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전체보기

알라딘

서재
장바구니
나의서재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 욕심을 내 본 사람이라면 그 방대함에 기운부터 빠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 레비스트로스, 구조주의, 현상학…. 이것도 알아야 할 것 같고, 저것도 알아야 할 것 같고. 남들은 어느새 저런 걸 다 알았는지. 어렸을 때 책 좀 읽어둘 걸 하는 생각도 들고. 괜히 세련된 교양인 부모 밑에서 자라지 못한 신세를 한탄하기도 한다.

이런 못난 자의식을 단숨에 메워줄 것 같은 책이 시중에 제법 나와 있다. **인의 사상가들, **의 현대사상, 세계를 움직인 *** 사상가, 이런 류의 책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단숨에 커다란 지적 도약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유혹에 사로잡힌다. 나도 그런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여러 권 구입해보았는데 비싼 돈만 낭비하고 활용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왜냐하면 이런 책들은 다양한 사상가들의 사상을 요약하고 저서를 소개하는 형식인데 일단 재미가 없다. 수 십 명의 요약본을 가만히 앉아서 읽고 있기란 상당한 인내를 요하는 일이다. 게다가 읽는다고 해도 각각의 사상가들이 잘 구분되지도 않고 바로 잊어버리고 만다. 또 좀 안다싶은 사람은 너무 간소해서 얻는 게 없고, 모르는 사람은 읽어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류의 책은 여러 권 사봤자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특히 ‘왕도’를 찾을 목적이었다면 일찌감치 맘을 접는 게 좋다.

그래도 추천하고픈 책이 있는데 그것은 민음사에서 나온 <103인의 현대사상>이다. 이 책은 시중에 나와 있는 책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의 사상가를 다루고 있다. 또 민음사 30주년 기념 도서로 기획된 만큼 국내에서 내놓으라 하는 학자들이 이 책에 참여하였다. 다른 서적들은 대부분 외국의 필자가 쓴 책을 번역한 것에 불과한데 국내의 학자들이 우리말로 각 사상가의 사상을 직접 소화해서 썼다는 것은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다. 번역서가 아닌 국내 필자가 직접 쓴 책으로는 최성일의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책동무 논장), 정재왈 기획 <세계 지식인 지도>(산처럼) 두 가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성일의 책은 도서신문에 연재된 만큼 도서안내서의 성격이 짙어서 공부하고픈 학생이 참고하는 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세계 지식인 지도>는 현재 살아있는 소로스, 마르코스, 후쿠야마 등을 다루고 있어 최신 경향을 알아두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직접 참고하기엔 활용도가 낮다.

<103인의 현대사상>은 시기상으로는 맑스, 니체, 베버부터 데리다, 백남준까지 다루고 있고 전공자들이 썼기 때문에 위 두 책의 단점을 잘 극복하고 있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전공인 학부생이 가지고 있으면 좋은 책인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엔 책을 읽다가 잘 모르는 사상가가 나왔을 경우에 다른 책은 거의 거들떠보지 않고 <103인의 현대사상>만 참고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활용한다. 요즘 <철학의 탈주>(새길)를 읽고 있는데 2장은 알튀세르에 관한 것이다. 알튀세르에 일자무식인 나는 『103인의 현대사상』 알튀세르 편을 펼치고 전공자가 꼼꼼하게 쓴 소개를 읽는다. 주요저작과 참고문헌까지 읽으면 ‘내가 알튀세르에 대해 더 살펴보고 싶을 때엔 윤소영의 책을 찾아보면 되겠군’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렇게 한번 훑고 난 후, 그때서야 백승욱의 「루이 알튀세르:비철학적 철학을 위하여」를 읽기 시작한다. 이런 식의 공부방법이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예전에 욕심에 앞서서 폼 나는 책을 구입하고 낑낑대면서 읽고서도 ‘문자만 읽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는데, 이 책은 물에 뛰어들기 전에 심장에 부담을 덜 주기 위한 일종의 준비운동을 시켜주는 셈이다. 준비운동을 하고난 후 뛰어든 물엔 덜 긴장하게 된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진득하게 파고들고픈 학부생에게 권하는 책. 무리하게 한 번에 보려하지 말고 책장에 꽂아두고 있으면 두고두고 써먹을 일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구입할 때 서지사항을 꼭 확인할 것. 쇄를 거듭해서 낼수록 새로 소개되는 저서나 참고문헌이 계속 추가되고 있다. (참고로 2003년 1월에 9쇄를 펴냈음)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