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마녀의 책여행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이여, 그 이름.. 바로 블랑카...
그냥 '블랑카' 로 시작해 '블랑카' 로 끝맺는 10개의 소제목을 읽다보니 생각난 김소월 시인의 '초혼' 을 인용해 보고 싶어져서 적어본다. 부질없는 짓...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책 속 남자주인공에게 블랑카는 곧 사랑이요, 그녀만을 애타게 찾는다. 그녀도 본인도 죽여가는 그런 사랑에 빠져있는지도 모른채. 부르다 부르다 결국 서로 죽을 사랑(=블랑카)인 것이다.
 
이 책은 좀 희한한 책이었다. 생각보다 책 두께가 두껍지 않아서 빨리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바뀐 생활패턴에 독서시간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마구잡이로 바뀌는 시간구성, 회상구조에 머리가 복잡해져 불편한 맘으로 책을 더디게 읽게 되었다. 전처럼 편하게 즐기며 느긋하게 독서를 할 수 없다는 상황이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조급한 맘 탓인지 내가 기대했던 아멜리 노통의 냉소적 유머 보단 알랭 드 보통의 지적 유희 만 더 많이 느낀 듯 하다. 한 박자 더디게 책 내용을 받아들인 걸 보면...
 
이해부족의 와중에도 책을 끝까지 읽었던 건 그래서 블랑카가 결국 어떻게 되었다는 거야 와 과연 블랑카와 루이스 오네시모가 어떻게 될까.. 이 두가지 때문이었다.
 
이야기는 줄곧 블랑카와 결혼한 행운의 남자 '마리오' 의 입을 통해 전개된다. 그의 평범한 삶, 삶이 따분해지는게 싫다며 떠나버린 약혼녀, 그 후 절망 속에 빠져 있던 블랑카와 우연히 만나고 다시 운명적인 재회를 거치면서 어떻게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지 등에 대한 이야기가 다소 독자에 대한 배려심 없이 펼쳐친다. 현재에서 과거, 그리고 다시 현재로 날아다니며 자유롭게 자신과 블랑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읽으면서 첨에는 마리오의 정확하고 짧은? 정확한 꿈같은 근무시간이 너무나 부러웠다. 오전 8시에서 오후 3시라니... 게다가 이후 거의 모든 시간은 아내 블랑카와 함께 한다. 정말이지 첨에는 그런 자상한 남편을 몰라주고 따분하다느니, 열정만 있지, 대책은 없는 블랑카가 이해불가능이었다. 마리오의 말처럼 그녀는 돈, 권력을 싫어하면서도 마다하지는 않고, 그것없이는 살 수 없는 모순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마지막에 그가 깨달음을 얻은 것을 나는 참 다행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마리오가 하고 있는 건 뭐랄까... 정확히 말해 정상적인 사랑이라고 말하기 힘들었다. 보답을 기대한다거나, 한쪽이 일방적으로 헌신하고 희생한다거나 하는 관계는 가는 빨랫줄 위에 올려둔 유리병처럼 언젠간 금방 쉽다. 특히나 상대가 원하는 건 생각지도 않고 혼자서 마음대로 이랬다 저랬다 하는게 사랑이라니... 말도 안된다.
마리오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내가 부재중인 것이 아니라 마리오의 사랑이 부재중인 것이다. 서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 상태에서의 사랑, 마리오가 하는 한쪽의 일방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생각해보면 이 책의 주제는 좀 어렵다. 굳이 잘잘못을 가리자는 건 아니지만 잘잘못을 따지기도 어렵고..
집착과 사랑을 그 누구도 완전하게 정의내리기 힘든것처럼... 일방적으로 블랑카에게만 집착하는 마리오나 현실은 회피한채 몽상적이기만 한 블랑카, 둘 모두가 모두 잘못이 있다고 본다.
그래두 자꾸만 마리오에게 맘이 가는건 이 책의 화자가 마리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옛날 내 모습이 떠올라서도이다.
글쎄, 우리는 마리오만큼, 잘못된 사랑을 많이 한다. 사랑에는 제대로된 방법이 없으니까...
언제쯤이면 사랑에 대해 반반큼이라도 이해하고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을까.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