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광활하고 높디높은 곳에서, 어느 순간에 이르면 이 모든 걸 되짚어 내려와야 함을 분명히 아는 채로 한 발 한 발 오를 수 있을 때” (492-3쪽), 바로 그때 등반가는 비로소 진정한 등반의 가치를 품고 산을 오른다.
29세로 짧은 일생을 마감한 불세출의 산악인 알렉스 매킨타이어(1954~1982). 저자는 알렉스의 리드 대학 산악부 선배이자 많은 고산등반을 함께 했던 존 포터다. 존은 알렉스의 철부지시절부터 마지막 등반이 된 안나푸르나 남벽 등반까지 수많은 등반을 함께 했다.
<하루를 살아도 호랑이처럼>은 그러나 단순한 전기는 아니다. 근대등반의 역사서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대규모 히말라야 등반이 지속됐던 70년대에서 어떻게 히말라야 경량등반이 탄생했는지를 긴밀한 필치로 보여주는 등반의 미시사다. 역자 전종주는 연세대산악부 90학번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만나 친하게 된 형이다. 첫 번역임을 감안하면 역작이다.
알렉스에 비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존은 그 역시 첨예한 등반의 한가운데에서 보닝턴, 더그 스콧, 보이텍 쿠르티카 등과 많은 관계를 맺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등반가다. 알렉스의 등반관을 조명하면서 저자는 자신만의 관점에서 보는 등반의 경험과 등반에 내재된 답을 찾기 어려운 몇몇 궁극적인 질문들에 대해 알렉스와 자신 사이에 어떻게 서로 다르게 대답하며 등반해 왔는지를 탐색한다.
즉 ‘스스로의 오름짓’에 한없이 충실하다는 의미의 등반의 정수는 알렉스와 존 사이의 상반되는 등반이해로 이어진다.
알렉스가 쓴 1980년 시샤팡마 원정기의 첫 장에는 다음의 유명한 문구가 나온다. 이는 존이 알렉스의 등반세계를 해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 벽에의 야망에 사로잡혔고, 이 등반방식 또한 집착이 되었다(The wall was the ambition, the style became the obsession)”. 아무도 오르지 않은 벽에의 야망. “히말라야의 고봉에서 초등을 노리는 사람에게는 비범한 야망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존도 동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존은 아직 오르지 않은 수많은 산과 벽들이 세계 곳곳에 아직 남아 있다며, 상업화와 기술발달로 흐릿해져 가는 등반정신의 정수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존은 알렉스가 그토록 집착했던 경량등반의 등반방식 및 그에 담긴 등반가의 태도에 대해서는 양면적인 태도를 취한다. 야망과 집착을 수반하는 경량등반이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책 전반에 걸쳐 존이 탐색하고 있는 이 질문은, 다른 여타의 등반관련 서적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날카롭고도 서정적인 통찰로 이 책을 산악문학의 명작 반열에 오르는 지점이 아닌가 한다.
알렉스가 20대 초반 알프스에서 고난도 등반을 마친 뒤 히말라야에서 이어왔던 것은 고봉에서의 경량등반이었다. 주요 파트너는 폴란드의 보이텍 쿠르티카와 예지 쿠쿠츠카였다. 이들은 경직된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러시아인들처럼 군대식이지는 않고 개인적 열망을 표출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폴란드인들은 국가가 통제하는 원정에 참가하더라도 개인이 우선이고 궁극이었다.”(87쪽) 대규모 원정대에 반기를 든 보이텍과 함께 알렉스는 아프가니스탄의 코 에 반다카 북동벽을 시작으로, 최대 4명을 넘지 않는 7~8천 미터 급에서의 경량등반을 추구했다. 8천 미터에서 경량등반은 사실 배낭의 무게로 따진다면 ‘경량’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왜 알렉스 및 그로 대표되는 영국 70~80세대 산악인들이 경량등반을 추구하게 되었을까? 존의 분석은 다층적이다. 먼저 당시는 냉전으로 인해 문명의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는 끝장주의가 팽배해 있었다. 등반은 그들에게 일종의 도피처였다(53쪽). 섹스 피스톨즈, 조니 로튼 등의 당시 대중음악은 펑크, 무정부주의를 확산시켰다. 이어 영국 등반계의 스타 크리스 보닝턴은 집필, 강연, 매체, 협찬사 등을 활용해 먹고사는 데에 성공한 ‘전문 산악인’ 1호 였는데, 보닝턴 아래에서 자란 2세대들은 보닝턴보다는 ‘게으른’, ‘사략선원’(privateers)--19세기 중엽까지 국제법상 허용된 해적—이었다. 간단히 말해 보닝턴처럼 대스타는 아니지만 온갖 방법을 동원하면 원정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각자살기’가 가능해진 첫 세대였던 것이다. 이들은 서로에게도 자신의 다음 등반 목표를 비밀로 유지하는 등 경쟁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히말라야 등반에서 경량등반이 실제적으로 가능해졌으며 동시에 등반가들이 직접적으로 직업주의와 개인주의를 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경쟁은 경량등반에 필수불가결한 것인가? 존의 대답은 예/아니오로 단순하지가 않다. 우선 알렉스의 대답은 ‘예’다. 알렉스는 고산등반에서 팀을 뒤처지게 만드는 대원에 대해서는 매정하게 뿌리친다. 존은 뿌리침을 당한 이들이 이에 얼마나 쓴맛을 느끼며 돌아서야 했는지, 그리고 우정을 지키기 위해 힘겨운 노력을 했는지를, 그 스스로의 경험까지 아프게 적어간다. 알렉스의 마지막 등반이 되었던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1차 정찰을 마치고 악천후 속에 하산할 때, 세 명의 대원들은 체력에 따라 속도를 달리해 각자 길을 찾아 내려올 뿐이다. 알렉스와 다른 대원은 키친텐트에서 저희 둘 만이서 오른다면 훨씬 잘 오를 수 있을텐데라는 쑥덕거림을 존은 침통한 기분으로 엿듣고 만다.
알렉스가 본격적으로 최고 등반가의 반열에 들기 원한다는 뜻을 존에게 밝혔을 때, 존은 이것이 존경해야할 만한 것인지 아니면 두려워해야 하는 것인지 자문한다(455~7쪽). 즉 알렉스의 ‘최고’를 향한 열망은 존이 두려움 속에서 품었던 ‘경쟁의식’과 쌍둥이였음을 스스로의 심금을 울리는 느낌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알렉스의 벽에의 ‘야망’은 필요한 것이었으나 집착에 대해서는 존은 다른 대답을 한다. “성공하면 할수록 알렉스의 야망과 자아 둘 모두 동시에 커져 갔다.”(460쪽)
인생에서 균형을 찾으려면, 우리 모두는 어떤 상황에서도 입구와 출구 양쪽을 모두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어느 쪽으로든지 결정을 내려야한다. … 그러나 알렉스의 마음속에는, 결정을 내리는 입구와 출구가 똑같은 문이었다. 안나푸르나를 오르자, 그러면 공포가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집으로 가는 길이 따를 것이고, 다시 새라와 함께할 인생의 제2막이 펼쳐질 것이다. 이 계획에 대한 장애물--안나푸르나 남벽--이 제거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585~6쪽)
여러 가지 유형의 산악인들이 책 전반에 등장한다. 실제 등반은 별로 하지 않으면서 유명한 등반과 등정을 통해 유명세를 얻은, 더그 스콧이 'TV타입'이라 부른 사람들이 있다. 메스너의 14좌 등정은 알렉스에게는 ‘숫자 놀음’일 뿐이었다. 메스너와 달리 험난한 루트를 추구했던 예지 쿠쿠츠카조차 보이텍 쿠르티카에게는 본질을 벗어난 이였다.
알렉스는 산과 대면하는 자아(ego)의 완벽한 완성을 추구했고, 이를 산악 역사 속에 증명하고 싶어했다. 자아의 완성 앞에서는 매정하게도 발목 잡는 다른 대원은 방해가 될 뿐이었다. 산악사에서 이를 증명하려는 욕구는 결국 그의 죽음을 불렀다. 더그 스콧은 산에서 죽는 이유는 두 가지 뿐이라며, 하나는 야망이 너무 큰 경우, 다른 하나는 운이 없었던 경우라고 했다. 알렉스는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더그 스콧은 말한다. 그러나 알렉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떤 존은 이에 동의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의 마지막이 된 안나푸르나 남벽 등반 전후를 둘러싸고 알렉스의 행동은 마치 달아나려는 산을 자아가 끝내 움켜쥐려다 벌어진 비극으로 비춰진다.
경량등반, 특히 경량등반의 방식(style)을 통해 솔직히 또 정당하게 추구하는 ‘걸음 하나하나에의 진정성’이라는 등반의 정수가 등반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등반은 산과 등반가의 만남 그 이상인 것이다. 다른 대원이 있고 다른 산악인들이 있으며 돈과 대중, 관광산업이 있다. 다음의 등반이 있고 남겨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알렉스의 어머니와 두 명의 여자친구에 대한 긴밀한 인터뷰까지, 이 책이 곳곳에서 알렉스의 인간성, 인간관계를 다각도로 비추는 이유다. 알렉스는 토마즈 후마르, 마크 트와이트 등에게 직접적인 영감을 안겨주며 80년대 후반의 수퍼 알피니스트들의 탄생을 견인했다. 그러나 이들이 해결하지 못한 질문들이 우리는 여전히 산의 위와 아래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본다. 안나푸르나 남벽을 27시간의 경이로운 속도로 단독으로 등정하고 내려온 스위스의 율리 스텍은 이 책 첫머리에 등장한다. 그러나 단적인 예로 그는 2014년 에베레스트에서 셰르파들과의 폭행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슬픔과 고통, 분노와 모욕감을 누군가에게 안겨준다면, 등반의 진정성을 성취함으로써 얻는 등반가의 희열은 반쪽짜리로 남지 않겠는가.
나는 2014년 1월 히말라야에서 작은 등반을 했다. 후배와 단 둘이서 5~6천 미터 급 산 네 개를 오른다는 야심찬 계획을 밀어붙였다. 당시 첫 번째 산을 오르고 빙하지대를 하산하던 중, 후배와 길이 엇갈리고 말았다. 한 시간여 동안 눈 덮인 빙하지대를 후배의 발자국을 찾아 헤매던 그 때 나는 후배가 혹시 크레바스에 빠졌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상상을 했다. 만일 그게 사실이고 그를 영영 찾지 못하게 된다면, 다시는 산에 오지 못하겠다는, 도저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절망감에 빠졌다. 즉 내게는 각자에게 진정성 있는 등반의 성취는 어디까지나 동료와, 혹은 그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게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성취를 향한 등반가 사이의 ‘경쟁’은 등반의 본질이라기보다는 영국과 폴란드 및 유럽 산악인들이 지난 이백 년 동안 산을 대했던 방식에서 발생한 역사적 파편일 뿐이지 않을까. 미등봉과 신루트 초등은 점점 그 수가 줄어든다. 이들이 등반의 목표가 될 때 경쟁은 등반에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리학적 의미에서의 새로움과 등반의 창조성은 동의어가 아닐 수도 있다. 돈과 대중매체, 장비의 발달, 이동수단의 발달, 정보의 혁신, 탐험의 산업화는 산악인들에게 등반의 정수를 지금 이 세대에서도 실천할 수 있는 등반방식이 있는지 있다면 과연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그 대답은 아마도 알렉스의 짧은 생애가 보여준 가능성과 한계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즉 ‘등반방식’에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난 등반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