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간전쟁을 치루는 두 영웅, 레드와 블루가 주고받은 편지.
✒여기 두 세력, 에이전시와 가든이 있습니다. 세계의 패권을 잡기 위해 상대의 미래를 헝클어트리기도 하고 자신들의 미래를 만들기도 하죠. 에이전시의 요원 레드와 가든의 요원 블루. 그들은 서로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시간의 실을 오르내리면서 타래를 땋고 매듭을 묶고 미래를 조정하는 전쟁을 치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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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는 전장에서 블루가 보낸 편지 한통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길거야.' 적을 도발하는 듯 한 내용의 편지 이후 두 존재는자신의 조직을 속이며 서신을 나누기 시작합니다.21세기 병원의 MRI로, 수도원의 납골당 동굴의 뼈 피리로, 나무의 나이테, 독을 품은 씨앗, 물범의 무늬, 변하는 용암의 색깔, 찻잔 속의 찻잎, 새의 깃털에 알아볼 수 있도록 은밀하게. 자신이 적과 내통한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서로를 '사특한 블루' '피로물든 레드'로 부르던 편지는 좋아하는 작가, 시대, 음식과 향기, 혹은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던 '허기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실어나르며 '무드인디고' '조심성 많은 홍관조' ' 가장 아끼는 색상코드 0000FF' '진주보다 값진 현숙한 빨강' '사랑하는 청금석' ' 사탕단풍' '나의 청사진' '저물녘 서쪽의 하늘빛'으로 변해갑니다.
과연 아무런 목적 없이 편지를 주고 받는 걸까요.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집요하고 오래된 계획일 수도 있는데. 위험부담을 안은 채 이 편지들은 계속됩니다.심지어 아군에게도 쫓기고 또다른 추적자마저 붙은 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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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서신은 이렇게 끝납니다.
「그건 길고 느리게 펼쳐지는 게임일 거야. 양 진영 모두 상대편에게 했던 것 보다 더 매섭게 우리를 뒤쫒을테고.
이 전쟁에서 어느쪽이 이기든 난 아무 관심 없어. 가든이든, 에이전시든, 우주의 기나긴 호가 어느쪽으로 기울든 간에.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이길지도 몰라. 너랑 나는.
우리는 이렇게 이길 거야.」
서신이 오가는 사이 세계의 경계면은 불꽃이 튀고 피가 낭자하기도 할테지요.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을 오가는 동안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순간도, 위험에서 구해줄 일도 있겠지요.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당신이 나를 속이는 건 아닐까 의심이 싹틀수도 있습니다. 지치고 힘들어 되돌아가고 싶어질 수도 있어요. 기쁨과 애정과 행복 말고도 불신, 고통, 불안, 갈구, 혐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까지 나눠가지다보면 어느순간 레드는 블루의 것이, 블루는 레드의 메아리가 됩니다. 그렇게 레드와 블루가 완벽하게 섞인 후엔 둘 사이를 오가던 서신들의 여행은 멈출까요.
나는 너의 것, 너는 나의 메아리라고 적은 두 존재의 편지글을 읽다보니 정세랑 작가님의 지구에서 한아뿐의 한 대화가 떠오릅니다. "네가 내 여행이잖아"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서로가 여행이던 경민과 한아처럼 레드와 블루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메세지를 주고받을겁니다. 그러니까 서신은, 멈추지 않을거랍니다. (아마도요)그리고 두 진영 사이 다리를 건너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블루와 레드가 서신을 주고받는것으로 이어질테죠.
그들이 나눈 편지는 여기서 끝났지만 이 아름다운 편지가 저 너머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은 이런 바람을 담아 어느 차원 어떤 시간타래에서 무엇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을 그들에게 보내는 노란색 편지입니다. 부디 이번 시간타래에 왔을 땐 이 편지를 눈치 채 주길!
덧)모든 생의 매 순간은 세계와 맺는 단 한번의 매듭입니다. 단 한번 묶을 수 있고, 묶고나면 지나가버려요. 레드가 블루에게 보낸 첫 편지에 <이 편지는 단 한번만 읽도록, 다 읽으면 없어져버리도록 만들어졌다> 고 적힌 것 처럼요. 레드가 블루에게 은밀하게 보냈던 편지처럼 누군가 당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 편지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메세지를 눈치챘다면, 어떤 방식으로 어떤 내용의 답장을 보낼건가요? 신중하게 생각해보세요. 편지 한 통이 세계의 패권을 사이에 두고 싸우던 두 전사가 두 진영 사이의 다리, 제 3의 세계가 되게 한 것 처럼 답장 하나가 당신의 미래를 결정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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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문과 SF, 스페이스 오페라와 시간여행의 만남이라니. 조합이 이질적이지 않으면서도 신선합니다. 세계관도 확장력도 크구요 그러나 경장편이기 때문에 세계관에 막 적응하고 몰입하기 시작하니까 끝나버린 점은 아쉽습니다.방대한 세계관을 가진 시리즈물의 골격만 본,혹은 도입부만 읽은 기분이에요. 그래서 불친절하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등장인물이 다양해지고 각각의 이야기에 살이 붙었다면 (역자분이 적으신대로) 현란한 입담을 비영어권 독자들이 조금 더 이해하기 좋았을텐데.. 대신 넷플릭스 시리즈만들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씬이 역동적이고 전개가 스피디하고 텍스트를 이미지로 치환하기 좋았어요.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BSFA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가장 좋아했던 편지는 내가 가장 <내가 가장 아끼는 색상코드 0000FF> 와 그 다음 레드의 편지.(아마도 118쪽).
🔮 읽기 전엔 표지의 강렬함에 놀라고 읽고 나선 표지의 절묘함에 놀랍니다. 책 한권을 한 컷에 담는 게 가능하구나. 띠지 빼고 한번 감탄하고 겉지 빼고 양장표지에 또 한번 감탄하고, 본문 글자색에 세번째 감탄하고. 크으... 책 속엔 레드와 블루, 그리고 블랙이 있으니까, 책 밖에 있을 독자는 노란색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배경이 노란색이 되었습니다. CMYK 완성! 쨔짠!
- 본문 cyan 색 글자가 살짝 눈이 시렸어요. 쪼오오오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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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만, 한편으론 곧 다리기도 해. 어쩌면 다리가 곧 상처일 수도 있지 않을까? 편지는 구조물이지 사건이 아니니까.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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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는 중재할 줄 알아. 다리처럼. 그리고 말은 다리를 지을 때 쓰는 돌 같은거야. 대지에서 파낼 때는 힘들지만 재료가 되지. 새로운 것, 함께 나누는 것, 하나의 묶음보다 더 많은 것을 만드는 재료. P.173
#당신들은이렇게시간전쟁에서패배한다 #아말엘모흐타르 #맥스글래드스턴 #황금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