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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자신이 어떻게 이용되기를 원했을까. 『차라투스트라』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나 진정 너희들에게 권하노니 나를 떠나라. … 영원히 제자로만 머문다면 그것은 선생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내가 쓰고 있는 이 월계관을 낚아채려 하지 않는가?”

들뢰즈의 지적대로 니체의 텍스트를 분석 수준에서 논하는 것은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이 아니다. 니체를 가지고 혁명을 꿈꾸는 사람이 니체주의자이며, 그런 의미에서 저자 고병권이야말로 ‘니체주의자’이다.

이 책이 기존의 니체 연구서와 구별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저자는 니체의 눈썹 하나하나, 수염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그려내는 데에 관심이 없다. 대신에 그는 니체의 어떤 얼굴이 우리로 하여금 삶을 사랑하고, 풍요롭게 만드는데 도움이 될까 고민한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그렇다고 이 책이 어설프게 억지주장을 펴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니체가 주목했던 인물들의 사상을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간다. ‘힘’ 개념의 토대로서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을 소개하는 5장,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유전설’에서 영원회귀를 이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6장에서 저자가 얼마나 니체를 치열하게 파고든 연구자인지를 알 수 있다.

1부는 니체의 다양한 개념들을 소개하면서 니체가 병까지도 삶의 상승을 위해서 이용하는, 삶을 사랑하는 철학자였음을 말한다. 개인적으로 주워들은 것이 조금 있어서, 내용 자체가 특별히 새롭지는 않았으나 3장에서 관점주의가 절대주의․상대주의와 같이 ‘분류해야 할 또 하나의 항목’이 아니라 생성이라는 ‘태도의 문제’임을 밝혀줘서 모호했던 부분이 분명해졌다.

2부는 니체의 정치철학이 현재에 갖는 의의를 직접적으로 다룬다. 2부야말로 저자의 색깔이 잘 드러나는 부분인 것 같다. ‘니체는 파시스트다’를 방어하는 기존의 수세적인 태도가 아닌 자신감 있는 태도가 마음에 든다. 니체가 제안하는 ‘더 큰 자아로서 기능하는 신체’는 합리성의 이름으로 훈육된 근대인에게 해방의 전략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베버-근대 허무주의 비판의 딜레마) 정치적인 동물에서 사회적인 동물로 변해버린 인간에게 ‘아곤의 정치’는 정치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청한다. (차이에 대한 회피와 포섭의 정치학) 차이의 아상블라주, 그 전망에 대해서 저자는 생태계와 퀼트를 예로 들고 있다.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감질맛 나는 답변이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는 주문은 또 다른 니체주의자인 ‘들뢰즈’에게 요청하는 편이 빠를 것 같다. 들뢰즈만큼 니체를 ‘혁명적으로’ 이용한 사람은 없으니까. 실제로 들뢰즈는 “미시정치의 관점에서 사회는 탈주의 선으로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다이나마이트’인 니체의 얼굴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한다. 문헌학자가 아닌 ‘철학자’가 쓴 니체 연구서이다. 니체 정치철학의 급진성을 맛보고 싶다면 1부의 3,4장, 특히 2부를 읽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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