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호적을 파버린다'는 말이 무섭게 들렸던 시대가 있었다. 그 때는 그만큼 가족간의 유대를 중요하게 여기던 시절이었다. 삼대가 한지붕 아래서 사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다고해서 지금은 가족간의 유대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시대는 변했고, 가족의 형태도 그에 따라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삼대가 한지붕 아래 모여산다는 건 사전에서나 찾아볼 법한 말이 된 시대다. 각자의 삶을 살아내기에도 벅차 이제는 가족이라는 테두리마저 거부하고 있는 시대다. 결혼을 기피하고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흐름을 단순히 먹고 살기 힘들다거나 육아에 따르는 비용이나 노동만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가족이라는 의미가 편안함과 즐거움만을 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도 하나의 변명이라면 변명일 것이다.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는 멀리 있지 않다. 보통의 경우라면 대부분이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받는 상처다. 가족에게 받는 상처의 크기와 타인에게서 받는 상처의 크기는 엄청나다. 그만큼 우리는 가족에게 '헌신' 또는 '희생'의 역할을 강요해왔던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가족이니까 무조건적으로 나를 편하게 해줘야 한다는 건 억지다. 이 책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해하려고조차 하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가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시대가 변한 까닭에 이제는 우리의 가정법도 변해가고 있다. '구하라법'이 그것을 대변하고 있다. 가족은, 적어도 가족이라면 남들보다 더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에 백퍼센트 공감한다.
책을 열자마자 보이는 한 문장이 오래도록 시선을 붙잡는다. 관계 단절은 정당방위다... 해로운 가족과는 단절해야 한다. 저자 역시 45세에 이르러 가족과 완전히 관계를 끊었다고 한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신체적, 정서적 학대를 견디며 살았다는 저자는 미국의 공인 심리학자이자 가족 문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저자의 오랜 경험과 상담했던 사례들이 실려 있다. 그렇다면 해로운 가족은 어떤 사람들일까? 자신만이 판단해야 할 문제다. 세상 사람들의 이해를 얻는다는 게 그리 쉽지 않은 까닭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말한다. 해로우면서 무고한 사람은 없다고. 가족에게 선을 그어도 된다고. 해로운 가족으로 인해 평생을 괴로워하며 살 필요는 없다고. 그렇게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치유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에서 밝히고 있다. 모든 심리학서가 말하고 있듯이 저자 역시 근원적인 상처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내 안에서 상처 입은 채 미처 자라고 있지 않은 또다른 나 자신과 만나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상처를 입은 채 그대로 성인이 되어버린 사람의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저자는 가족과의 관계 단절로 인한 외로움이나 공허함, 그리고 일종의 죄책감 따위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완벽한 삶을 꿈꾸며 힘겹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불완전해질 용기가 필요하다고. 가족과의 관계를 단절한 채 몇 년을 살아온 내게 위안이 되어줄까 싶어 선택했던 책이었다. 위안이라기 보다는 이런 방법으로 이겨낸 사람도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 자신이 노력하며 살았던 방법이 책에서 보여 조금은 놀라웠다. 하지만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데 이런 방법을 쓴다면 약간은 특이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자신의 의지보다 세상의 잣대에 맞춰 선택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아이비생각
★ 숙련된 공감 능력을 키우는 방법(-252쪽)
① 누구든 이유없이 나를 푸대접하는 사람에게는 확실하게 경계선을 긋는다.
② 내가 과민하게 군다거나 '지나치게 경계한다'고 비난하며 현실을 일축하려는 사람은 절대로 용인하지 않는다.
③ 양쪽 모두가 만족하는 관계에 집중하고, 그렇지 않는 관계는 정리한다.
④ 해로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내 직감을 굳게 믿는다.
⑤ 나를 이해하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 내 결정을 설명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헛되이 쓰지 않는다.
⑥ 침묵의 막강한 힘을 활용한다. 대꾸할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