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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 Eyre
  • 시대를 훔친 미술
  • 이진숙
  • 27,000원 (10%1,500)
  • 2015-05-10
  • : 2,614

묵직하다.

이진숙의 책은 늘 그렇다. (500페이지!) 시류에 타협하지 않아 크고 두꺼울 뿐 아니라, 내용도 가볍지 않다. 그래서일 것이다. 이진숙이라는 이름 하나에 담긴 묵직한 신뢰는. 이진숙의 책이 나올 때마다 기대를 가지고 구입하는 사람들이 나의 핵심 지인 몇몇이다. 물론 나 역시 그 ‘신뢰’ 그룹의 일부다. 전작 『러시아 미술사』도 좋았지만, 『시대를 훔친 미술』도 너무 좋았다. 대단하다.

한 장의 그림이 나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은 당대의 흐름 가운데 길어올라 세계의 냄새를 담고 생각을 입힌다. 그래서 『시대를 훔친 미술』에 나오는 핵심 그림들은 그 시대의 정수를 담은 한 컷이다. 1416년 플랑드르의 랭부르 형제 「배리 공작의 매우 호화로운 기도서」에서 시작하여 1993년에 독일에서 재현된 케테 콜비츠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 까지, 저자는 28개의 키워드 그림을 제시하며 시대의 23순간을 밝히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책에 싣기 쉽지 않았을 수많은 근작 작품들이 인상적이었으며, 뒤쪽으로 갈수록 아는 듯 하면서 잘 몰랐던 내용들을 깊이 있게 읽어볼 수 있어 좋았다. 역시 근현대미술로의 접근성은 쉽지 않다. <민족주의의 발흥>부터는 정말로 뿌옇던 것들에 벽돌을 놓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대한제국의 사람들’이 나왔을 때 억! 소리가 나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쩜 나 자신이 한국인인데 우리나라 미술이 나올 거라는 생각을 요만큼도 하지 못했다니. 나도 모르게 미술사의 중심에서 우리나라를 너무나 멀리 제외하고 있었던 것.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과 함께 일제의 만행과 러일전쟁을 이야기하는 매끄러운 말솜씨라니. 저자 이진숙은 정말 대단하다. 흠을 잡을 수가 없다. 고급정보를 실은 묵직한 책이라 대중이 어려워할 거라는 걸 굳이 흠으로 잡아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거기에 체코의 민족주의에 알폰스 무하를 끌어내는 솜씨란... 대박 대박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주르륵.

실은 이건 미술책이라기보다 역사책이다. 『시대를 훔친 미술』이라는 감각적인 제목도 좋지만 내가 이 책을 설명해야 한다면 ‘시대를 반영한 미술’ 혹은 ‘시대를 훔친 미술’같은 제목을 붙이리라. 역사의 면면을 키워드처럼 잡아 유연하게 흐르게 한 책이라 저자의 센스와 세계관, 다채로운 인문학 지식에 대한 칭찬이 주가 되겠지만, 이런 지식이 켜켜이 쌓인 두꺼운 책의 가치는 요즘에 있어 더욱 귀하고 대단하다. 이 책은 세 번 이상 읽어야 그 가치를 제대로 안다. 무조건 강.력.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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