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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 서재
  • 젠더 크라임
  • 덴도 아라타
  • 16,920원 (10%940)
  • 2025-02-14
  • : 2,302

덴도 아라타, 이규원 역, [젠더 크라임], 북스피어, 2025.

Tendo Arata, [GENDER CRIME], 2024.

몇 년 전에 대학생들하고 대화하면서... "남자가", "여자가"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는 성 역할을 규정하면 안 된다는 것인데, 내가 살아온 세상하고 다른 세상에 사는 느낌이었다. 덴도 아라타의 소설 [젠더 크라임]은 성폭력 범죄를 수사하는 경찰 소설이고, 젠더 문제를 다루는 사회파 미스터리이다. 국내는 젠더 이슈를 넘어서 갈등으로 번지는 상황이라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인데, 일본은 우리하고 사정이 많이 다른가 보다. 성범죄의 인식과 경각심이 부족하고, 여전히 차별적인 요소가 만연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코스라면, 기수대에서 본청 수사 1과로 가는 거?"

시노자키는 다테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백미러로 보고, "여자는 현실적으로 힘들걸. 관할서 형사과라면 몰라도 본청에서는 수사본부가 설치되면 도장에서 칼잠 자야 하고, 한 달 정도는 귀가하지 못하는 세계니까."

구라오카가 어깨너머로 돌아보니 다테하나는 분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p.41)

경찰 조직에서... 강력계는 일의 특성상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져 여성의 진입 장벽이 높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 경관을 부경(婦警)이라 부르기도 하고, 회식 자리에서 술을 따르지 않는다고 철벽녀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한다. 하치오지 남서 경찰서의 구라오카 나오야는 경부보로 젊었을 때 올림픽 유도 선발전에 나갔을 정도로 박력 넘치는 형사이다. 본청 수사 1과에서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어떤 이유로 좌천되어 관할서 형사로 근무하고 있다. 관내에서 나체 상태의 시신이 발견되는데, 양손이 뒤로 결박된 중년 남자이다.

시바가 냉정하게 대답했다. "알몸이면 당연한 절차죠. 말하자면 관례입니다. 그런데 남자 사체일 경우에는 왜 그 방향으로 조사하지 않을까요. 강간 여부를 의심하기는커녕 의식하지도 않았겠죠. 치한이니 강간이니 하면 일단 여성이 피해자일 거라고 단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인데, 젠더 바이어스(성 역할에 대한 편견)의 전형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남성도 치한한테 당하고 강간 피해도 있고...... 그렇죠, 구라오카 경부보?"(p.53)

수면제로 재우고 교살한 사건... 즉시 수사본부가 설치되고, 본청 수사 1과 형사와 관할서 형사가 짝을 이룬다. 구라오카는 시바 린리라는 젊은 경부보와 조를 이루는데, 그는 상부의 수사 방침과는 상관없이 자기 추리를 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매번 그가 지목한 용의자가 진범으로 검거되어 똑똑하지만, 조직에서 미움받는 괴짜이다. 법의학교실 해부실에서 알몸으로 발견된 중년 남자의 시신을 부검할 때 강간 검사를 요구한다. 그리고 항문에서 "눈에는 눈"이라고 적힌 쪽지를 발견한다.

피해자를 저항할 수 없는 상태, 혹은 의식을 잃은 상태로 만들어 놓고 성교나 외설적 행위를 저지르는 범죄는 비친고죄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체포하고 기소할 수 있다. 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하고 피해자가 재판에서 증언하지 않으면 검찰로서도 기소를 망설이게 된다.

때문에 피고의 부모나 관계자는 변호사를 고용하여 피해자 측에 합의금을 제시하고, 만약 재판까지 가면 폭행당한 전후 상황을 낱낱이 재현해야 한다느니, 피해자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비난 여론이 일어날 거라느니 위협한다. 공개재판인 데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쉽게 비방과 중상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정신적인 부담이 크고 2차 피해의 리스크가 있지만, 설사 피고가 유죄가 되더라도 초범이면 대개는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합의금 받고 재판을 피한 후 해외여행이라도 하면서 상처를 씻어내는 게 어떠냐는 식으로 압박하는 것이다.(p.107-108)

함무라비 법전의 인과응보 메시지... 피해자 가족을 조사하니 아들이 준강간 혐의로 집행유예 상태이다. 남자 대학생 네 명이 여자 대학생 한 명을 노래방에서 성폭행한 사건, 가해자는 전부 기소되지 않았다. 변호사의 합의 강요와 경찰의 2차 가해, 더구나 정치권까지 뒷배로 작용해서 한 인생과 가정을 완전히 망가뜨려 놓았다. 피해자는 계속해서 사죄를 요구하며 가해자를 협박한 정황이 있고, 가해자는 아무런 사과 없이 변호사를 통해 대응했다. 결국 합의금 몇 푼으로 피해자의 의지가 꺾이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리 친한 정치가의 청탁이 있었다지만, 국가 최고 지도자를 생각해 알아서 처신한 거라고 해도, 자기 장래도 돌보지 않고 그런 청탁을 들어주고 말았을까...... 그것은 여자라는 성을 무의식중에 낮춰보기 때문이겠죠. 성범죄라고 해도, 겨우 그것쯤이야,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죠. 살인사건이었다면 체포영장 집행을 중지시켰겠습니까?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 영혼을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잔인한 범죄라는 생각을 했다면 최소한 체포는 진행했을 것이고, 그 뒤는 제대로 된 경찰의 역할대로 검찰과 재판에 맡겼겠지요. 이것은 부장님만이 아니고 정치가만도 아니고 이 나라의 바탕에 있는 우리의......"

구라오카는 제 가슴을 쳤다. "우리의, 죄입니다."(p.283)

성격이 상반된 두 형사... 헛심이 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강한 구라오카와 합리적이지 않은 낭비를 줄이고 방향 전환이 빠른 시바는 곳곳에서 티격태격이지만, 결국 서로를 보완하고 협력해서 사건의 진실에 다가선다. 여성과 여성의 성을 무의식중에 낮춰보는 사회적 분위기, 성범죄 피해자의 헤아릴 수 없는 고통, 범죄자의 파렴치함이 잘 드러난다. 하지만 큰 줄기의 사건 외에 곁가지가 많아서 아쉬움이 있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사건과 성격이 다른 두 주인공은 매력적이지만, 다소 억지스러운 결말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젠더 감수성에 관한 메시지는 좋지만, 이렇게 저렇게 덧붙인 이야기가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10년 전에 책이 나왔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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