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게으른 닝닝의 단순 리뷰
  • 100℃
  • 최규석
  • 10,800원 (10%120)
  • 2009-06-05
  • : 4,995
몇년 전에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라는 만화를 본 적이 있었다. 인터넷에서 본 것인데 우리에게 친숙한 귀여운 공룡 둘리와 그의 친구들이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를 정확히 묘사하고 있어서 그 작가의 이름은 잊었지만 매우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었다.

그 후, 몇년의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만난 최규석 작가의 새로운 만화, 100도씨. 안그래도 책 설명에 혹해서 살까 하던 차에 작가 소개를 보고 너무나도 반가워서 덥썩 질렀고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몇년만에 만난 그의 작품은 여전히 현실 그대로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따뜻한 시선과 희망을 포함하고 있으니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가.

이 100도씨는 87년 6월 민주 항쟁을 극화한 만화이다. 그렇다고 교조적이거나 하지도않다. 그 시절 평범한 집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얘기를 그저 담담한 톤으로 그리고 있다. 물론 그 배경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에서부터 이한열 사망까지 피로 얼룩진 이야기가 깔려 있지만 말이다.

가장 슬펐던 장면은 주인공의 어머니가 가진 기억의 한토막이었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그저 아들이 데모할까봐, 그래서 빨갱이 소리를 들을까봐 노심초사 안절부절 못하는데, 알고보니 친정 엄마가 보도 연맹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끌려가 억울하게 총살당한 기억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수십년간 그 기억과 상처를 지녔을 어머니의 이 끔찍한 사연이 단 몇 컷에 담담하게 묘사되는데 한국 현대사의 모든 장면을 상징하는 듯해서 울컥한다. 만화 몇 컷 만으로도 찡한 감동을 표현할 수 있으니 예술가들의 능력이란 놀라운 것이다.

내 아들만을 생각하는 모성애에서 시대에 대한 각성으로 이어지는 어머니의 변신 또한 담담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려저서 더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그러고보니 여전히 보라색으로 무장한 민가협 양심수 어머니들이 생각난다. 70에 가까운 민가협 할머니가 전여옥을 폭행해서 무려 전치 8주를 입힐 정도의 괴력을 가지셨으니 걱정안해도 되려나. 참고로 그분들은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로 풀려나긴 했지만.

또한 이 책에는 이런 장면도 나온다. 박종철 사후, 그제서야 TV보며 분노하는 사람들을 향해, 넥타이 매고 직장 다니는 선배들을 향해 후배들이 그럴 자격도 없다고 분노하자, 주인공의 형이 대답한다.

"학생들 보기엔 우리가 위선자나 변절자로 보이겠죠. 그래서, 변절자는 같이 울면 안돼요? 지금 싸우고 있는 사람들만 슬퍼하고 분노할 자격이 있는 건가요? 그렇게 해서 학생들이 얻는 게 도덕적 우월감 말고 뭐가 있어요? 같이 슬퍼하는 사람들까지 밀쳐내면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이 부분은 노무현의 죽음 이후 일부에서 벌어졌던 상황과 오버랩된다. 도덕적 우월감은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또다른 커다란 주제이므로 이쯤에서 접고...

여하튼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6월 항쟁도, 촛불집회도 결과적으로는 아무런 성과가 없다고 보여진다. 6월 항쟁으로 얻어진 대통령 직선제의 기회에서 대중은 노태우를 뽑았고, 촛불집회 후 바뀐거 하나없이 용산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거리는 조용하다.

그러나 과연 무의미한 것이었을까. 그리고 이걸로 끝인걸까? 허무함에 빠진 주인공에게 옆방의 양심수는 이렇게 말해준다. 이 말이 이 책의 제목이자 주제이다.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불을 얼마나 더 때야 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 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이 시대는 끝이 아니라 진행 중이다. 아직 우리는 계속 가야 한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