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마녀의 책여행
매일 아침 동물원에 동이 틀 무렵이면, 찌르레기 한 마리가 표절이 의심되는 노래 메들리를 힘차게 뿜어내고, 멀리서 굴뚝새들이 몇 가지 화음을 넣으며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거기에 정각에 울리는 시계소리처럼 단조로운 뻐꾸기 소리가 가미된다. 갑자기 긴팔원숭이들이 집합 나팔소리처럼 요란하게 고함을 치면, 이어서 늑대와 사냥개들이 일제히 짖어대고, 하이에나들이 끽끽 소리를 내고, 사자들이 으르렁거리고, 갈까마귀들이 까악까악 울어대고,... (중략) - p.17
 
다이앤 애커맨의 글을 읽고 "동물들에 관해 쓸 때 특히 최고의 솜씨를 보여준다" 고 평한 시애틀타임스지의 말이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유머와 함께 저 생생하고 다양한 의성어 표현이란 정말이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책 소개를 접할때만 해도 유태인학살, 그 암울한 시기에 목숨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물원에 유태인들을 숨겨주던 동물원 부부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단순한 픽션 소설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는 그 당시 끔찍했던 시대상의 보고서 같은 느낌이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숭고한 도덕적 양심을 지켰던 동물원 원장부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기록, 그밖에 수많은 자료들을 참고하여 1930~40년 당시, 전운이 감돌던 폴란드와 독일 등 유럽과 열강의 관계와 암묵적으로 오고갔던 자국의 이익을 위한 여러 비밀적 활동들, 결국 전쟁이 터지고 발생했던 나치의 끔찍한 인종주의 정책, 그에 대비되듯 바로 서술되는 폴란드 독립활동을의 여러 모습, 점점 더 심각해지는 나치의 살생과 그에 반항하듯 좀 더 비밀스럽고 대담스운 다양한 비밀조직 활동들과 위장술 등... 담담히 당시의 비극을 사실적으로 서술하는 와중에 동물원 원장 부인인 안토니나의 심정을 접하는 일기가 적절히 배합되어 그당시 비극사에 대한 정보도 알게되면서 안토니나의 감정에 공감하여 책에 빠져들게 한다.
게다가 중간중간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만드는 반전을 불러오는 사건들도 몇 개 있어서 몇번이나 조마조마 하며 읽었다.
또, 영화로 단시간내에 비극의 참상을 영상으로 접하는 충격과 이렇게 책으로 서서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잔혹해지는 나치의 횡포에 고통에 빠지는 유태인들의 생활에 점점 동화되는 것 같은 느낌은 또 색다른 느낌과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중반, 본격적으로 나치의 위협적인 정책 아래서 유태인들을 구하고 아내도 모르게 비밀결사대 활동을 하던 얀의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한참이나 아름다웠던 동물원 생활, 동물과의 즐거운 한때의 이야기가 나온다. 전운이 감돌고도 함참이나 안토니나는 전쟁이 일어날꺼라 믿지 않는다. 그저 아들 리시가 전쟁 걱정 없이 행복하고 안전하기만을 바랬기 때문이다.
 
바르샤바의 정치 이야기에서 멀리 떨어진 별장에 있다 보면, 다시 말해, "평온하고 단조로운 농촌 생활, 하얀 모래언덕과 수양버들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풍경" 속에 고치 속 누에처럼 폭 싸여서, 별난 동물들과 작은 남자아이의 모험으로 하루하루에 생기가 돋는 그런 생활을 하다 보면, 세상일 따위는 무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적어도 세상일을 낙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는 있었다. 고지식할 만큼 순진한 시선으로. - p.48
 
이런 책을 보면 나에게는 먼일인 것만 같은 그런 끔찍한 역사가 다시한번 되풀이되지 않기만을 바란다. 또 나도 그렇게 목숨의 위협에도 아랑곳없이 그들을 도울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들의 이런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읽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