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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생각
  • 버넘 숲
  • 엘리너 캐턴
  • 17,820원 (10%990)
  • 2025-03-05
  • : 2,020

우선 저자 엘리너 캐넌이 누구일까 궁금했다. 28세의 나이로 두 작품만에 세계 최고 권위의 맨부커상을 거머쥔 천재 작가라고 소개되어져 있다. 24세에 데뷔작을 쓰고 주목 받기 시작했다고 하니 필력이 대단한 모양이다. 책의 두께가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원서가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부커상 수상작 중에서 가장 긴 작품이라고 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후, 상당히 촘촘한 짜임새를 가졌다는 느낌과 열린 결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도입부분에서는 살짝 버벅거렸다. 장황한 듯한 설정이 지루한 느낌을 불러왔던 까닭이다. 그러나 읽어갈수록 속도감이 붙었다. 이런 소설을 오랜만에 읽은 듯 하다.

절친인 미라와 셸리는 게릴라 가드닝 단체 '버넘 숲'에서 활동하고 있다. '버넘 숲'은 일종의 동아리로 버려진 땅에 씨를 뿌리고 거기서 나는 작물을 소비하거나, 이웃에게 선물하거나, 가끔은 팔기도 하는 비영리단체다. 버려진 땅이라고는 하나 주인이 없는 것이 아닌 관계로 심었던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럼에도 '버넘 숲'의 회원들은 제대로 된 규칙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친환경을 외치며 모였지만 그들에게는 일종의 반골성향이 있다. 쉽게 말해 기존의 권위나 질서에 반항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들에게 조금씩 침체되어가고 있던 '버넘 숲'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산사태로 고립된 손다이크 마을의 한 부지를 찾아 답사를 떠났던 미라는 드론 제조업체의 CEO이자 억만장자인 로버트 르모인과 우연히 마주친다. 땅의 주인 몰래 어떤 사업을 하고 있던 르모인과 역시 땅의 주인 몰래 작물을 심어 가꿀 계획을 가지고 있던 미라는 서로에게서 묘한 동질성을 느끼게 된다.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던 사업을 숨기기 위한 방편으로 '버넘 숲'을 끌어들이기로 한 르모인은 미라에게 재정 지원을 약속하고 미라는 '버넘 숲'의 회원들을 설득하지만 '버넘 숲'의 일원이었던 토니는 르모인의 이름을 듣자 분노하며 '버넘 숲'에서 탈퇴한다. '우리가 지지하는 모든 것의 정반대에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미라와 셸리는 씨앗을 심기 위해, 그리고 토니는 르모인의 뒤를 캐기 위해 각각 손다이크로 향한다. 하지만 검은 그림자를 가진 실체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발생한 살인 사건과 토니를 쫓는 검은 그림자들. 토니가 알게 되는 충격적인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읽으면서 몰입도가 점점 커진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두 가지를 동경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테크놀러지와 자연주의다. 빅데이터등 디지털 기술의 끝없는 발전을 추구하면서 자연이 옛날처럼 우리 곁에 살아 숨쉬기를 소망하는 모순된 관점으로 살아간다는 말이다. 미래를 살아가야 할 청년 세대를 위한다고 말은 하지만 기성세대들의 자연 파괴는 미래를 망칠 뿐임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빠르고 편한 현실에 젖어들고마는 우매한 삶을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의문점은 과연 그 두 가지는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였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 두가지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이 책은 열린 결말을 선택했을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세심하게 그리고 있는 점이 이채롭게 다가왔다. 추진력은 좋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하는 고집 센 미라, 미라에게는 든든한 조력자로 느껴지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과 존재감은 연약한 셸리, 도전 정신은 뛰어나지만 자신만의 논리에 사로잡힌 토니, 이 세 사람이 자신들과는 뜻과는 무관하게 사건에 얽히게 되는 줄거리에서 마치 추리소설 같은 느낌을 전해 받기도 한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르모인의 이중적인 태도에서 어쩌면 소름이 돋을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미라도, 셸리도, 토니도, 르모인도, 모두가 자신만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장황하게 느껴졌던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어쩌면 이 글의 배경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아이비생각

모든 것이 게임이고, 게임에서 이기고 싶으면 자신을 최적화하고 실현하고 이용해서 이점을 가져야 할 테고, 유약함이나 필멸이나 한계나 인간성이나 염병할 시간의 흐름 같은 진짜 인간 경험을 하면 안 돼. 그것들은 그저 집중을 흩트리는 방해물, 결함, 우리가 엄선하고 맞추고 자유로이 선택한 진정한 존재의 걸림돌에 불과하니까. 물론 우리가 우리 인생의 소비자인지 생산물인지 결코 알 수 없지만,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이 지구상에서 우리에게 어떤 판단을 내릴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거야, 어느 쪽으로건. 시장의 자유! 중요한 건 그것뿐이야! 존재하는 건 그것뿐이라고! - 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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