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 동네 서점에는 늘 자습서가 있었다. 자습서 중에서도 핵심개념만 정리한 서브노트형 참고서를 나는 무척 좋아했는데, 머릿속에 나무를 키우듯이 목차로 가지를 그리고 핵심 키워드를 달아 두면 공부하는 데 너무 유용했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중학교 시절 내내 교과서 아닌 책을 읽고 만화책을 달고 살던 내가 공부를 꽤 했던 이유는 바로 이 개념나무 때문이었다. 『이것만 알면 옛 그림이 재밌다』를 읽으며 내가 떠올린 건 그때의 서브노트, “아, 이 책 참 마음에 든다.”
평이한 제목 때문에 큰 기대 없이 집은 책, 옛 그림에 대한 지식을 정리할 요량으로 펼친 『이것만 알면 옛 그림이 재밌다』는 ‘알찬’ 책이었다. 한국의 옛 그림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쉬운 책’을 추천해 달라 한다면 나는 아마 이 책을 건네리라. 어쩌면 너무나 단순하게 1장 《옛 그림의 용어》, 2장 《붓과 먹 쓰는 법》, 3장 《화론과 화론서》, 4장 《중국의 화파》, 5장 《조선의 화파》, 6장 《옛 그림의 종류》로 구분한 목차가 개성 없어 보였다. 그 아래로 줄줄이 이어진 미술사의 기본개념들이 너무나 보통스러웠다. 그러나 책의 진가는 늘 알맹이다. 목차가 책의 80%라고 생각하는 나마저도 이 책의 알맹이를 보고는 감탄할 수밖에. 솔직히 너무 좋아서 저자 정보를 찾아봤다. (대단한 분이시구나! 역시!)
내용은 전혀 어렵지 않다. 한 페이지 절반도 차지 않을 듯한 단편적인 내용은 짧지만 핵심을 담고 있고, 짝해 나온 이미지도 적절하다. 그러나 이 수많은 개념어들은 한편 이 책의 품질을 보증한다. ‘배관기’라던가 ‘홍운탁월’, ‘황자구 수법’ ‘예황식 산수’ 등은 그간 내가 전혀 몰랐던 용어였다. 두꺼운 미술 임용고사 교재를 달달달 외웠던 나에게 이건 꽤 신선한 경험이다. 미술 임용고사를 공부해봤던 사람에게 이런 책은 또 다른 의미로 소중하다.
개인적으로는 미술 임용고시 생들이 본격적인 공부를 하기 전에 읽어보라고 꼭 권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건 부담스럽지 않게, 기쁘게 기분 좋게 지식을 만나는 것이다. 미술의 몸과 혼을, 그걸 설명하는 용어에 소중한 감정을 가진다는 건 미술 지식을 달달 외우고, 소화하고, 생활에서 찾아내고 적용하면서 기뻐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