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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그는 스스로 고지식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믿었다. 매우 관습적인데다 모험을 싫어해서, …종말과의 무시무시한 만남? 나는 이제 겨우 서른 넷인데! 망각을 것정하는 일은 일흔다섯에 가서 하면 돼! 그는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유일하게 불안한 순간은 밤에, 해변을 따라 함께 걸을 때 찾아왔다. 힘차게 쿵쿵거리며 밀려들어오는 어두운 바다와 별이 가득한 하늘 때문에 피비는 환희에 젖었지만 그는 겁을 먹었다. 수많은 별은 그가 죽을 운명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바로몇 미터 밖에서 천둥소리를 내는 바다-그리고 광기에 사로잡힌 물 밑의 검디검은 악몽 - 와 만나면 망각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그들의 아늑하고, 환하고, 가구가 별로 없는 집으로 달아나고 싶었다. 한국전쟁 직후 사나이답게 해군에서 복무할 때는 광대한 바다와 커다란 밤하늘을 이런 식으로 경험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런 것들이 한 번도 조종(弔鐘)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그는 도대체 이런 공포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으며, 안간힘을 써야만 피비에게 그것을 간신히 숨길 수 있었다.
오랜만에 비로소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이 순간에 왜 내가 내 삶을 불신해야 할까?
차분하게, 똑바로 생각해보면 앞으로 훨씬 더 견실한 삶이 남아있는 것 같은데, 왜 내가 소멸의 가장자리에 있다는 상상을 할까?-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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