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배경은 2540년의 미래 세계다. 인류는 계급별로 설계되어 태어난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등. 각 계급은 태어날 때부터 세뇌 교육을 통해 자신의 계급에 만족하도록 길들여진다. '소마'라는 약물이 사용되어 고통과 불안을 제거하고, 쾌락과 안정만을 추구한다. 역사를 부정하고 예술을 통제하며 인간 본연의 욕망을 억압한다. 1932년에 발표했다는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의 내용이다. 이 소설은 인간이 쾌락과 안정만을 추구하면서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역사와 예술을 부정하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한다. 디스토피아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제도에 속하지 않고 살아가는 야만인의 모습을 통해 비로소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을 읽으면 오래전에 경고되었던 현대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소비 지상주의, 미디어 중독, 즉각적인 즐거움만을 찾는 모습등이 이미 우리의 현실이 되어버렸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멋진 신세계>를 읽고 정말 소름이 돋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다시 한번 소름이 돋는다. 뭐지, 이 기시감은? 책을 읽으면서 이것이 핑크빛 미래라고 말하는 건가? 의구심이 들었다. 황당함과 당혹스러움이 밀려왔다. 이 책은 그저 한사람의 생각, 혹은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소수의 바람을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책의 제목을 보면서 일론 머스크라는 사람이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가 말하고 있다는 미래 예측 몇 가지를 들어보자. ····· 노동이 사라진 시대에 인간은 정체성을 잃고 방황할 것이다. 인간은 엄마 자궁이 아닌 인공 자궁에서 태어날 것이다. 혈연 중심의 전통적 가족 개념은 완전히 해체될 것이다. 인류는 천 년을 살아가는 무병장수 시대를 맞을 것이다. 신체 기관의 재생과 교체는 자동차 수리처럼 정형화된다. 도시는 넓어지지 않고, 위로 쌓이는 방식이 표준이 된다. 총알이 아닌 코드 한 줄이 한 국가를 순식간에 마비시킨다. 자본주의는 파산하고, 로봇 소유자가 새로운 신이 될 것이다. 인류는 스스로 지능을 조작해 새로운 종으로 갈라질 것이다. 인류는 무기력하게 시스템이 조종하는 좀비 군단이 될 것이다. 뇌 속에 가짜 기억을 심고 가공된 행복을 누릴 것이다. 슬픔마저 버튼 하나로 지우는 무색무취의 세상이 올 것이다. 인공지능의 정답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시간 낭비가 된다. 인간은 AI를 즐겁게 하기 위한 애완 고양이로 전락할 것이다. 인류는 육체를 버리고, 데이터로 남는 기계 유령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은 도구가 아니라 세상을 굴리는 운영체제가 된다. ····· 차라리 그냥 디스토피아 세상을 다루는 영화 한 편을 만드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동이 사라진 세상을 꿈꾼다. 자신이 만드는 로봇이 신이 될 것처럼 말한다. 뇌 속에 가짜 기억을 심고 가공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진정한 인류의 꿈일까? 슬픔마저 버튼 하나로 지우는 감정 없는 세상은 이미 인간이 살 가치를 잃어버린 세상이다. 인간이 AI를 즐겁게 하기 위한 애완 고양이로 전락할 것이라고? 그런 세상을 살고 싶어하는 인간이 있을까? 있다면 또 얼마나 있을까? 인간이 아무런 병도 없이 천 년 동안이나 살 수 있다고? 도대체 몇 세기를 지나야 그런 세상이 올까? 혈연 중심의 가족제도가 사라질 것을 알면서 그는 왜 결혼했고, 왜 아이를 낳았을까? 단언컨대, 그가 말하는 세상이 오기 전에 인류는 멸종할 것이다. 인류는 자연의 일부로써 만들어졌다. 이미 자연은 인류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데 저런 오만함과 교만함이 인류의 멸종을 앞당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세상은 버튼 하나로 통제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다 읽고 나서도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과학이 만능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기계화 되어가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인간이라면 인간답게 살아가는 꿈을 꾸어야 한다. 변화하는 세상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익을 위해, 혹은 소수를 위해 마치 그것이 진리인 양 떠들어대는 건 아닌듯하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