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유명해진 데는 그 자신의 일도 있었지만, 12살 차이 나는 ‘*십억 자산가’ 아내의 이야기가 한몫, 아니 두 몫을 했다. 그렇게 귀에 꽂힌 아내의 직업은 내가 너무나 잘 아는 회사의 대표이사. 사람들은 놀랐을 것이다. 미술 전시회를 기획하는 회사가 그렇게 많은 돈을 운영한다는 걸. 이걸 다른 말로 풀자면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사람들이 미술 전시회에 어마무시하게 관심을 가지고 모인다는 의미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돈이 쌓인다는 의미다. 이제 사람들은 새로운 미술품 전시 소식이 들릴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우고, 가봐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이제 미술관은 무엇보다 힙한 장소다. ‘인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사진이 잘 나오는 미술관’이라는 ‘Instagram-ready Museum’ 신조어가 생길 정도이니.
미술관 매니아로서는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하다. 미술 전시회의 즐거움을 아무리 말해도 몰랐던 예전보다 미술 전시를 이야기하며 맞장구를 칠 사람이 많아져서 좋지만, 한편 항상 한산하던 미술관이 북적거리고 시끄러우니 굉장히 불편하기도 하다. 그러나…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미술 전시회의 관람객 여럿은 작품을 진지하게 감상하기보다 작품을 좋은 배경으로 하여 ‘인생샷’ 찍기에 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것도 정말 좋은 현상이다. 일단 미술관에 와서 사진을 찍어야 기분좋게 작품을 볼 것이고, 또 미술관에 오고 싶어서 여러 번 오다 보면 작품을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게 될 거니까. 그리고 그게 감상의 깊이가 된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사실, 미술 감상은 얕은 게 아니니까. 사실 미술 감상은 어렵다면 너무 어려울 수 있는 고차원의 세계니까. 그걸 처음부터 바라는 건 말도 안 되는 거다. 사실 나도 아직 멀었고. 미술 감상에 관한 책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미술 지식을 전달하는 책이 백이라면 그림 감상에 연관한 책은 열 정도라고 할까. 더 접근성이 좋은 책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미술관 100% 활용법』은 전자책으로 구매해 읽었다. 전자책의 간편함이 좋아 가능하면 전자책을 사는 나지만, 요즘 다시 종이책에 대한 갈망이 올라온다. 집중도의 차이도 문제지만, 물성의 차이도 크다. 표지나 내지의 질감을 만져볼 수는 당연히 없고, 표면의 광택이나 묵직한 두께와 무게감을 상상하려면 구글링을 열심히 해야 한다. 책의 내용을 담기에 마땅한 몸이어야 균형 있는 책일 테니. 가장 큰 낯섦은 후루룩 전자책을 넘겼는데, 의외로 금방 끝이 보였다는 것. 『미술관 100% 활용법』은 미니북이었다. 구글이미지를 검색해보니 비스듬하게 찍어 두께를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이 하나 나오는데, 하드커버였다. 작지만 무게감 있으며 권위 있는 디자인이다. 내용 역시 사실 그러하다. (전자책을 보는 사람은 이렇게 실물감을 알 수 있는 북디자인 사진을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저자 요한 이데마는 30개 이상의 짧은 꼭지를 통해 미술관에 가기 전 염두에 둬야 할 얼마간의 조언을 자유롭게 펼친다. 사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이 바로 이 (목차 없는) 32개의 꼭지다. 이 개념만 제대로 이해해도 이 책의 알짜배기를 다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한 이데마는 틀을 제시하지 않는다. 자유롭게, 무엇보다 자유롭게, 자율성을 드높여서 미술관의 모든 환경을 즐기면서. 미술 감상은 정답이 없고, 작품이 자기 자신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도록 하라고 권유한다. 경험을 쌓아가는 것, 그것이 미술 감상이다. 책의 구성과 형식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번역서로서의 어려움, 대한민국의 미술관에서는 적용이 가능할까 싶은 낯선 분위기가 아쉬웠다. “그저 미술관 안에 있다고 해서, 위대한 미술 작품 앞에 서 있다고 해서, 또 그것을 감상한다고 해서 당신의 미술 경험이 의미를 갖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그런 일이 일어나려면 아무튼 그 작품을 이해하거나 그것에 감동함으로써 미술과 개인적인 연결고리를 가져야만 한다.”
작은 책 이야기가 나왔느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자면, 이렇게 작은 책일수록 구체적인 책의 내용을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온라인상에 포스팅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 개인이 책을 잘 읽은 것은 좋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포스팅을 보고 책의 좋은 내용에 감탄하고, 정작 책을 안 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이렇게 작은 책일수록! 온라인의 자료가 가볍다는 건 아니지만 책은 그만큼 정제된 정보이고, 책이라는 틀로 묶여 세상에 나왔기에 접근하는 데 어느 정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직접 돈을 주고 책을 사는 금전적인 대가일 수도 있고,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기다려 빌려 보는 노력의 대가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책을 만든 저자와 번역한 역자와 출판사에 정당한 대가가 돌아가야 한다는 것. 가장 중요한 걸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삼천포로 빠졌지만… 이건 정말 중요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