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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 Eyre
  • 축복
  • 켄트 하루프
  • 14,220원 (10%790)
  • 2017-02-27
  • : 1,290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학을 했다. 교사는 직접 수업을 가르치지 않고 EBS만 연결해 놓고 ‘논다는’ 사람들의 시선이 굳이 알려 하지 않아도 ‘들린다’ 근데, 정말 그들 말대로 좀 ‘놀았으면’ 좋겠다. EBS 서버가 멈췄다. 로그인이 안 된다. 비밀번호를 잊어버렸다. 아이디를 여러 개 만들어서 중복 가입이 되었다. 선생님이 승인을 절대 안 해준다. (알고 보니 클래스 수강신청을 안 했다.) 화면이 클릭이 안 된다. (알고 보니 매뉴얼 pdf를 보고 클릭하고 있었다.) 결국 학생 몇 명보고는 학교에 오라고 한다. 내가 예상했던 바로 그 문제다. 이 부분을 하라고 매뉴얼 캡처까지 해서 보내주지 않았냐 하면, 그냥 안 열어봤다고 한다. 단 1분 숨돌릴 틈 없이 계속 울리는 전화와 팝업 메시지에 에너지는 쭉쭉 내려간다. 뉴스에서까지 이 아수라장을 ‘콜센터’라 표현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나만 그렇게 힘든 게 아니었다는 얘기다. 근데, 이 아수라장을 겪은 후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의외의 말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행복하다.” 일상과는 다른 모양으로, 일상을 시작하게 되어 감사함이 들었다. 고생해도 행복했다.

미국 콜로라도 가상의 마을 홀트에서 오랫동안 철물점을 경영해 온 대드 루이스, 온몸에 암이 퍼졌다고 한다. 루이스는 치료를 포기하고 죽음이 올 때까지 편안하게 살을 헤아리도록 한다. 그런 대드 루이스를 가운데 두고, 작가는 그의 아내, 딸과 아들, 홀트 마을의 이웃의 오래된 이야기와 현재 이야기를 서술한다. 켄트 하루프의 작고 얇은 책 『밤에 우리 영혼은』만 알고 있던 나는 묵직한 하드커버의 『축복』을 보고 적지 않이 당황했다. 긴 시간의 참 많은 이야기가 드라마틱 하게 들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덮을 때까지 감정의 고조와 희한한 사건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저 과거와 현재의 일상, 그것이 이 책의 처음과 끝이다. 그리고 이 일상이 저자가 전하고 싶은 축복이다.

대드 루이스와 그의 가족, 이웃들은 번지르르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상처도 많고 부끄러운 일도 많으며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알리기 어려운 비밀도 많다. 원하지 않게도 그게 알려질 때면 견디기 힘들도록 괴롭다. 대드의 50대 딸은 자기가 낳은 딸을 교통사고로 잃었고, 이제는 형편없는 남자친구만 그냥 만나고 있다. 그냥 자기를 만나러 오니까 사람이 그리워서 개념 없는 남자라도 만나보는 것 같다. 아들은 동성애 성향으로 말 못 할 고민을 가지고 여장을 하는 일로 학교 친구들에게 린치를 당한다. 이런 트러블로 인해 아버지와 등을 돌린 프랭크는 집을 떠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대드가 죽어가는 걸 알았어도 프랭크는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옆집 윌라와 에일린 모녀도 외롭고 쓸쓸하다. 에일린은 오래전 교사로 일할 때 유부남 교장 선생님과 벌인 사랑 말고는 변변한 따스함도 없다. 열 살 앨리스는 엄마를 잃고 갈 곳이 없어 버타 메이의 집으로 온다. 흔히 말하는 조손가족이다. 라일 목사는 홀트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아내는 바람이 나서 남편을 버렸고, 아들은 사랑의 실패로 방황하다가 자살 소동을 벌인다. 홀트를 떠나야 하는 라일 곁에는 아무도 없다. 과거 대드는 철물점 직원 클레이턴의 횡령을 발견하고 그를 해고했는데, 클레이턴은 자살을 했고 아내는 대드를 원망했다. 대드는 조건 없이 클레이턴 가족을 금전으로 지원한다. 대드뿐 아니라 각자 말할 수 없는 사연을 가지고 그럴듯하지 못한 삶을 살아간다. 이런 사연이 아름답게 회복되는 건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이라는 걸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이런 사연을 끌어안고 하루를 견디는 게 현실 임도 너무 잘 안다. 그러나 이런 일상을 하루 이틀 더해가고 그 가운데 무언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지속하는 일이 축복임을 우리는 자꾸 잊는다.

켄트 하루프는 대화를 표현할 때 대상의 이름을 반복해서 드러내지 않고 ‘그는’ 혹은 ‘그녀는’을 주어로 사용한다. 대사에는 따옴표를 쓰지 않고 줄줄이 이어 쓴다. 읽기에는 불편하지만 보기에는 부드럽고 심심하다. 이것 역시 저자가 의도한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불만이었지만 저자의 의도라면 수긍할 수 있을 만큼 고요한 효과가 있다. 드라마틱 한 전환 하나 없는 이 밋밋한 소설 『축복』은 우리에게 가장 현실적인 삶이 가장 확실한 축복임을, 그중에 가장 빛나는 축복은 사랑임을 잊지 않고 강조한다. 그냥 사는 일,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죽음을 앞두고야 우리는 알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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