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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ungs Bookshelf
  • 호모 파버
  • 막스 프리슈
  • 12,600원 (10%700)
  • 2021-07-30
  • : 320
<<호모 파버와 호모 루텐스 사이>>

 

 

 

 

 

 

​​유네스코의 개발도상국 개발담당 엔지니어 발터 파버. 뉴욕의 라과다이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멕시코 황무지에 불시착하는 사고를 겪는다. 옆 자리에 있던 승객 헤르베르트가 오래전 자신의 친구 요아힘의 동생이고, 요아힘이 두 달 전부터 연락이 끊겼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거기에 요아힘이 자신의 과거 연인이던 한나 란츠베르크와 결혼했으며 아이가 있었다는 것도 함께. 이후 유대인인 한나가 안전할 방도로, 임신한 아이에 대한 책임에 대한 방책으로 청혼했다가 헤어지게 된 한나 란츠베르트와의 과거를 회상한다.  현재 애인에게서 도망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파리행 출장으로 타게 된 크루즈에서 만난 엘리자베스(자베스)에게서 예술성과 몽상가적 기질을 발견하며 과거 한나를 떠올린다.  이 아이가 혹시 요아힘과 한나의 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신이 먼저 추근대지 않았고, 그럴 생각이 없었으며, 변태가 아니라고 끊임없이 변명한다. 결국 스무살 자베스에게 청혼하고 계획에서 벗어난 여행을 떠나며 부녀가 파국으로 치닫는다. ​발터 파버는 통계와 사실에 근거해 가치를 판단하는, 과학기술과 도시생활에 최적화된 현대적이고 이성적인 인물이다. 청혼이란 유대인인 한나가 나치에게서 안전할 방도 중 하나로, 임신한 아이에 대한 책임과 결과행위였고, 자연은 불결, 부패, 불쾌, 죽음이기 때문에 지배하거나 싸워 이겨내야할 대상이기에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이자 엔지니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자연을 숭배하는 일은 원칙과 객관에서 벗어난 일이며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인간의 기술에 반하는 일이었다. 호모 파버- 도구를 사용해 환경을 개척하는 인간인 발터 파버에게 '자연'은 가족을 이루는 일, 사랑, 여성, 모성, 늙음이고 여성-자연은 시종일관 이해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아침노을을 더러운 피 웅덩이-생리혈로 묘사하고 대지는 죽음-부패와 여성이라고 언급하면서도 자신보다 서른살 '어린'여성의 육체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모순적 존재다. 자베트에게 어머니의 이름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도 있었음에도 자신의 감정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질문을 미루고, 아이비에게 이별을 편지로 통보하고 잠적하는 파버는 자신의 모순을 끝내 외면하는 극단적 회피자기도 하다. 근친상간을 확인한 후에도 자신의 죄책감을 축소시키고 합당함을 강조하는 마무리까지 한결같은 파버의 모습에서 자신만의 논리로 무장한 채 궤변을 내뱉는 사람들의 면면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의 의도는 이런 것이었을텐데, 그것이 어찌나 과한지 삼백페이지를 삼일간 가슴 두들겨가며 읽어야했다. 아.. 괴롭다. ​슈틸러를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부분인데, 슈틸러와 이 책의 구성이 상당히 유사하다. 심각한 회피성향의 백인 남성을 중심에 두고 사랑과 모성을 담당하는 여성 1과 자유롭고 개방적인 여성 2가 등장하고, 여성 1, 혹은 2는 둘중 하나가 죽음에 이르는. 슈틸러에선 율리카(아내)-지빌레(애인), 호모 파버에선 한나(아이의 엄마)-자베트(딸)이 그렇다.  아버지와 딸의 근친상간, 아이의 엄마와 함께하는 호모 파버의 이야기가 훨씬 충격적임에도 막스 프리쉬의 작품 전반에 걸쳐 관통한 주제- 현대인의 정체성 혼란- 전달은 호모 파버 보다는 슈틸러쪽이 훨씬 잘 되었던 것 같다. 20세기 중후반 프로이트 영향을 받은 소설이 많긴 하지만 , 유독 이 소설이 엘렉트라 컴플렉스를 선망하는 듯 읽혀서 내내 괴로웠다.  '굳이' 이런 플롯으로 풀었어야했는지 납득되지 않았기에 독서리스트에 올려두었던  막스 프리쉬의 또다른 작품은 조용히 아주 먼 어느날로 미룬다. (프로이트 이론에 동의하지 않는 내 입장엔 고통이 쉼없이 가중됨)​또다른 키워드인 '우상화'를 비교해 볼 만 하다. <호모 파버>는 과학기술과 이성을 우상화 해서 생긴 비극이고, <슈틸러>에선 개인에게 우상화 된 역할을 부여해서 생긴 비극이다. 두 작품을 나란히 두고 읽으면 유사점과 대비점이 눈에 확연히 들어온다. 하지만 프리쉬의 작품들은 인간 내부와 외부, 분열과 합치, 지양과 지향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연달아 읽기는 정말 쉽지 않다. 삶을 보이는대로 받아들이든 호모 파버와 보이는 것 이면의 것들을 찾아 이해하는 호모 루텐스.  삶을 바라보는 두 관점은 슈틸러 91페이지에 자리한 '보이는' 과 '이해'라는 단어들의 거리만큼 가깝지만 영원히 포개질 순 없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우리가 호모 파버와 호모 루텐스가 절충안을 찾을 수 있겠냐는 물음엔 글쎄. 이것이야말로 인류 최고의 난제 아닐까.   ​덧> 을유세계문화전집의 안쪽 정장이 바뀌었다. 112번 물망초 까지 겉지 안쪽 양장이 광택 없는 패브릭이라 유분과 마찰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113번 호모 파버부터는 오염에 강한 한 재질로 바뀐 듯 하다. 겉지 제거하고 만져보곤 물개박수를 칠 수 밖에. 훨씬 좋다. 이전에 발간된 책들도 이렇게 바뀌는거면 좋겠다. (사진 2번 비교참조)  

 

        ​>>으아... 갓 쪄낸 밤고구마 !!! 열불나고 가슴이 답답. 그럼에도 발터 파버같은 캐릭터가 꽤 흔하단 생각에 울고싶어집니다. 인류애 파사삭.>>영화 <Voyager>, 국내에선 <사랑과 슬픔의 여로>라는 제목으로 1991년에 개봉되었다고 합니다. 찾아서 보진 않았어요. ㅎ 
>>>> 삶은 기술로 정복할 수 있는 질료가 아니라고 한다. 자베트와 관련한 나의 오류란 반복이다. 다시 말해, 나이가 중요하지 않은 듯이, 그리하여 자연에 역행해서 내가 행동했다는 거다. 계속 더하기하면서, 말하자면 우리 자식과 결혼하면서 우리 나이를 지양할 수는 없는 거라고.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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