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에 읽었을 때는 묘사가 너무 많아 지루하게 완독을 끝냈던 기억이 있는데 굳이 이제 와서 다시 손댄 이유는 한유주 작가 덕분이다. “계속 읽기”라는 에세이집에서 한유주 작가는 (내 기억이 맞다면) 보바리 부인을 너무 좋아해서 20번도 넘게 읽었다고 했고 도대체 어떤 점이 그녀를 열성팬으로 만든 건지, 내 기억엔 그저 사실주의적 불륜 소설 정도로 어렴풋이 남았는데 내가 뭘 놓쳤을까, 궁금해서 오랜 세월이 지나 재독하게 되었다.
일단은 플로베르의 장인정신에 가까운 집요한 디테일 묘사가 감탄스러워 디테일 변태라는 생각이 들 정도. 묘사를 끝도 없이 늘어놓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새 인물 심리나 상황 갈등 등을 정교하게 구축해서 인물 상황에 이입하게 되어 비극의 카타르시스가 엄청나다는 것. 극사실주의적으로 인물과 거리를 두고 헛된 이상을 좇는 주인공을 묘사하는 방식이 오히려 신랄해보이는 효과도 보인다. 에마가 자신의 이상, 문학, 환상을 꿈꾸는 장면을 대놓고 비판하지는 않지만 그 심리를 적나라하게 해부해서 전시하기에 읽는 내가 오그라들 정도. 에마와 샤를이 파멸하고 그들의 어린 베르트는 가슴 아프게 방적 공장으로 보내지나 기회주의자 약사 오메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 씁쓸한 결말은, 낭만주의에 휩싸여 문학이나 이상에 과몰입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살라는 충고이자 오메의 성공스토리 같기도 하여 너무 악랄한 냉소적 결말이라 충격적이다. 플로베르는 오메도 우스꽝스럽게 풍자한 거라 그의 방식이 옳다고 한 것도 아니지만, 계급적으로 성공하여 상향하는 방식은 결론적으로 이런 자본주의 정신이자 용쓰는 방식이다라고 보여준 거잖아. 이걸 풍자적으로 그린 건 알겠는데 낭만주의 기질이 어느 정도 있는 내겐 큰 현타가 오게 했달까. (개인적으로 오메가 얄미운 점은 있지만 그 끈질긴 생존 의지랄까 하는 데 혀가 내둘러지고 인간적이라 정이 갔다. 오히려 에마에게 정이 안 갔고.)
넘나 좌닌한 소설이었고 역시나 불후의 명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