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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를 위한 퇴행
신경쇠약에 걸린 조르바  2020/07/22 17:24
  • [수입] Nirvana - In Utero [20th ...
  • 너바나 (Nirvana)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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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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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를 위한 처절한 몸부림도 아니고 진보를 위한 발악도 아닌, 왜 진보를 위한 퇴행인가? 역설적이긴 하다. 진보를 위한 퇴행이라니. 당시 커트 코베인은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커트 코베인은 돌아가고 싶었다.

 

진보를 위한 퇴행⋯? 진보를 위한 퇴행이라니? 희한하게 들릴지 몰라도 완전히 말도 안 되는 말은 아니다.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가 지배하던 시대에 펑크록 자체가 그 당시 록음악에 대한 퇴행이었으니까. 1970년대 록 씬은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가 양분하며 시대를 이끌고 있었다. 레드 제플린은 로큰롤의 원초적 힘과 야성미는 놓치지 않으면서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교향곡같이 정교하고 완벽한 연주로 감탄을 자아냈고, 핑크 플로이드가 공연에서 들려주는 그들의 실험적 사운드는 우주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관객들을 다른 차원으로 안내하며, 록 공연장을 우주를 유영하는 체험장 같은 곳으로 만들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탐미주의에 심취해, 클래식과의 결합에 골몰하고 있던 밴드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하고 아트록 밴드라는 지위를 획득하며 인기를 얻어가고 있었다. 점점 록음악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이 아닌 천상의 세계로 나아가려 하고 있었고, '고학력',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나 듣는 귀족적인 음악으로 변질돼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날벼락처럼 섹스 피스톨스를 위시한 이상한 잡놈들이 나타난다. 펑크록의 등장이다. 당시 영국의 몇몇 주요언론매체는 섹스 피스톨스를 상종 못 할 인간 말종들이라고 맹비난한다(사실상 대부분의 언론이 적대적이었다,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들은 현실은 외면한 채 우주로, 천상의 세계로 날아가려는 록을 다시 이 땅에, 우리가 사는 거리로 불러들였다.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의 시대에 등장한, 쓰리코드로 무식하게 기타를 긁어대며 잔뜩 똥 씹은 표정으로 고함이나 빽빽 질러대면서 사회에 대한 불만들을 거침없이 뱉어 내고 기득권들을 맹렬히 공격하는 펑크록은 한마디로 록의 퇴행이고 펑크록 밴드들은 반동분자들이었다. 그렇다, 펑크록은 진보를 위한 퇴행이던 것이다.

 

1970년대 펑크록 밴드들과 달리 90년대 너바나와 그 동료 시애틀 밴드들의 등장은, 수려한 깃털을 뽐내는 수컷 공작같이 속주와 기교에 집착하거나, 팝메탈, 헤어메탈 밴드들 같은 화려한 퍼포먼스에 치중하며 거대 상업화가 심화하던, 1980년대 주류 록음악에 대한 반동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가히 혁명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아니, 그건 분명 두 번째 혁명이었다. 너바나 이후로 록음악은 더는 너바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기에(그것이 좋든 싫든, 찬성하든 반대하든 간에). 하지만 그 짧은 스포트라이트 이후 펑크가 주류가 돼 버린 이 시대에 나아가기 위해선 어찌해야 할까.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돌파구도 없었다. 그렇게 만든 일등공신은 다른 누구도 아닌 커트 코베인 그 스스로였다. 그 자신이 그렇게 환멸을 느끼던 80년대 주류 록음악 상황이 되풀이하려 하고 있었다. 영민하고 예민한 커트 코베인은 그걸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다. 너바나의 등장은 펑크록을 수면 위로 부상시키며 록의 자정작용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동시에 펑크록을 팔아먹는다는 비난도 어디선가 흘러나온다. 커트 코베인은 그런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얼토당토않은 말은 아니지만 그로선 어쩌면 부당하고 억울하단 생각도 들 만한 비난이었다. 또 펑크록의 뜻밖의 세계적 성공을 그런지 록이니 얼터너티브 록이니 하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해서 팔아먹으려는 장사치들에게 너바나가 이용당하고 있다고 하는 몇몇 비평가의 비판은 커트 코베인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원컨 원치 않건 그는 혁명을 이뤄내지만 그 짧은 승리의 기쁨과 환호가 끝나고 나서는 녹록지 않은 현실이 그 탐욕스러운 아가리를 커다랗게 벌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혁명정부가 변질돼 가는 걸 목도해 왔던가(오히려 혁명 이전 체제보다 더 나빠지는 일도 심심찮게 목격해 오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1990년대 너바나 이후 펑크록은 어디로 가야 할까? 커트 코베인은 돌아가고 싶었으나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왜냐하면 돌아갈 곳이 없었으니까. 그는 자신이 완전히 길을 잃었다는 걸 느낀다.

 

커트 코베인은 네버마인드의 엄청난 성공에도 행복하지 않았다―어쩌면 성공하기 전보다 더 불행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유명세와 더불어 추문도 날로 늘어간다. 커트니 러브와의 불화설, 헤로인 남용으로 인한 건강상태 악화 등과 같은 자신에 대한 대중의 부담스러운 관심과 그것에 편승한 언론들의 악의적인 보도 등등이 끊임없이 자신을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그리고 자신이 몸담고 있던 인디록과 언더그라운드 씬의 신선함과 생동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발 딛고 있는 메인스트림이 바라는 바(즉, 대중의 지칠 줄 모르는 탐욕)를 만족시켜줘야 하는 부담감 또한 만만치 않았다. 아마도 그 중압감은 갈수록 심했을 것이다. 원컨 원치 않건 주류에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지만 그 성공만큼이나 그의 실망감도 비례했던 것 같다. 그는 자기가 음악을 통해서 그랬듯 너바나의 음악이 세상과 사회에 특히, 10대들과 자신과 같은 청년들에게 도움을 주고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왜 아니겠는가? 그는 젊고, 예술가이지 않은가.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커트 코베인에겐 그런 순진무구한 면이 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산산조각 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네버마인드 앨범의 세계적 성공 이후 그를 둘러싼 많은 것이 바뀌고, 그는 헤로인처럼 짧은 황홀함을 맛본 뒤에, 빠르게 밀려드는 엄청난 실망감과 마주해야 했다. 커트 코베인이 느꼈을 실망감에 대해 여기서 일일이 나열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나도 모르니까(우리는 그저 그것에 대해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상상력을 조금만 발휘해 본다면 많은 사람이 나처럼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그는 유서에서 곡을 만들거나 무대에 오를 때 아무런 흥미와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고 죄책감에 가까운 감정을 토로한다). 커트 코베인은 음악하는 것에 흥미를 잃기 시작하고 회의가 들었다. 그 회의감이 짙어질수록 점점 공연장 무대에 오르는 것이 괴로웠다(아마 자신을 속여가며 공연장에 오르는 날이 많았을 것이다). 그는 가면 갈수록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냉소적으로 변했고, 그 냉소는 그의 마음 한구석 가장자리부터 싸늘하게 잠식해 들어간다. 그는 엄청난 성공의 한가운데에서 어느 순간 문득, 그리고 자주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헤로인의 환각처럼 강렬하게 들었을 것이다. 그저 친구들끼리 모여 합주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던 그 시절로, 순수하게 음악하는 걸 즐기던 그 시절로. 우리 모두는 불행하거나, 적어도 행복하지 않을 때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게 아무 걱정 없던 어린 시절일 수도 있고 자신이 가장 행복하던 인생의 어느 한 시기일 수도 있다. 그때를 생각하며 돌아가기를 희망한다(혹은 상상한다). 커트 코베인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고 선택을 강요한다. 언제까지나 소년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원컨 원치 않건 때가 되면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른이 될 것인가 그냥 그대로 멈춰 있을 것인가. 그는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게 바로 커트 코베인의 딜레마였다.

 

커트 코베인은 분명 전진해야만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고 싶었다. 결혼을 하고 사랑스러운 딸도 태어난다. 정말 그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려웠다. 상황에 떼밀려서 어찌어찌하다가 여기까지 와버린 것 같았다. 이대로 계속 나이만 먹는다면 자기도 자신이 혐오하던 그 어른들과 다를 게 없는 인간이 될 것 같았다.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건 반드시 한 번쯤은 거쳐가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라도 쉽지 않은 문제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커트 코베인은 답을 찾지 못하고 길을 잃는다. 그는 결국 너무 쉽고 너무 편한 선택을 한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헤로인을 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문제를 뒤로한 채 자신을 방기해 버린다. 이혼한 자신의 부모가 자기한테 그랬듯 자신을 방치해 버린다. 그럴수록 점점 더 문제들은 자신의 통제 밖으로 벗어나고 커트 코베인의 자기혐오도 점점 더 심해진다. 가끔씩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하던 헤로인은 습관이 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습관은 끊기 힘들었다. 헤로인을 하기 위해 자기 변명들을 박박 긁어모아야 할 지경에 이른다.

 

이 안타까운 자학과 이 자기파괴적인 반항을 뭐라고 해야 할까? 커트 코베인은 생각한다. 어디서부터 내 인생이 이렇게 망가지기 시작했을까? 언제부터 내 인생이 이렇게 참담해지기 시작했을까? ⋯어쩌다가?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커트 코베인은 이 모든 걸 끝내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이 앨범은 자신의 삶에 대한 분노가 체념으로 바뀌고, 결국 냉소라는 날개밖에 안 남은 한 인간의 추락하고자 하는, 마치 더는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난치병 환자들한테서 볼 수 있는 의지 표명 같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평온하고 아늑한 엄마 뱃속으로(In Utero) 돌아가고 싶어하는 커트 코베인의 절규고 최후의 발악이다. 퇴행이 진보를 담보할 수 있을까? 그로서는 이대로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도,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이게 그가 처한 상황이다. 그는 이 지리멸렬하고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당연히 이기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지도 않았다. 퇴행을 선택한 때문이다. 싸울 의지가 없는, 아니 중증 자폐아처럼 철저히 자기 스스로 학대하는 인간을 때려눕혔다고 해서 누가 의기양양할 수 있겠는가. 지독한 퇴행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진보했다(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퇴보하지는 않았다. 퇴행을 선택했기에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지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앨범은 진보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퇴보한 것도 아니다. 퇴행일지언정 퇴보하지는 않았다는 게 이 앨범의 최대 성과 아닐까. 그는 순수성을 잃고 거세된 혁명가로 부귀영화와 천수를 누리기보다 불행할 결말이 빤히 보이는, 사람들을 진절머리 나게 하는 그냥 고집불통 마약중독자로 남기로 이미 각오하고 있던 건 아닐까. 비록 퇴행할지언정 적어도 타락하진 않겠다는 의지. 이 앨범의 의미는 거기에 있다. 그렇기에 이 앨범을 진보했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퇴행함으로써 진보했다고,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앨범은 절반은 성공했다. 그 절반의 성공조차 너무나 씁쓸한 뒷맛을 남기지만.

 

하지만 결국 커트 코베인이 방어기제로써 선택한 퇴행은⋯ 지극히 당연하게도 그의 불행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그 결과⋯ 그 결과는 우리가 다 아는 바다. 그렇다면 커트 코베인은 왜 퇴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뭐라고 딱히 단정 짓긴 힘들다. 그 이유는 오직 커트 코베인만이 알 것이다. 우리는 그저 커트 코베인이 남긴 삶의 부스러기들을 따라가며 유추할 수 있을 뿐⋯. 아마 앞서 열거한 모든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중론일 것이다. 나는 커트 코베인이 끝끝내 떨쳐 낼 수 없었던 자존심과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한다.

 

커트 코베인은 그들이 너바나와 자신에게 ‘새로운 세대의 대변인’이니 ‘X세대의 아이콘’이니 ‘목소리 없는 세대의 목소리’이니 하는 호들갑스럽게 부여해준 의미들, 그가 그렇게 부담스러워 하던 온갖 빛나는 수식어들과 그 모든 찬사와 열광들이, 자신의 젊음이 사그라들듯 흐르는 시간 속에서 빛바래고 퇴색해 갈 것이 두려웠다. 이 모든 게 바스라져 재가 되어 바람에 흩날려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니 두려웠다. 그 뜨거웠던 호들갑만큼이나 그들의 그 관심이 너무나 빨리 식을까 두려웠다. 마치 유행 지난 패션처럼 그것들의 그 변덕스러움이, 그 싸늘함의 속도가 두려웠다. 그리고 충분히 좋은 곡을 쓰지 못하고 그저 그런 밴드로 잊혀 갈 거라는 두려움, 그렇게 해서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이 지위를 잃을 거라는 두려움, 계속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이 조여오는 두려움, 자신도 결국 어쩔 수 없이 한물간 퇴물이 될 거라는 사실에서 오는 두려움, 옛 명성에 기대어 흘러간 인기곡이나 부르며 공연장을 전전하며 추억팔이하며 살아갈 자신의 모습이 두려웠다. ⋯그렇게, 그저 늙어가는 게 두려웠을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는 이 모든 게 두렵고(어쩌면 자신의 삶 그 자체가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제법 그게 신경 쓰였을 것이다. 어쩌면 속으로 전전긍긍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모든 두려움과 불안은 커트 코베인의 자존심에서 비롯한다. 바로 예술가로서의 자존심 말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점점 몰락해 가는 모습을 차마 두고 볼 수 없던 것이다. 그러기엔 그는 자존심이 너무 강했다. 예술가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 그건 열등감도 그것과 비례해서 크다는 뜻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 자아가 그만큼 취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전설로 남고 싶었을 것이다. 바로 그런 그의 강한 자존심이 취약한 지반 위에 위태롭게 서 있던 그의 자아를 받쳐주기 위해 그가 전설이 되기를 부추겼을 것이다. 재니스 조플린과 지미 헨드릭스와 짐 모리슨처럼, 그렇게 영원히 전설로 박제되고 싶었을 것이다―뭐가 어찌됐든, 결국 그렇게 됐다. 그래서 자신이 그토록 부담스러워 하고 거북해 하던, 하지만 아랑곳 않고 막무가내로 그들이 그렇게나 호들갑스럽게 부여해준 너바나의 의미를 그 상징성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내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그 빛나는 순간들을, 그 의미를, 그 상징을⋯, 그것들이 비록 타인들이 규정해 준 것일지라도 그는 그것을 지켜내고 싶었을 것이다. 진귀한 꽃이 시들기 전에 영구히 보존하려는 듯, 그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 의미가 퇴색하고 바래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죽음으로 그것을 지켜내고 싶던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자신이 그토록 부담스러워 하고 거북해 하던 그들 제멋대로 붙여준 것일지라도 말이다. 뭐가 어찌됐든 커트 코베인 역시 그것이 지켜낼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했기에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아주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커트 코베인 머릿속엔 죽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죽음 외엔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 어떤 것도 생각하지 못 했다. 젊음은 그 자체가 낭만적 비극성에 대한 갈망을 은밀히 품고 있으며 충분히 젊은 그는, 그로 인해 그 시야가 다른 선택지를 고려할 수 없을 만큼 좁았고, 막다른 길목에 다다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고통스럽게 방황하고 있는 그에게 죽음 외에 다른 해법은 다 구차해 보였을 것이다. 분명 그의 죽음엔 그 젊음이 그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의미를 잃고(아,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절망에 빠진 젊음의 죽음에 대한 집착이라니⋯ 아, 또 이 얼마나 고전적인가(마치 낭만주의 문학의 주인공을 보는 듯하다)! 박제를 위한 준비물은 엽총과 헤로인을 박제시킬 자신의 몸에 주입할 주사기만으로 충분했다. 그는 치사량에 가까운 헤로인을 자신의 몸에 주입하자마자, ⋯그 순간 갑자기 꿈을 꾸듯 이 모든 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는 무엇을 위해 죽으려고 하나? 그가 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누가 혹은 무엇이 커트 코베인을 이렇게 죽음으로 몰고 갔나? 혹시 내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마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커트 코베인 스스로도 이해 못 하고 있을지 모른다. 또 이러는 그 자신도 자기를 낯설게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 이 모든 게 다 부질없는 내 헛소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이 모든 게 단순히 커트 코베인의 심각한 헤로인 중독 때문은 아니었을까. 심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마약중독자의 신변을 비관한 충동적 자살. 그러니까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혐오스럽고 구역질나는, 어찌 손써 볼 수 없는 이 구제불능 약쟁이의 단순 자살사건을 한 시대를 풍미한 록스타란 이유로 내가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려 노력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들을 진저리 치게 하는 혐오스럽고 구역질나는 구제불능 약쟁이의 자업자득인 자멸일 뿐이라면⋯, 이 얼마나 깔끔하고 편리하고, 또 이 얼마나 편의적인 결론인가. 아, 이 모든 걸 이렇게 단순하게 치부해 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세상 모든 일을 이렇게 단순하게 바라볼 수만 있다면⋯,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커트 코베인이 자신의 그 우울하고 슬픈 눈으로 바라보던 세상의 마지막은 어떤 풍경일까? 마지막으로 세상의 무엇을 그 우울하고 슬픈 눈으로 담고 싶어 했을까? 그가 점점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초점을 잃어 가는 눈동자로 마지막으로 보고 있던 것은 또 무엇일까? 아마 모든 게 흐릿할 것이다. 헤로인 때문에 또는 눈물 때문에(어쩌면 둘 다일지도). 그가 점점 의식을 잃어 가며 보고 있는 세계는 그 죽음의 이유만큼이나 불분명하고 불투명했다. 그리고 점점 꺼져 가는 그 의식 속에서 어떤 생각과 꿈 같은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을까? 누구를 마지막으로 떠올리고 있을까? 프랜시스? 커트니? 자신의 여동생 킴과 부모님? 밴드 멤버들? 아니면 무대 앞에서 자신의 모습에 열광하는 지우개로 문지른 것처럼 얼굴이 뭉개진 수많은 관중들? ⋯10초? 1분? 5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아마 10초를 10분, 아니 1시간이 흘렀다고 느낄 것이다. 어쩌면 아주 짧은 이 시간이 마치 영원 같을 것이다. 그는 의식을 완전히 잃기 전에, 점점 힘이 빠져 주먹을 쥐기도 어려운 손가락에 온 힘을 집중하고 단호하게 준비한 엽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언론과 대중에게 복수라도 하듯 신이 잘 빚어 놓은 예술품 같은 자신의 조각 같은 외모를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만큼 스스로 산산조각 박살 내면서 자신의 박제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뼛조각과 살점들이 다시는 맞출 수 없는 깨진 퍼즐조각처럼 사방에 널브러진 채 피로 붉게 물들어 가고 있는 바닥에는 앞으로 영원히 풀지 못 할 어떤 수수께끼의 단서처럼 그의 유서가 놓여 있다. 거기에는 닐 영의 'My My Hey Hey'의 가사를 인용한 글귀가 적혀 있다(아마 커트 코베인의 유서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일 것이다). ‘그리고 기억해 주길 바란다. 서서히 사라지기보다 일순간에 타버리는 것이 낫다는 것을⋯.’

 

그는 자신의 이런 불안과 초조함, 두려움들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회피했다. 결국 그 어떤 것도 커트 코베인을 구원하지 못 했다. 천재적 재능이 가져다준 부유함과 명성도, 사랑스러운 딸과 아내도, 헤로인도, 음악조차도⋯. 그의 죽음은 또다시 탐욕스러운 미디어들의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미디어들은 그의 불행한 과거, (가십거리를 충분히 제공해주던) 화려한 록스타로서의 삶, 비극적인 죽음을 전설로 포장해서 재빨리 유통하고 소비한다. 그는 10대의 영혼 냄새를 풍기며(Smells Like Teen Spirit) 27살 청년으로 죽었다. 끝까지 어른이 되지 못한 채, 혹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 채, 짧은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 어른이라면 응당 감당해야만 하는 그것을 거부한 것이다.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그 두려움들 때문에. 그런 점에서 그는 나약했고⋯, 끝끝내 비겁했다. 하지만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만약 커트 코베인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현재까지 과연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잘살고 있었을까? 난 이 물음에 나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만족스러운 답변을 도저히 할 수 없기에 되묻는다. ⋯그렇다면 이 죽음은 열반인가 속죄인가? 이 결말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그렇게 그는 씁쓸한 절반의 성공을 남긴 채 사라졌다. 커트 코베인의 죽음으로 한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한 시대의 끝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인 것만은 분명하다. 어떤 상징의 죽음이었다. 그렇다면 커트 코베인이 상징하던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 무엇은 무엇을 의미했을까? 아니 아니, 내가 말하는 건 ‘고학력',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께서 하사하신 ‘새로운 세대의 대변인’이니 ‘목소리 없는 세대의 목소리’라느니 하는 그딴 헛소리들 말고 진짜 의미 말이다. 커트 코베인의 삶과 그의 온 존재를 어지럽히고 그를 그렇게 고통스럽게 괴롭힌 그 진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 진짜 의미란 게 도대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젠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결핍감만 남았다. 아직까지도 그 텅 빈 상실감은 여전하다. 록음악은 멸종하지 않았고 젊은이들은 여전히 록밴드를 결성하지만, 그런데 뭐?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이상하게도 내 반응은 이게 전부다. 커트 코베인과 달리 나는 아무 의미도 없고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시대에 내 무의미한 삶을 그렇게 연명하고 있다. 그리고 1994년 그 해, Nine Inch Nails의 The Downward Spiral과 Green Day의 Dookie라는 역사적인, 그리고 의미심장한 록 명반들이 나온다. Nine Inch Nails의 The Downward Spiral은 트렌트 레즈너가 그만의 방식으로 커트 코베인을 추모하며 진혼하는 의식 같았고, Green Day의 Dookie는 커트 코베인 사후 시시해질 록음악의 미래를 예고하는 최초 공개 예고편 같아 보였다. 놀라운 사실은 두 앨범 모두 커트 코베인이 죽기 전에 나왔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예언적이고 미래암시적인 일인가!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들의 예언은 모두 적중했다.

 

이 앨범을 들을 때마다 한번씩 한 인간이 낳은 이 고통의 결과물을 내가 이렇게 즐겨도 되는 것인가 하고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난 성악설에 더 마음이 끌린다. 이 앨범이 주는 그 희열과 쾌감을 즐기는 나를 볼 때마다 더욱 그렇다. 나는 정녕 남의 고통을 즐기는 사디스트일까? 내게 죄책감을 안겨준다는 것, 커트 코베인은 자신의 곡을 듣는 사람에게 죄책감을 안겨줄 정도로 자신의 고뇌와 고통을 처염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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