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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 Eyre
  • 복학왕의 사회학
  • 최종렬
  • 21,600원 (10%1,200)
  • 2018-06-29
  • : 679

나는 born 서울내기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지역 학교를 졸업했고 직장 역시 서울에서 잡았다. 사는 곳은 서울 안팎을 왔다 갔다 했지만 삶의 80퍼센트 이상을 서울에서 살았다. 지금도 사는 지역보다 서울지역 지리가 더 익숙하다. 상대적으로 지방은 내게 낯설고 어려운 곳이다. 비교적 가까운 강원도나 충청도는커녕 지금 살고 있는 경기지역마저도 한두 정거장만 더 가면 낯설기 그지없다. 그 말은 내가 서울의 지리뿐 아니라 서울의 문화와 인간관계 분위기에 익숙하다는 의미다. 사실 구직할 때 서울 외 다른 지역에 지원할 생각을 못 해본 건 그 낯섦을 극복할 요만큼의 용기도 의지도 없어서였다. 서울 밖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으니까. 연고도 없지만 아는 것이 없다는 건 두려움이기도 하고 머나먼 거리감이기도 하다.

『복학왕의 사회학』에서 이야기하는 대구 경북 지역은 거리감을 가늠하기도 힘들 만큼 먼 지역이다. 딱 한 번 KTX를 타고 출장 간 길에 들른 대구는 고속기차를 타고도 세 시간이 걸릴 만큼 멀고도 멀었다. 이렇게 멀기만 한 ‘지방’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복학왕’이라는 구수한 키워드로 나의 흥미를 끌었다. 귀여운 제목과 아기자기한 삽화는 묵직한 책을 가뿐하게 만들며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의지를 자극했다. 그러나 묵직한 책은 무게 값을 한다. 진짜 진짜 길었다. 후반부에는 지루해서 책장을 휙휙 넘길 만큼 체력이 달렸다. 전하고자 하는 주제는 명확한데 사회학적 ‘질적연구’가 그렇듯이 예시가 많고 길어서, 아주 충실하지만 집중력이 축나는 책이기도 했다.

『복학왕의 사회학』은 반(反)자기계발서 같다. ‘서울내기’인 내게 “바쁨”과 “열심”이 혼합된 자기계발서적 삶은 너무나 익숙하다. 현실에 안주하면 안 되고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하고 잠을 줄여서 공부하고 라이벌을 이겨야 하고 미래를 위해 오늘을 한순간이라도 낭비하면 안 되는 삶. 그것이 내가 알아온 대학생과 직장인의 보통 삶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정말, 정말, 너무나 낯설다. “경쟁의 장”이 아닌, “가족의 장”에서 사는 사람들. 그들이 지방의 사람들이었다.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최종렬 교수는 2017년, ‘복학왕의 사회학 : 지방대생의 이야기에 대한 서사 분석’이라는 논문을 써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복학왕의 사회학』은 그 논문에 내용을 덧붙여 발간한 책이고. 제목 자체가 논문의 그것이라기에는 친근하고 귀에 쏙 들어온다. “지방대생은 이렇게 산다”는 논문의 부제 그대로 내용이다. 최종렬 교수는 지방대 재학생, 졸업생, 지방대 부모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데, 핵심은 계속 반복되는 키워드에 있다. “성찰적 겸연쩍음”, “적당주의 집단 스타일”, “가족만이 최고”라는. 열심히 하고 잘 될 거라 확신하기엔 뭔가 부끄러운 겸연쩍음, 큰 욕심을 낸 적도 없고 욕심내야 할 필요성도 못 느끼는 적당주의, 내 주변 가족들과 친구들만 잘 챙기면 되고 연줄로 인해 많은 것들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가족주의가 이 책을 가득 채우는 이야기의 핵심이다.

다만 이들 역시 같은 열망을 가지고 있다. “잘 사는 것” 늘 고민하는 것이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는지를 “복학왕”의 잘 살기는 “평범”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 모두의 아주 다른 모습이다. 정말이지 사람 사는 게, 소망과 목적은 다 똑같다.

솔직히 몰랐다기보다는 피상적으로 알았다는 게 정확하다. 나는 지방의 이야기를 아주 몰랐던 건 아니지만 굳이 알려고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서울에서 태어났으니까, 서울에서 직업을 가졌으니까, 내가 서울에서 월급을 받고 사니까, 내가 서울에서 노니까. 사는 게 급하다 보니 그랬다는 것 역시 너무나 자기계발서적이다. 왜 모든 담론이 서울 및 수도권 중심인지, 지방민들이 왜 서울에 정착하기가 어려운지, 임금과 부동산 등 서울과 지방의 생활 격차가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 미처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복학왕의 사회학』은 신선한 책이다. 지나치게 길고(두껍고), 그로 인해 흥미롭던 이야기가 재미 없어져 버렸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랄까.

『팩트의 감각』에 이어 최근 읽은 책들 몇몇이 편협한 내 시각을 계속 깨우쳐준다. 그냥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내가 선 발밑만 보게 된다. 나와 그들이 늘 그리하듯이 “잘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을 잊으면 안 된다. 제대로 살려면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 두리번거리며 계속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도끼같은 책”도 계속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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