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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생각
  • 강기슭에 선 사람은
  • 데라치 하루나
  • 15,120원 (10%840)
  • 2024-05-22
  • : 637

일본 소설을 좋아한다. 극적인 트릭없이 담담하게 현실을 그리면서도 은근하게 저며드는 감정이 녹아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던 까닭이다. 정말 오랜만에 읽게 된 일본 소설이었지만 솔직히 말해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느끼게 된다. 역시 일본 소설이군. 이 소설에는 정말 많은 것이 담겨 있는 듯 하다. 가부장적인 일본의 모습부터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소외된 자들의 아픔, 자신의 감정을 어쩌지 못한 채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주인공 기요세는 어느 날 낯선 전화를 받게 된다. 마쓰키씨를 아느냐고.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와 줄 수 있겠느냐고. 어떨결에 병원으로 달려간 기요세는 커다란 상처를 입은 채 의식불명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마쓰키를 보게 된다. 그녀에게 다가오는 두 사람. 어떤 사이인가요? 약혼자입니다만... 마쓰키와 그리 깊은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왜 약혼자라고 했을까? 기요세는 자신에게 반문한다. 그리고 기요세는 자신이 알고 있던 마쓰키라는 사람의 또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도대체 나는 저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은 기요세가 알고 있던 마쓰키의 모습과 모르고 있던 마쓰키의 생활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마쓰키가 기요세에게만큼은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았던 모습들. 가족과의 껄끄러움. 기요세에게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지켜주고 싶었던 친구와의 약속...

강기슭에 선 사람은, 바닥에 가라앉은 돌의 수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기요세는 물밑에 가라앉은 돌이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안다. 강조차도 모르는 돌이 가라앉아 있다는 사실도. 어떤 돌은 모났고, 어떤 돌은 동글동글 매끄럽고, 또 어떤 돌은 결정을 품고 아련하게 빛난다. 사람들은 돌을 다양한 이름으로 구분 지어 부른다. 분노, 고통, 자비, 혹은, 희망.(-305쪽)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나에게 관심도 없을 뿐더러 나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저마다 사는 것에 지쳐 있는 까닭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우리의 뇌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에 대한 지혜가 아니라 사회적인 규칙이나 규범이 입력되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이유로 사회는 공정을 꿈꾸고 공평을 꿈꾼다. 게다가 합리적인 것까지 원한다. 역설적이게도 불공정하고 불공평하며 불합리한 것이 사회라는 이름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라면서 알게 된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그러나 그런 괴리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관심과 배려라고 이 소설은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조금씩만 마음을 열어 상대방을 본다면 어떨까 묻고 있다. 약자라는 걸 들키기 싫어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을 낳는다. 그러나 그 거짓이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한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 문제에 대한 잠깐동안의 회피일 뿐. 마쓰키에 대해 알아가면서 기요세는 깨닫는다. 자신이 얼마나 스스로의 감정을 기만하며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자신이 얼마나 다른 사람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는지를. 하지만 그것을 눈치챈다는 건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강기슭에 서서 가만히 강물속을 들여다보면 그 안의 돌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일 것이다. 뭉클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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