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그리고 인류를 사랑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결국 대개의 경우 자신의 삶을 희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나 암살당한 간디처럼 말이다. 그러나 개인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순간 이것은곧 세계를 무화시키는 순간이기도 한 것이 아닌가? 나 자신이 바로 다름 아닌 세계의 주요 성원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방치한 채, 세계의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은 자신이나 세계에 전혀 도움을 주지않는 행위일 뿐이라는 것이 슈티르너의 입장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남은 유일한 대안은 각자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유일자로서 자신의 자유로운 행동을 향유하는 것뿐이었다. 모든 사람이 세계를 사랑하기보다 오히려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면, 놀랍게도 세계는 더욱 사랑스러운 삶의 공간으로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 자신이 세계의 부분이니, 부분이 아름다우면 전체 세계가 더 아름다워지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세계의 평화는 유일자들 각각이 자신의 삶을 향유하면 저절로 찾아오게 된다는 것이 슈티르너의 주요한 관점이었다. 이럴 때라야 유일자들의 자유로운 연대, 즉 슈티르너가 강조했던 ‘국가state나 사회society‘가 아닌 ‘연대association‘ 또한 가능하게 될 것이다. 물론 국가가 부가해놓은 적과 동지라는외적 범주를 거부할 수 있을 때에만, 결국 유일자들의 삶 역시 환원 불가능한 소중한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예수의 방법이 원수인 적마저도 사랑함으로써 적과 동지라는 ‘정치적인 것‘의 범주를 완전히 붕괴시키려고 한것이었다면, 슈티르너의 방법은 동지를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다시 말해- P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