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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 Eyre
  •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 12,150원 (10%670)
  • 2011-01-20
  • : 2,621

점점 과거가 희미해지는 느낌이다. 분명 의미 있게 읽었던 책도 기억에 희미하고 한 장 두 장 넘기며 만나는 내 연필 밑줄과 필기에 흠칫 놀란다. 옛날 같았으면 완연한 내리막에서 불안해야 했을 나이, 세상이 변하여 아닌 척 한 자기 자리를 유지하며 아직도 내일을 바란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를 다시 펼친 건 정말 오랜만이다. 오래전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건 책을 쌓아두고 치여 사는 이의 특권 아닐까.

저자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는 1장부터 여러 장의 도판을 제시하며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와 ‘이것은 미술이다’로 저자를 도발한다. 미술사의 틀을 잡으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읽은 이라면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저자는 어떤 미술책이라도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라스코 동굴벽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부터 미술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게 무슨 말인가? 두 장의 도판으로 저자의 의도는 쉽게 드러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미술이 아니라고 하지만 뒤샹의 「엘라쇼오뀌」는 미술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


외부 주문에 의한, 종교적인 의제를 위한, 생활의 이용 목적을 위한 미술은 미술이 아니다. 작가의 내면에서 일어난 자이의 표현이 미술이라고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의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이 명확한 이야기를 하려고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는 한 권의 책을 썼다. 물론 뻔한 이야기만 주야장천 하지 않는다. ‘예술’이라는 용어, 미학 이론, 미술창작을 할 수 있는 특권, 아카데미의 영향력, 박물관의 역사, 모더니즘, 아방가르드-대중미술을 이야기하면서 미술의 사회학적 속성을 ‘계급’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한다. 서양 백인 남성 중심의 미술사 비판, 고급 취향의 부질없음, 대중문화의 가치 등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가 전혀 뻔하지 않게 서술된다.

물론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는 최근 책이 아니다. 1995년 작, 역자 박이소가 부지런히 번역했는지 한국에는 1997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이 나오고 오래되지 않아 역자가 사망해 번역을 손볼 만한 여력이 없었을 텐데도 번역은 훌륭하고 문장은 매끄럽다. 어디 하나 불만이 나올 데가 없다. 중간중간 분홍색 별색으로 첨가한 역자 주(注), 전문용어의 설명은 친절하다. 가격까지 훌륭하다. 표지도 분홍색 별색 1도, 내지는 재생 용지를 사용하고 도판을 흑백으로 인쇄해서 이 저렴한 가격이 나왔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데도 책 내지에는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도판들이 가득하다. 내지 레이아웃도 칭찬할 만하다. 도판이 글이 흘러가는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어 글을 읽다가 앞뒤 페이지를 뒤적거릴 필요가 없이 편안하다. 이미지가 중간중간 크게 들어가 있어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빠르다. 중급 독자라도 술술 읽으며 성취감을 느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곰브리치에 밑줄 긋고 서양미술사 교양수업을 착실히 들은 대학 1~2학년에게 추천한다. 서양 남성 백인 중심으로 서술된 곰브리치나 잰슨의 서양미술사에서는 볼 수 없는 여성, 제3국, 대중문화의 이야기가 균형 있게 들어 있는 아주 좋은 책이므로. 좋은 책은 오래오래 살아남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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