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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 Eyre
  • 면역에 관하여
  • 율라 비스
  • 15,300원 (10%850)
  • 2016-11-25
  • : 4,855

‘안아키’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라는 네이버 카페 이야기를 듣고 황당함을 넘어서 분노한 적이 있다. 안아키의 운영자 김효진 한의사는 백신이 아이를 병들게 한다며 예방접종을 거부하고, ‘자연 치유’를 해야 한다면서 앓는 아이를 그대로 방치한다. 그걸 몸 공부라고 부르면서 아이를 그대로 둔다. 한편 종교 때문에, 수혈을 하면 안 된다는, 부모의 신념 때문에 수술을 못 하는 아이를 TV에서 본 적도 있다. 아이는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수술을 하게 해 달라고 울부짖었지만 부모는 들은 척도 안 하고 기도만 했다. 이건 아이를 위한 게 아니라 아이에게 고통을 주는 거다. 분명 아동학대다. 그런데 이걸 결정할 수 있는 건 왜 부모뿐인가? 누군가가 여기에 개입할 수는 없는가. 아니... 좀 더 근원적인 문제로 돌아가서 뭐지? 대체 무엇이 부모를 그렇게 만든 걸까? 혼란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 잊고 있었던 그때의 감정이 『면역에 관하여』를 읽으면서 치솟아 올랐다.

저자 율라 비스는 첫아이를 낳으면서 자궁내반증을 겪고, 그 과정에 타인의 피를 받아들이고, 타인의 손이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건강의 천신만고 끝에 생명을 건지고 아이를 품에 안은 후, 어머니로서의 작가의 고민은 깊어진다. 모든 초점이 건강에 가닿았다. 자기의 몸은 이미 경계가 없이 세계와 뒤섞인 경험을 한 어머니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이에게 백신을 접종할 것인가, 아이가 이 백신을 감당할 만큼 강인할 것인가. 게다가 그녀가 아이를 낳은 2009년은 신종플루가 세계를 휩쓴 해이기도 했다. 더욱 고민의 양상이 다르고 깊을 수밖에. 그녀는 “모든 의심의 오솔길을 직접 걸어본 뒤” 결론을 내린다. 백신은 꼭 필요한 것이라고. 현대의학의 혜택을 입은 사람이라면 순수한 자연의 몸이라고는 그 누구도 말할 수 없다고. 의학 덕분에 우리의 몸은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거라고. 우리 몸은 수많은 생물이 기생해 함께 살아가는 전쟁터라고. 무엇보다 우리 몸은 서로의 면역에 기대어 안전할 수 있는 연대된 공간이라고.

사실, ‘백신 찬성’은 책을 고를 때부터 예상한 결론이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면역에 대한 이야기인데.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의 면역 필드는 구멍이 나는데. 다만 『면역에 관하여』의 탁월한 점은, “모든 의심의 오솔길을 직접 걸어본” 저자의 고민의 흐름을 따라, 백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 역시 (앞서 있어 온 신화, 역사상의 문제를 통해 ) 살펴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신을 접종해야 하는 당위성을 설득력 있게, 또한 다양한 비유를 통해 아름답게 서술한 것이다. 같은 정보를 전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내용을 어떤 모양으로 강약을 다르게 해서 전달하는지는 또 다른 차원의 능력이다. 그것이 아마 우리가 늘 고민하는 평범과 비범 사이일 것이다. 단언컨대, 이 책의 여러 면면은 아름다웠다. 이토록 아름다운 과학책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나는 『면역에 관하여』에서 강조하는 ‘몸’의 이야기에 목하 동의했다. 그것도 여러 번 손뼉을 치면서 몸의 이미지를 다시 그리고 또 그렸다. 의학의 혜택을 입은 인공적인 사이보그로서의 몸이 아니라, 침투성이 높은 불완전한 경계로서의 피부로 둘러싼 몸 말이다. 이 피부의 개방성 때문에 우리는 누구나 다른 몸들과 이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이미 스킨십의 힘을 경험해 알고 있지 않은가. 바이러스와 세균의 침투뿐이 아니라, 몸의 온도와 인간적인 교감, 감정의 교류가 가능한 피부 접촉의 힘을. 이 몸의 개방성 덕분에 우리는 아프기도 하지만 타인과 연결되고 세계와 연결된다. 그러니 우리가, 나 혼자의 몸뿐이 아니라 연대한 우리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는 감정적으로뿐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뭐, 제대로 고민했다면 결론은 동일하겠지만. 서로의 몸에 빚진다는 건 참 멋진 일이다. 서로의 몸에 연대한 공간이 면역이라는 건 더할 나위가 없고. 이 공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우리가 각자의 몸을 가지고 한 몸이 된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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