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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 Eyre
  • 심리학자가 사랑을 기억하는 법
  • 이고은
  • 13,500원 (10%750)
  • 2022-04-25
  • : 1,034

뜨거운 사랑이 이제는 너무 싫다. 사랑에 심신(心身)을 불태울 시간도 에너지도 부족한 걸 떠나 아깝다. 일에 지쳐 나가떨어졌을 때 쓸쓸한 사랑의 온기가 간절하다가도, 어느 순간 사랑에 진절머리날 때도 있다. 『심리학자가 사랑을 기억하는 법』은 이런 어른이에게 딱 적절한 사랑의 균형을 보여준다. 잔잔하고 그윽하게, 그 사랑을 헤아려볼 수 있도록.


인간의 마음을 해부하는 심리학은 사실 보다 과학에 가까운, 차가운 학문이다. 자극을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일련의 정신 과정으로 공부하는 인지(認知) 심리학자가 자기 사랑을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해석하여 내어보내는 모습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전시(展示)하는 것이 아니라 발산(發散)하기 위해서. 이 겸손한 사랑의 모습이 하 잔잔하여,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순간 같은 마음을 가졌던 사랑의 기억을 되돌리고, 다시금 그러한 기억을 만들고 싶어 사랑하고 싶어진다. “어쩌면 누군가와 이 책을 함께 읽기 위해 당신은 사랑을 시작할 수도 있으리라”는 신형철 평론가의 말이 어쩌면 이다지도 정확한지.


“상대를 아름답고 지적인 사람으로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면 그 사람은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아름답고 지적인 사람으로 행동한다. 서로 선순환의 궤적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좋은 관계는 상대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느냐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뇌는 환경과 상황을 파악해 그에 맞는 가장 타당한 행동을 선택한다. 상대를 ‘소중하게’ 대하면 그는 정말로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이 된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상대란 불가능하지만 내 마음에 만족스러운 사람은 가능하다. 나 역시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상대에게 만큼은 흡족한 사람일 수 있다. 운명적인 사랑이란 건 없지만 사랑의 운명은 두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내 깊은 곳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에세이란 장르가 좀 그렇다, 속살 아닌 속살을 드러내는 것처럼 부끄럽기 그지없다. 에세이의 옷을 입은 심리학 교양서가 이미 낯설지 않은 이 시절, 진짜 에세이다운 심리학 에세이가 『심리학자가 사랑을 기억하는 법』이 아닌가 조심스레 입을 열어본다. 마음을 감정을 기억을 고스란히 열어 보이는 것이 에세이라면, 이 책이야말로 심리학자의 감정과 기억을 솔직하게 열어보인 에세이가 아닌가 싶고, 그 안에 저자의 학문적 기억이 드러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싶고. 예시로 첨부된 반가운 학자들의 이름을 눈에 담으며 과거에 담아두었던 그들의 연구들을 기억하고, <참고문헌>을 통해 저자가 공부한 흔적을 읽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특히 『소모되는 남자』등으로 유명한 로이 바우마이스터의 ‘높은 마음’ 연구 레퍼런스를 찾을 수 있어 기뻤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F. Baumei-ster)는 어떤 상황에서도 정돈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높은 마음’이 기본 값으로 세팅되어 있다고 했다. 또한 높은 마음이 익숙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각종 사고나 중독 문제를 비롯해 여러 범죄를 덜 저지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랑의 수명은 영생이지만, 사실 사랑은 언젠가 사멸한다. 슬프게도 우리의 유한한 기억 때문에, 기억이 사라지면 사랑도 사라진다. 소설가 이승우는 사랑의 숙주가 인간이라고 했지만 사실 사랑의 숙주는 인간의 기억인 셈이다. 벌써 다섯 번째 덮는 책의 마지막 장을 아쉬워하며, 이 사랑의 책을 좀더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이 마음을 기록한다. 이렇게 잔잔한 사랑의 속살들을 닮아갈 새로운 순간들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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