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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 Eyre
  • 공부의 위로
  • 곽아람
  • 14,400원 (10%800)
  • 2022-03-20
  • : 3,048

후기 거리가 쏟아지는 책의 작가가 있다. 분명 마음의 결이 같아서다. 와, 정말 어쩜 이렇게 어떤 부분에서는 비슷한 경험을 가졌을까 하지만 감히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싶은 그 분은.... 나는 SOLO 8기에서 상철이 영식을 보고 “영식님은 저(상철)의 상위 버전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곽아람의 『공부의 위로』를 보고도 나는 또 같은 생각을 했다. 작가님이 《모나리자 스마일》을 보고 매료된 장면이 나와 꼭 같다는! (나도 E동 101호에서 슬라이드를 세팅하고 스크린은 어둡게, 계단식 좌석의 상위층은 밝게 스위치를 잘 조절해서 칭찬을 받곤 했는데! 수업이 끝나자마자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책을 빌리곤 (혹은 복사하곤) 했는데! 종강시험이면 화면에 뜬 슬라이드 도판을 보고 달달 외워 쓰는 시험을 보곤 했는데!) 하지만 그 분의 미술사 공부와 나의 미술사 공부는 밀도가 다르다. 이게 바로 서울대 인문학의 존엄이구나 싶은 교양의 상아탑에 존경과 부러움이 가득했다. 정말이지... 이건 갑(甲)이다. 영원한 갑님이다!​


운이 좋아 대학을 제 나이에 진학했고, 운이 나빠 공부보다 돈 벌러 다니는 시간이 많았다. 운이 좋아 공부하는 것이 행복했고, 운이 나빠 공부를 잊었다. 고되고 힘들었던 대학시절을 운의 탓으로 변명하면서 내가 가장 비겁하게 군 것은 내 주위 사람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지 않았다는 것.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은 대개 나보다 높은 곳을 보았으며, 멀리 뛰었고, 부지런하고 성실했다. 내가 비록 그들의 고아(高雅)한 기준에는 못 미치는 인간일지라도, 곁에 그런 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자극이 되었고 눈이 트였다. 대학이라는 공간뿐 아니라 친구들 하나하나가 새롭고 귀한 세계였다.” _ 9 또 다른 세계를 열어주는 문 : 중국어


내 곁에도 가득했을 높은 곳을 보는 친우들, 멀리 뛰는, 부지런하고 성실했던 이들을 나는 쳐다보지 않았다. 대학에서 손에 꼽을 만큼 귀한 친구들을 얻었지만 내게는 그들 외에 볼 에너지가 없었다(고 변명했다). 4.0이 훌쩍 넘는 성적표를 쥐고 의기양양 대학을 나왔지만 아무데서도 원치 않았던 예술대 학생의 운명을 원망하기에 나는 세상에 너무 교만하고 내 인생에 무책임했다. 초점을 놓친 흐린 눈으로 발버둥치다가 간신히 들어간 파트타임 잡의 월급봉투 앞에서 나는 드디어 겸손해질 수 있었다. 항상 ‘밥벌이’를 말하는 곽아람 작가는 얼마나 일찍이 겸손했던가, 나는 항상 월급봉투 앞에서 비굴하고 굽신거렸다. 하지만 그 굽신거림이 단 한번도 우아하지 않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다. 기억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나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직장을 가진 이후로 집어던진 미술도구 앞에서 부끄럽기는 해도 품위 없다고는 생각한 적 없다. 내게 ‘밥벌이’는 그런 것이다. “사회생활을 거듭하면서 세파에 찌들어 나 자신이 너무나 더러워진 것만 같을 때, 일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손에 피를 묻히게 될 때” 나도 작가님처럼 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지금도 너무나 눈물이 난다.


“사회생활을 거듭하면서 세파에 찌들어 나 자신이 너무나 더러워진 것만 같을 때, 일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손에 피를 묻히게 될 때, 맥베스 부인처럼 수백 번 그 손을 씻어도 도무지 핏자국이 지워지지 않을 때는, 울면서 읖조렸다. “선한 인간은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혀 있을지라도, 바른 길을 잘 의식하고 있다.”” _ 14 함께 읽는 법을 배우다 : 독일 명작의 이해


이 귀한 책 덕분에 20년을 거슬러 내가 공부했던 노트를 펼쳐보았다.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한 노트도, 이사의 흔적으로 사라진 노트도 있어 남은 것은 단 둘뿐이다. 나도, 그 시절 (공부를) 그렇게 사랑했고, 그렇게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금의 나를 지탱해왔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생의 가치는 dignity인데, 나는 디그니티가 있는 사람을 흠모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이 노트가 나의 디그니티 한 조각이라면, 『공부의 위로』는 곽아람 작가의 높은 디그니티 한 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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