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내용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제목이나 겉의 사진을 보면 뭔가 심각한 내용이 흐를 법한 책으로 보이지만(아닌가요?;;), 생각보다 훨씬 유쾌하고 그러면서도 진지한 여행기입니다. 생각해보니 여행기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글쓴이는 결국 그 나라에 정착했거든요.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제이미 제파라는 이 저자는 스물 네살에 결혼과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별 특별한 일도 없었고 남들보다 불행할 일도 없었고 그냥 아무런 문제없이 평범하게 잘 살아왔지요. 그런데 어느날 문득, 정말 어느날 문득 무언가 답답하다는 생각에 빠져들고... 지금까지 순조롭게 풀려왔던 인생이 부족해보이고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막연한 기분에 결국은 우연히 보게된 부탄의 선생님 모집 공고를 보고 뭐에 홀린듯 짐을 꾸려 떠나갑니다. 약혼자와 가족의 만류와 걱정 속에서도 말이지요.
자, 여기까지... 읽으면 뒤에 뻔한 스토리가 그려지나요 ? <문명과 민주주의, 합리주의>라는 세례를 받고 자라난 백인 여성이 <역사와 전통, 신비주의>로 가득한 나라에서 겪을 문화적 충돌과 갈등,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고 마침내 사람들과의 소박한 정과 삶에 푸욱 빠져 정착한다는 얘기 말이지요.
그런데 생각보다 책은 유쾌합니다. 결론적으로야 저런 스토리라인을 따라가지만 전형적이지도 않구요. 제이미 제파는 이곳에서 무엇인가를 해내야겠다는 사명감이나 의무감, 또는 자신을 바꿔보겠다는 신념, 여행과 경험을 통해 산 경험을 쌓겠다는 생각이 애시당초 없어보이기도 했구요. 왜냐면 출발 자체가 너무나 즉흥적인 결정이었거든요. 그래서인지 그녀는 부탄에 가서도 계속 좌충우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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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철저한 사전준비없이 새로운 환경 속에 놓인 사람이 그때까지 자신의 환경속에서 누적된 습관과 지식과 문화적 코드를 새로운 곳에서 어떻게 적용해나가는지, 그리고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기존의 삶의 태도가 얼마나 의미있고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또는 얼마나 해악이 되었는지를 온 몸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점차 변해가고 달라져 갑니다.
이 변화는 매우 의미있고 커서 책을 따라 가는 독자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모두 그리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지만 삶의 의미와 태도와 목표를 결정할 수 있는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인생에서 매우 큰 모험을 강행한 제이미 제파는 대단한 사람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같이 평범합니다. 그런 부분은 책을 보면 많이 느끼죠. 그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사실 매우 감동받았습니다.
부탄에 대한 얘기들도 매력적입니다. 부탄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과 개념이 없던 저는 그녀의 묘사를 통해 부탄에서의 자연과 삶, 역사에 대해 어느정도 알게 되었답니다. 티벳이나 네팔이 그러하듯 부탄도 바람처럼 가벼운 삶을 느끼기 위해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되게 해주더군요. (물론 이들 나라가 여행자가 생각하듯 멋진 이상적인 나라가 아니라는 것도, 가보기만 한다고 해서 당장 정신수양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매우 잘 알고 있답니다. 부탄의 현실 또한 냉정하거든요.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직접 확인~!)
무엇보다 이 책은 재미있습니다. 저자가 매우 유쾌발랄하거든요. 다시 읽고 싶은 책이에요. 그리고 부탄에도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저도 떠나버릴까요 ? 한국어 가르치러 ? 여하튼, 삶의 나른함을 느끼는 모든 분들에게 강력히 추천합니다.
다시는 이처럼 강렬하고 멋진 꿈을 꿀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충분히 살 때까지, 이곳이 나의 피와 뼈와 세포에 스며들 때까지,
이곳이 내 안을 가득 채우고 나를 변화시킬 때까지는 나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 Jamie Zeppa, "Beyond the Sky and the Ear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