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j는 가장 파악이 잘 안되는 MBTI 유형이라고 한다. 성질 자체가 상황 혹은 상대방의 맞춤형 변신을 잘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의 장점을 잘 흡수하기도 하고, 가장 T를 잘 활용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도 한다고 한다. 20대 초반 나에게 처음 MBTI를 가르쳐 준 MBTI 연수원 오빠는 “너는 전형적인 INTJ 여성이야”라며 “우리 같이 T가 발달한 인간은 왕따 중의 왕따라 외로워도 슬퍼도 꿋꿋이 살아야 해”하며 나의 T 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꿋꿋한 T 인간이 아니었다. 인생의 질곡을 굽이굽이 넘어서자마자 나는 본성대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는 흐트러진 실같은 F형 인간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꽂히는” 데 약하다. 자료를 분명 보고 분석하지 않는 건 아닌데, 결정적인 순간은 내 감정이 가는 곳이다. 마음 가는 대로 해 댄다. 그러다 보니 실수도 많고 불안도 크다. 『팩트의 감각』은 이런 나의 F 력 단점을 지그시 바라보며 시각의 전환을 요구했다. 책의 이야기는 한 줄로 요약된다. “FACT를 가지고 현상을 찬찬히 알아보면, 느낌이나 감정으로 받아들였던 것보다 실제는 훨씬 다르다는 것.” 그러니 제대로 인식하자는 것. 잘못된 인식을 발견하자는 것.
저자 바비 더피는 《1장 건강: 나 정도면 비만 아니야》, 《2장 섹스: 얼마나 하고 있습니까? 》, 《3장 돈: 은퇴 비용, 얼마가 필요할까?》, 《4장 이민과 종교: 외국인 노동자가 정말 내 일자리를 위협할까?》, 《5장 범죄와 안전: 전 세계 테러는 정말 급증하고 있을까?》, 《6장 선거: 정치인들의 말에 속지 않으려면》, 《7장 정치: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이 말하는 교훈》, 《8장 온라인 세계: 거품 가득한 세상에서 제정신으로 살아가는 법》, 《9장 전 지구적 이슈: 세상은 나빠지고 있다? 나아지고 있다! 》, 《10장 어느 국가가 가장 많이 틀렸을까?》, 《11장 팩트 감각을 살려주는 열 가지 방법》의 열한 장의 구성으로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하고 팩트 감각을 기르는 법을 요약하여 알려주는데, 각 장마다 제시하는 일상적 주제와 통계들이 피부에 와닿아 매우 흥미롭다. 물론 《11장 팩트 감각을 살려주는 열 가지 방법》만 읽어도 『팩트의 감각』의 주제를 파악하는 데 무리가 없겠지만, 1장부터 9장까지 삽입된 이민자 수, 10대 임신율, 범죄율, 비만율, 세계적 빈곤 문제의 동향, 페이스북 이용자 수 등의 주제별 여론과 통계와의 간극은 지극히 흥미롭다. 개인적으로는 나라마다 다른 인식의 갭, “평균 추측 값과 실제 비율의 차이”를 분석한 10장이 흥미로웠는데, 1) 감정 표현의 정도, 2) 교육 수준, 3) 미디어와 정치 수준 중 ‘1) 감정 표현의 정도’, 즉 자신감을 표현하는 민족성에 대한 정도만 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2)와 3)에도 몇 개의 끈이 연관을 찾을 수는 있지만 지나친 자신감만큼은 아니다. 이것 역시도 “내가 보는 것이 전부”라는 인식의 오류가 ‘팩트의 감각’을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
책을 읽으며 내내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떠올랐다.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지는 것 같지만, 곧 세상의 종말이 다가올 것 같지만, 사실 세상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으며 더욱 희망적이라는 것. 스티븐 핑커 역시 바비 더 피와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논증했다. 이제 나는 자신 있게 『팩트의 감각』을 추천한다. 무엇보다 술술 읽히고 재미있다. 책에 있어 이보다 더 좋은 덕목이 또 있나 싶다.
특히『팩트의 감각』은 내 인식의 부족분을 살짝 괴어주는 듯한 좋은 책이었다. 그동안은 대개 ‘하트의 감각’으로 세상을 살아갔다면 이제는 ‘팩트의 감각’을 먼저 사용하도록 바로 오른손 위에 오른 눈 위에 두어보려고 한다. 그러나…
책을 덮으며 다시 한 번 생각해봤는데, T와 F의 간극에서 나는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어떤 문제인지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세상과 타인의 인식에 대한 문제라면 ‘팩트의 감각’에 최선을 다해 선택하겠지만, 나 자신에 대한 문제라면 ‘하트의 감각’을 믿을 수밖에 없으리라. 가능한 내 인생의 가장 결정적 순간에는 ‘팩트의 감각’과 ‘하트의 감각’이 꼭 같은 방향을 가리키기를, 적어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키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