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가면서 배운 건 다른 사람들이 너를 해치기 전에, 네가 먼저 해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널 존중받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런 생각을 극복하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좋은 상담치료사를 만나고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저의 삶은 파괴되었을 겁니다. 나는 지금의 인터뷰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 치료사는 저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아무도 저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그만큼의 충분한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아 두려웠었어요. 아마 6주나 8주 정도 그녀와 만날 수 있겠지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2~3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수잔 나티엘, 『세상이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 아마존의 나비, 2020, P.117
지인 하나가 울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걸 묵묵히 듣고 있었던 적이 있다. 그이는 자기 삶이 너무 어렵고 버거워서, 그걸 극복하기 위해 너무 많은 일을 하곤 했다고 했다. 그렇게 불꽃처럼 불타오른 후 한동안 도망쳐 있기를 반복했다고. 자기를 재처럼 소진한 후에 자기를 감당할 수가 없어 하는 행동을 통제할 수 없었다고. 그러면서 자기 가정의 어려움과 결혼 후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살기 위해 상담을 받았고, 상담을 공부했다고. 자기 문제가 양극성 장애임을 알고 나서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조증』(존 가트너, 살림비즈)을 읽었던 후라 그이의 행동이 조증과 일치한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고, 이후 낙차 증상도 받아들여졌다. 내가 그에 대해 느낀 마음은 무엇보다 존경심이었다. 자기 어려움을 인식하고, 증상에 휘둘리면서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러다가 상담을 만나고, 신뢰할 수 없는 상담자를 신뢰해 보려고 노력하고, 하기 싫어도 믿을 수 없어도 꾸준히 상담을 받고, 결국에는 상담을 공부하고 대학원을 진학한 그 사람의 삶이 무엇보다 진솔하고 존경스러웠다.
『세상이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은 이런 증상을 가진 사람에게 다가가 그들의 삶을 진솔하게 묻고 기록한 인터뷰집이다. 특히 그들의 아이가 부모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과 생경함과 고통을 날것의 언어로 기록한다. 부모의 증상이 발현될 때 아이에게 가하는 충격은 가히 파괴적이다. 그 간극 때문에 큰 상처를 남긴다. 그런데도 상처를 입은 아이들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극복해 나간다. 저 돌변은 병 때문임을 인지하고 부모의 본성은 다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아이들은 부모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은 삶을 꿈꾼다. 물론 순순히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는다. 부모로 인해 그들이 보고 들은 것 때문에 삶은 그야말로 고통스럽다. 선선히 건강하게 성장하는 게 불가능한 게 더 자연스럽다. 사실 나의 눈에도 그런 케이스가 현실에서는 더 많이 보이고. 이 책에서 나온 인물들은 약간의 행운 덕일까? 긍정적인 성장도 비교적 많이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들이 부모를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받아들인 후, 자기 상처를 인정하고 자기 성장을 위해 발버둥을 친다는 면에서 삶은 가치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지만, 아이 역시 부모에게 영향을 미친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생명의 본능으로 삶을 투쟁한다. 그게 대단한 것 아닐까.
『세상이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은 대상자 인터뷰이에 대한 인터뷰, 대상자에 대한 인터뷰어 수잔 나티엘의 고찰 및 이 이야기를 통해 새로이 배워야 할 점, 거기에 옮긴이 이상훈의 후기로 구성된다. 이러한 흐름은 인터뷰를 마무리를 짓는 역할을 하면서, 저자의 의도를 집중감있게 전달한다. 옮긴이의 후기 역시 깊이 있고 진중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구성이 무척 좋았고, 읽는 이를 배려하는 편집이라고 느꼈다. 중간중간 들어가는 정신적 고통을 겪은 화가의 컷도 세련되었으며, 보라색을 기조로 한 편집 디자인이 세련되어 읽기가 좋았다. 편집 디자인에 민감한 독자로서 편안함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 중에서도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조현병 화가 리처드 대드의 강렬한 삽화 선정이란!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세상이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은 낯선 주제 때문에 어렵게 느낄 수 있지만, 일단 읽기로 결심하고 나면 무척 쉽게 책장이 넘어가는 책이다. 주제의 낯섦을 넘어선 나놈에게 쓰담쓰담을. 편견과 선입견은 벗겨내면 그만인 셀로판지일 뿐. 이제 정신질환 분야에 대해 아주 약간의 이해가 생겼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