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젊은 인류학자가 쓴 쉬운 인류학 개론서. 서구 정통의 인류학에 더해 (내가 보기에) 일본인적인 특유의 윤리주의를 잘 배합한 종합 이론서로 볼 수도 있다. 또 본인의 현장 연구 경험을 액자 구성으로 매 장 배치해 읽기가 지루하지 않다. 짧은 분량임에도 감정, 개인, 국가, 영토, 시장, 증여, 공평함의 윤리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주제들을 간명하게 서술하고 있다. 대학에서 인류학 개론 시간에 경제인류학적 교재로 활용해도 손색이 없을 것.
다만 저자의 주장은 몇 가지 한계를 갖고 있다. 개인 주체성에 대한 모순적 설명과, 국가/시장/개인이라는 경제적 환원론을 꼽아 보겠다.
저자 주장의 핵심은 이렇다. "시장, 사회, 국가는 표면적으로는 다른 영역이라고 공언되지만, 분단된 영역은 뒤에서는 분명 연결되어 있다. 연결을 표면으로 드러내어 영역을 뛰어넘는 일이 결코 부당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노력이 공평함의 균형을 되돌리는 계기가 된다는 점을 제시하는 것이 구축 인류학이 할 수 있는 일이다." (181쪽) 여기서 국가와 시장 모두 부족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각 개인에게도 할 일이 있다고 강조하는 게 특징이다. 그것은 "우선 무의식에 눈을 돌려 다양한 구실을 대면서 불균형을 정당화하고 있는 상황을 자각하고, 우리 속의 '떳떳치 못함'을 늘 움직이기 쉬운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격차를 보고 일어나는 떳떳치 못함이라 할 만한 자책의 감정은 공평함을 되돌리는 움직임을 활성화시킨다. 떳떳치 못함의 감정에는 일종의 윤리성이 깃들어 있다."(176쪽)
첫째, 책의 앞부분에서 저자는 개인의 감정이란 (교환) 관계를 통해 구축되는 것이며, 나아가 "내가 누구인지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결정된다"고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책 뒤로 갈수록 선명히 드러나는 저자 주장의 전략은 개인 각자가 무의식을 돌아보며 평등함을 되살리려는 감정에의 호소에 기반하고 있다. 모순적이다. 개인이란 관계를 통해 만들어진다면서, 그런 만들어지는 개인들이 어떻게 또 스스로 변혁의 주체가 된다는 말인가?
인류학의 기본 명제는 관찰자의 주관을 최대한 배제하고 현장의 상황을 통해 이론을 정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에티오피아에서의 관찰에 저자 본인의 윤리를 접목하고 있다. 물론 완벽한 객관이란 환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저자의 "떳떳치 못함"이라는 방법론은 관찰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사실 전혀 인류학적이지 않다.
둘째, 사회적 관계, 특히 교환 관계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학의 전통에서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훨씬 다양하다. 환경, 종교, 친족, 언어 등등도 결정인자가 될 수 있는 요소다. 이들을 경제적 "토대"의 "상부구조"로만 치부하는 맑시즘적 관점은 물론 일리가 있지만, 맑시즘은 입증할 수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무수히 비판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자신이 누구인지가 상대와의 관계에서 결정된다'는 주장은 상당히 큰 비약이 아닐 수 없다.
이 두 가지 문제점 때문에 저자의 주장은 크게 약화된다. 하나의 윤리적/정치적 선언으로 축소되기까지 한다. 책은 '떳떳치 못함'이라는 독특한 영역을 이론화시켰다는 데에 특장점이 있지만,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여기는 게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