 부모님이 자신을 지켜주지 못했어도 내버려둘 수 없었다는 그 말이.
단오가 이렇게 단단한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씨앗의 운명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씨앗의 운명은 정해진 대로 흘러갔다. 홍화 씨앗을 심으면 홍화가 되고, 지초 씨앗을 심으면 지초가 된다. 바람이 불고, 눈이 오고, 비가 와도 씨앗은 자기 운명을 따라 자랐다. 그 작은 씨앗도 그럴진대, 나 역시 어떤 이유가 있어 이 땅에 발을 붙인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 그 누구에게서도 받지 못한 진짜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81쪽)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까지 이어진 것 같다.
단오는 흔들렸지만 뿌리가 뽑히지 않았고 심지를 굳게 세웠다. 나에게도 그 단단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때로는 뿌리가 뽑힐 것처럼 흔들리는 것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자줏빛 끝동의 비밀]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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