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 사로트, 위효정 역, [향성], 민음사, 2025.
Nathalie Sarraute, [TROPISMES], 1939. 1957.
나탈리 사로트는 유대인이고, 1900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이주해서 자랐다. 마르셀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에 관심을 두었고, 누보로망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제목에 쓰인 '향성'은 생리학 용어로, 물리적이거나 화학적인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생물의 경향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빛을 향해 뻗는 잎의 향일성, 지구의 중력을 향해 뻗는 뿌리의 향지성, 특정 화학 성분을 향해 움직이는 세포의 향화성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사로트는 이 생경한 용어를 빌려 어린 시절부터 그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모종의 내적 움직임,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한 본능적 움직임", "우리 의식의 가장자리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움직임", 그럼에도 "우리의 몸짓, 우리의 말, 우리가 밖으로 내보이는 감정들의 기원에 자리"하며 "우리 존재의 은밀한 원천"을 이루는 움직임을 통칭하고자 했다고, [의혹의 시대] 서문에서 밝힌다.(p.80, 작품 해설 중)
향성(向性)이란? 식물의 생장 운동으로, 자극이 오는 방향으로 향하는 성질을 말한다. 나탈리 사로트의 [향성]은 짧은 소설이지만, 이전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새로운 시도였다. 인상주의가 전통적인 속박에서 벗어나 순간적인 감정이나 분위기를 강조한 것처럼, 1950년대 프랑스의 누보로망(새로운 소설)과 안티로망(반소설)의 물결에 앞서 혁명적이고 실험적인 이 작품은 이미 1939년에 세상에 나왔다. 줄거리가 없고, 인물을 특정할 수 없고, 심리상태와 성격을 엿볼 수 없고... 오로지 향성에 집중한다. 어떤 사건도, 인물의 개성도, 일관된 시점도 없는... 순전히 무의식에 의한 본능적인 글이다. 그래서 진실한 소설이라고 한다.
그들은 사방에서 솟아나는 듯했다. 약간 축축하고 미지근한 공기 속에서 피어나, 그들은 가만히 흘러 다녔다. 마치 벽들에서, 철책에 싸인 나무들에서, 벤치들에서, 더러운 보도들에서, 공원들에서 스며 나온 듯이.
주택가의 죽은 정면 외벽들 사이로 그들은 컴컴한 송이를 지어 길다랗게 늘어졌다. 띄엄띄엄, 가게 진열대 앞에서 그들은 더 단단한 응어리를 이루었고, 움직이지 않으면서 그 주위로 약간 역류를 일으키기도 했다. 살짝 막힌 배수구에서처럼.(p.7)
소설의 시작은, 마치 버섯의 포자가 세상을 떠돌다가 여기저기에서 자라나는 것 같은, 잘 자란 버섯은 상점의 진열대에 쌓여 팔려 나가기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다. 새로운 소설을 전통적인 관점으로 이해하려고 하니 한계에 부딪힌다. 근성을 갖고 의식의 흐름을 따라서 읽었지만, 난해한 텍스트는 정신을 고단하게 한다. 심지어 독서의 목적마저 상실하게 하는데, 그래서 전부 다 내려놓고... 24개의 추상화를 감상하는 것처럼 책을 보았다.
얼마나 진이 빠지는지, 하느님 맙소사! 얼마나 진이 빠지는지 이 소모전이란, 그의 면전에서 줄곧 이렇게 깡충거린다는 것, 뒤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그리고 한 번 더 뒤로, 이번엔 그를 가운데 두고 빙 돌아 주기, 그다음엔 한 번 더 발끝으로, 그에게서 눈을 떼지 말고, 그리고 옆으로 그리고 앞으로 그리고 뒤로, 그에게 이 향락을 제공하기 위해.(p.16-17)
싱그럽고 어린 존재들, 순진무구한 존재들과 함께 있을 때 그는 고통스러운, 뿌리칠 수 없는 욕구를 느꼈다. 자신의 초조한 손가락으로 그들을 주무르고 싶었고, 그들을 만지고 싶었고, 그들을 자기 곁에 최대한 바짝 끌어 붙이고 싶었고, 그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p.27)
그녀들, 그녀들, 그녀들, 그녀들, 언제나 그녀들, 게걸스러운, 재잘거리는, 섬세한 그녀들.(p.34)
그들은 추하다, 그들은 밋밋하고 진부하고 개성이라곤 없다, 그들은 정말이지 너무나 케케묵었고, 클리셰들이다, 그녀는 생각했다. 발자크, 모파상에게서, [마담 보바리]에서, 도처에서 묘사된 바 있는 그들을 그녀는 이미 허다하게 보아 왔고, 클리셰들이고, 복제품들이고, 복제품의 복제품이다, 그녀는 생각했다.(p.68)
사물의 관찰, 주방에서, 거주지에서, 성애의, 더운 여름날의 침묵, 여자의 잔소리, 어린아이를 대하는, 카페에서의 수다, 파리에서, 백화점에서, 뜨개질을 하면서, 사교모임에서, 황혼의 나이에, 제빵을 하면서... 그리고 알 수 없는 것을 서술한다. 사로트의 눈에 현대의 소설은 하나같이 추하고, 밋밋하고, 진부하고, 개성 없고, 케케묵은 클리셰이고, 복제품의 복제품처럼 보였을까?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이고, 자극에 따라 방향이 바뀌는 신비한 경험...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이다. 시대를 앞선 선구적인 작품은 오늘날 그 가치를 평가하고 있지만, 그만큼 복잡하고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