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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에서 진리를 찾는 학문, 인류학
  • 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 록산 게이
  • 14,220원 (10%790)
  • 2018-03-08
  • : 3,166

오랜만에 단숨에 읽은 책. 극도로 솔직하면서도 특정한 종류의 통찰이 깊게 진행돼 담겨 있다. 자신의 몸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살피면서, 생각의 섬세함이 책 전체에 녹아있다. 


감명 깊은 부분이 많지만, 두 가지만 짚어보겠다. 첫째, 뚱뚱함은 '내가 만들어낸 감옥'이라는 표현이다. 즉,


뚱뚱하면 아무도 당신의 식습관 장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못 본 척하거나 혹은 바로 알아채기도 한다. 당신은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다. 나는 거의 평생 동안 이런저런 방식으로 숨어 살아왔다.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 나를 세상에 보이게 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어려웠다.

나는 뚱뚱하지 않았고 그러다 날 뚱뚱하게 만들었다. 나의 몸이 거대하고 아무것도 뚫을 수 없는 커다란 덩어리가 되기를 바랐다. 나는 다른 여자애들과 같지 않다고, 나에게 말했다. 먹고 싶은 모든 것을 먹었고 다른 여자아이들이 원하는 모든 것까지 먹어치웠다. 너무나 자유로웠다. 내가 만들어낸 감옥 안에서, 나는 자유로웠다. (221쪽)


자신의 몸은 자신과 유리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인 셈이다. 


둘째, 저자는 자신이 냉정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냉정한 사람은 떫떠름하게 여길텐데, 저자는 '피부 표면 밑에 누군가 발견해주길 원하는 따뜻함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외로움이, 내가 내 몸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린 것처럼 서서히 나에게 고착되었다는 점이다. ... 너무나 오랜 세월 모든 세상과 모든 사람으로부터 나를 차단해버렸다. 끔찍한 일이 일어났고 살아남기 위해서 장벽을 쳐야 했다. 나는 냉정하다는 소시를 자주 들었다. ... 이런 여자들에 대해 쓴 이유는 이 피부 표면 밑에 누군가 발견해주길 원하는 따뜻함이 있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냉정하지 않다. 한 번도 냉정한 사람인 적이 없었다. 나의 따뜻함은 내게 상처를 가져올 수 있는 것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숨겨져 있을 뿐이었다. ... 나를 나로 보아주고 언제나 받아들여줄 마음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 앞에서 나는 얼마든지 따뜻했다. (282-3쪽)


세 가지 비판적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비록 엄청난 충격이긴 하지만 과거의 한 가지 일에 뒤이어 일어난 모든 일을 소급해 생각하는, 자신의 삶의 서사화에 빠졌을지 모른다는 비판이다. 이에 대한 반박은 책 속에서 찾아보지 못했다.

다른 하나는 저자가 말미에 표현했듯이 40대에 접어든 저자가 이제는 사랑을 배워나가는 단계에 있다는 점과 연결되는데, 즉 보살핌, 아낌없이 줌, 타인을 위한 삶 등에 대한 가치를 주목하게 되면 저자의 글이 무척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아쉬움이다. 문화가 주어지는 사실이라는 점에 대한 이해, 타인을 역사 속 인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태도를 페미니즘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페미니스트적 비판에 한계가 있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몸과 마음의 이분법을 당연한 것으로,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는 태도도 아쉬웠다.


통찰과 비판에서 아주 날카로운 면모를 보여주긴 하나 그 자체로는 썩 대단한 책이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다만 나보다 공감 가는 부분이 많을 독자들에게는 더욱 감명 깊게 다가왔을 게 틀림없다.


책을 읽으며 불편하게 여겨진 점이 있어 메모해둔다. 본문을 읽기도 전에 읽어야 했던 추천사와 '번역투'의 번역이다. 글을 잘 썼다면서 부러워하는 내용으로 점철된 추천사는 책에 대해 특정한 선입견을 갖게 만들었고, 이는 마지막 장을 읽을 때까지 미세하게 계속돼 불편했다.


번역은 너무 영어식 문체를 그대로 가져다 왔기 때문에 읽는 내내 영어책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말하자면 영어 문구 'very, very'를 '아주, 아주'로 번역한 식이다. 요즘은 이런 영어식 한국어가 점차 일상이 되는 것 같아 이에 관해 별다른 생각이 없는 독자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한국어의 옛스런 표현이 사라지는 게 아쉬운 내게는 이런 번역투는 실망스럽다. 단어 표현도 아쉬운 데가 많다. 예컨대 '자신'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스스로'를 넣은 부분이 참 많다.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지 모를 유행어도 많이 사용했다. 독서 집중을 방해했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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