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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제제의 작은 책방
일기 같기도 하고, 기행문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미술 평론서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일기도 아니고, 기행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술 평론서도 아니다.

<서른 잔 치는 끝났다>의 시인이 쓴 <시대의 우울>이라는 책.....시인이 이번에는 기행문을 냈네. 시집 팔아 돈좀 벌었나보지? 그런데 기행문 제목이 이게 뭐냐, 그리고 무슨 그림 사진이 이렇게 많아......

다소 못마땅한 시선으로 첫장을 넘기도 또 그 다음장을 넘기고...... 그러다가 유럽 기행이 아닌 최영미 내부의 여행으로 확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 과거의 아픔을 쓰다듬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보노라면 또 어느새 그림 이야기가 펼쳐지고, 프랑스의 가로등을 보고 있노라면 또 어느샌가 작가는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을 말하고 있다.

유럽 미술관의 여러 그림들에 대한 작가의 느낌이 커다란 줄기를 이루고, 틈틈이 여행하며 일어난 에피소드와 엄마와의 싸움 등 사소한 얘기도 나오지만 난 이 책이 최영미씨가 아주 조심스럽게 내놓은 자신의 얘기라고 생각된다.

아주 조심스럽게 슬며시 잠깐 얘기하다가 미술 얘기로 넘어가고 여행 얘기로 넘어가서 난 최영미씨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무슨 일로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지 난 알 수 없다. 하지만 길게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가늘게 떨고 있는 최영미씨의 모습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 확실히 시대의 우울이다.

30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아직도 적당히 잊어버리고 적당히 타혐하지 못한 채 자신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 그녀. 그녀가 좋아하는 그림들을 맘껏 보며 무거운 짐을 벗어보려고 노력하지만 잠시 벤치에 앉아있노라면, 거리의 사람들을 보노라면 머리에 떠오르는 잔상을 지울 수 없었나 보다. 그렇게 가끔씩 읖조리는 작가의 말은 확실히 시대의 우울인 것이다.

그녀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시린 가슴을 쓰다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녀의 우울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은 나 역시 아직 갈 길을 몰라 방황하고 있고, 때로 혹은 무엇이 나를 이렇게 우울하게 하는지도 모르는 바로 그것의 우울함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 책은 무작정 우울을 호소하는 축축 늘어지는 책은 아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나와서 홍익대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한 그녀답게 그녀는 참으로 맛깔스럽게 미술을 이야기하고 있다.

렘브란트의 그림을 유독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에서부터 와토의 ‘시테라섬으로의 순례’를 아쉬움의 미학으로 보는 독특한 시선, 그리고 16세기에 매너리즈 그림이 많이 그려지게 된 역사적 논리까지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이제 막 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지적 재미를, 나름대로의 고민에 가슴저려하는 사람들에게는 공감의 자리를, 또한 유럼 여행을 떠나볼까 하고 기웃거리는 사람에게는 미술관 순례의 멋진 테마 여행의 참고서가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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