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조선왕조의 기본 성격을 살펴보자.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았고 명분상 왕권을 앞세웠을 뿐 유교적인 양반 관료에 의해 통치되었던 시대였다. 抑佛崇儒 정책을 썼지만 문화적 사상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했다. 조선왕조를 사대부정권이라고도 한다. 앞선 고려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웠던 조선은 어떤 모습일까? 기득권자들의 삶만 우선시 하고 백성들은 항상 아웃사이 취급을 받았다. 순하디 순했던 백성이 바뀌기 시작했던 건 아마도 임진왜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백성을 버리고 저만 살겠다고 피난을 가던 기득권자들의 모습은 백성들에게 현실을 각성시키기에 충분했을테니. 사실 외적의 침입은 늘 있었다. 크게 당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아는 조선은 기득권자들이 있어 버티었던 것처럼 왜곡되어졌다. 그러니 백성들의 삶은 오죽했을까? 이 책은 평화롭게만 포장되었던 조선의 민낯을 드러낸다. <조선범죄실록>이라는 제목에서 이미 말하고 있듯 조선시대의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삼았다. 범죄가 많았다는 건 백성들의 삶이 녹록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양반들의 수탈을 견디기 힘들었다. 먹고 살기 위해 화전을 일구었고, 먹고 살기 위해 산으로 올라가 산적이 되었다. 오래전에 읽었던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라는 책이 떠오른다. 역사는 고상한 선비를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음을 말하고 있었다. 명분에 의한 명예살인과 보복살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졌던 조선.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 화폐와 문서를 위조하던 사기꾼이 들끓었다는 조선. 짐승보다도 못한 값으로 처분 되었던 노비들의 삶. 조직폭력배가 거리를 활보했다는 조선. 조용한 아침의 나라, 예의와 도덕의 나라로 불리웠다던 조선의 속살은 정말이지 참혹했다. '경을 친다'는 말의 의미가 새삼스럽다. 죄인의 몸에 죄명을 새겨넣는 자자형이나 노비가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마에 글자를 새기는 낙인을 뜻한다는 걸 이제사 알게 된다. 좀처럼 사건의 범인을 가려내기 어려울 때는 첫 번째 목격자를 의심하기도 했던 까닭에 시신이 발견되어도 모른 척하고 넘어가는 일들이 늘어났다고도 한다. 연좌제로 인해 열 살인 아이에게 압슬형까지 실행했다니 정말 놀랍다. 압슬형까지 견디면 달궈진 인두로 발바닥을 지졌다고 한다. 고문의 목적이 자백이었기 때문이란다. <성호사설>에 등장한다는 '염매'는 정말 끔찍하다. 18세기 무렵에 횡횡했던 범죄 염매는 조선시대 최악의 저주술이었다고 한다.
한양이 범죄도시가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한양의 높은 인구밀도다. 당시 한양은 사대문 안과 성저십리하고 불리는 성 밖의 10리까지를 관할 구역으로 삼았다. 조선 후기에는 지방의 인구가 몰려들면서 30만 명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정한다. 좁은 지역에 많은 인구가 몰려있으니 범죄가 더 많이, 더 자주 발행할 수밖에 없다. 또한 다른 지역과 달리 인구의 유입이 많다는 점도 범죄가 증가한 원인이다.(-177쪽) 왠지 기시감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약자를 위한 법은 없다는 말이 피해자를 위한 법이 없는 작금의 법체계를 떠올리게 한다. 세월은 흐르고 시대가 변했다. 그렇다면 그 때의 삶과 지금의 삶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똑같다는 말처럼 사람 사는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그 때나 지금이나 백성들은 살기 어렵고, 범죄 역시 줄어들지 않았다. 형태만 변했을 뿐이다.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만들어낸 존재와 그들이 벌인 범죄 행각이라고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음이다. 수많은 범죄와 함께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책에서 자주 언급되었던 흠흠신서欽欽新書를 다시 생각한다. 다산 정약용이 간행한 조선 시대 형사·법의학 관련 책이다. 형벌을 다룰 때 ‘신중함’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를 담은 책이라는 말이 눈길을 끈다. 사람의 생사가 걸린 사건을 억울함 없이 공정하게 처리하라는 의미로 설명되는데 이 시대에도 저 말의 울림은 큰 듯 하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