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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광 낙서광
  •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 개브리얼 제빈
  • 16,650원 (10%920)
  • 2023-08-24
  • : 4,197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책 76위이고,

뉴욕타임즈 독자들이 뽑은 순위에서는 7위를 차지한 소설.


제목이 맘에 들어 일단 집어 들었지만 정말 이 책에 대한 정보가 1도 없는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 책이 게임을 만드는 X세대들의 이야기라는 것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스포일러 없이 식스센스를 본 것처럼, 이야기 속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의 메인 캐릭터는 샘슨 메서와 세이디 그린이다.   

샘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외할아버지가 동연, 외할머니가 봉자, 그리고 엄마는 애나 리. 사실상 샘과 관계가 없는 아버지는 부자이자 유명한 백인인 듯하고. 처음에 샘의 이야기를 읽으며 <리틀라이프>의 주드가 떠올랐던 건 샘이 다리가 불편하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교통사고로 다리가 거의 부서지다시피 했던 어린 샘은 병원에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하다가 세이디를 만난다. 세이디의 언니 앨리스가 암투병을 하던 병원에서 말이다. 세이디를 만나기 전 6주동안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던 샘은 세이디와 함께 게임을 하며 대화를 나누게 되고, 이후 계속 만나면서 우정을 쌓아간다. 샘은 그림을 잘 그렸고, 세이디는 프로그래밍에 재능이 있었고, 둘은 각자 친구가 별로 없었다. 그렇게 소울메이트인 것만 같았던 둘의 관계는 샘이 세이디의 배신(?)을 알게 되면서 어긋나고, 보스턴의 지하철역에서 MIT와 하버드 학생으로 다시 만나게 될 때까지 6년 동안 둘은 서로를 모른척하며 지낸다. 

그렇게 우연히 다시 만난 두 사람의 관계를 이어준 것도 게임이다. MIT의 게임 고급과정에서 세이디가 만든 게임. 세이디의 게임을 룸메이트 마크스와 함께 플레이하면서 샘은 세이디와 함께 게임을 만드는 일이 자신이 가장 좋아할 일이라는 걸 깨닫고 세이디를 찾아간다. 그리고 못된 교수놈한테서 깊이 상처받고 우울증에 걸려있던 세이디를 일으켜 함께 게임을 만들자고 설득한다. 

그리고 마크스 와타나베. 부유한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계 미국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마크스는 타고난 배려심과 탁월한 외모를 가졌으며, 샘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샘을 돌봐줄 줄 알았던 친구였다. 샘과 세이디가 만든 게임의 프로듀서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은 이 세 청년이 함께 게임을 하고 게임을 만들고 그 게임이 돈이 되게 만드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이건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애정과 우정, 미움, 다툼, 그리고 인생에서 겪는 온갖 일들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여기 나오는 인간들이 대체로 매우 입체적이라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인간들간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고, 서로 맞닿는 것도 쉽지 않다. 

한없이 똑똑하고 당당하며 씩씩할 것 같은, 캘리포니아의 부잣집 출신 세이디는 이상한 교수놈(으! 도브!!)과의 관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며 자신과 다른(자신보다 나아 보이는) 샘을 질투하고, 그 이유를 샘에게 돌려 돌연 샘을 적으로 삼고, 닥쳐온 슬픔을 오래도록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LA에서 피자가게를 운영하는 가난한 외조부모와 살아온 샘은 다리가 아파 걷기 힘든 장애인이고,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힘든 인생이고 보살핌 받는 것이 싫어도 받아야만 하는 인생을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까? 샘은 세이디보다 더 강해 보인다. 그의 전부와도 같았던 것을 다 잃어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혼자 나서는 샘의 모습, 세이디와 다시 이어지기 위해 끝까지 애쓰는 샘의 모습은 마음을 건드리는 데가 있었다. 

그리고 샘과 세이디는... 서로 사랑하고... 치열하게 싸운다. 아마도 서로에 대한 애정 혹은 우정이 너무 깊었기에,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이해하고 있었기에 생기는 온갖 오해와 다툼이다. 

어릴 적에는 세이디에 대한 샘의 배신감 때문에 절교했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게임 때문에, 사업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서로의 성격과 삶의 가치관이 싫어 오래 안 만나기도 한다. 염려하고 사랑하지만 오해하고 미워하고, 꼴보기 싫어하고.. 서로가 없으면 안되는 영혼의 파트너인 걸 알지만 또한 미치게 미운 원수가 되기도 하는..  우정같기도 애정같기도 한 관계가 오래도록 지속된다. 

두 사람, 혹은 마크스를 포함한 세 사람의 삶과 관계를 보면서 맞아.. 인간이란 이런 존재야..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사랑하거나 혹은 미워하기 보단, 좋아하다가도 갑자기 질투가 나서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 그런 내가 더 미워지거나...  미치게 싫어하다가도 불쌍해지는 그런 마음들이 생기곤 하니까. 인간은 이토록 알 수 없는 존재이니까. 


(세이디는) 샘을 보고 있으면 이치고와 앨리스와 프리다와 마크스와 도브가 보였고, 여태껏 자신이 저지른 모든 실수와 숨겨왔던 온갖 자괴감과 두려움, 그리고 자신이 제일 잘한 일들까지 다 보였다(p228)


그리고 게임. 사실 나는 게임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깝다. 슈퍼마리오 영화는 재미있게 봤지만 동키콩이 뭔지도 모른다(프로게이머를 꿈꾸며 날마다 e스포츠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아들 1,2와 함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게임의 장면들은 게임을 전혀 모르는 내가 해보고 싶을 만큼 생생하고 아름다워서, 잘 쓰인 소설이 이토록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려주었다. 게임은 하나의 예술이며 인생을 대체할 만한 그 무엇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샘과 세이디가 게임의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 미술 작품, 연극의 한 장면, 그리고 많은 문학작품들이다. (물론 일본 애니메이션과 수많은 대중문화들도.) 


"세이디와 내가 만든 게임에 대해 변명은 않겠다.(긴 침묵)우리는 많은 자료를 참고했다 -- 디킨스, 셰익스피어, 호메로스, 성경, 필립 그래스,척 클로스, 에셔.."(p132)


이 책의 제목은 셰익스피어 <내일>의 대사인데, 게임이야말로 이 제목에 부합하는 개성을 가지고 있다. 게임 속에서는 누구나 '다시 살기'가 가능하다. 오늘 내가 실수하고 죽더라도,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고, 그러면 또 내일은 온다. 

인생도 그러하다. 영원한 죽음을 맞는 것만 아니라면 실패해도 내일은 오고, 그러면 우리는 친구와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어제 다시는 보지 말자고 한 친구에게 다시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도 있고. 이 소설은 인생 또한 게임처럼 리셋할 수 있어. 용기를 내.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몇자의 리뷰로는 도저히 다 얘기하기 힘들지만, 복잡하고 입체적이며 몰입되는 소설 한 편을 알게되어 기쁘다. 무엇보다 너무 재미있었다. 마지막으로 게임에 관한 소설을 쓰게 된 작가의 창작의도같은 것이 느껴지는 문장을 적어둔다. 노는 게 젤 좋은 사람으로서 깊이 공감되는 문장이다.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상상하면 저 밑바닥에서 희망이 살짝 느껴졌어. 아무리 세상이 엿같아도 거기엔 반드시 놀이와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어쩌면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영구히 갓난 상태 그대로의 다정한 부분은, 기꺼이 놀고자 하는 의지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사람을 절망에서 구원하는 것은, 기꺼이 놀고자 하는 의지일지도 몰랐다. (p620)




(덧) 

미국에 관한 소설에서는, 미국 사회(미국 사회만은 아니지만)의 고질병인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나오지 않을 수는 없다. MIT에서 공부하고 있고 누구보다 재능이 있는 세이디는 여자라서, 뛰어난 외모에 하버드에 다니며 연기를 하고 싶었던 마크스는 동양인이라서, (그리고 이보다 더 심하게, 샘의 엄마인 애나 리 - 동양인의 외모이며 여자이며 배우였던-가 받았던 그 모멸과 차별은 속이 부글부글 끓게 만들었다.) 오히려  샘은 장애인이며 가난했지만 백인에 가까운 혼혈이었으며 남자였기에 덜 차별받았다는 아이러니도 있다. 미국에서 차별은, 참 체계적이며 촘촘하다. 


여자라는 건 옮을까봐 겁나는 질병같았다. 다른 여자들하고 어울리지 않는 여자는 주류, 즉 남자들한테 넌지시 이런 인상을 줄 수 있었다. 난 재네들하곤 달라.(p52)


불가해하고, 다가가기 어렵고, 신비롭고, 낯설고 기이한 마크스의 특질은--맙소사--그의 아시아성이었고, 그건 영원히 지워지지 않았다. 대학 연극 무대에서조차. 동양인 배우가 맡을 수 있는 역은 그 정도밖에 없었다.(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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