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가 23-24세에 쓴 에세이 모음집 “결혼”과 26-40세에 쓴 에세이 모음집 “여름”을 묶은 책.
“결혼”은 알제리의 티파사, 제밀라, 알제, 그리고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여행하면서 자연과 도시 풍경 및 인간 풍속도와 교감하며 펼쳐 나가는 사유를 철학적이면서도 감각적이며 시적인 미문으로 표현하였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회피하지 않고 인정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며 생을 향한 긍정과 예찬으로 나아가는 젊은 카뮈의 저돌적 에너지와 섬세한 감수성이 느껴져 가슴 설레는 작품들이다. 17세 폐결핵을 겪은 개인사는 이 작품들 밑바탕에 흐르는 삶과 죽음의 긴장을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그에 비해 “여름”은 후시대에 쓰여 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주제로부터 시대정신으로 사유가 확장되어 나가는 변모가 인상적이다. “이방인”의 무대이기도 한 오랑의 풍속도를 풍자적으로 묘사하면서 시작하지만, 점차 시대정신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간다. ‘저승의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전체주의적 역사관을 비판하는 것으로 독해되는데 “히스조차 자라나지 않는 불모의 땅”과 같은 은유적 표현이 등장하며 이는 “프로메테우스”가 해방시키려 했던 인간 정신을 오히려 마비시키는 전쟁의 시대를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헬레네의 추방’에서 카뮈는 동시대를 의지의 충동이 지배하여 광기와 오만이 세계를 황폐화시키는 시대라 보며 인간으로서의 자긍심을 잃었음을 한탄하고, 자신의 한계에 충실하며 광신을 거부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상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한다. ‘수수께끼’에서는 작가관에 대해 피력하는데 작가 개인적 체험을 작품화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는 T. S. 엘리엇이 말한 ‘비인격성의 미학’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작가가 촉매에 불과하다는 입장으로 이는 아니 에르노나 디디에 에리봉처럼 가장 개인적인 것이 사회적이라 보는 입장과는 반대로 보인다. ‘티파사에 돌아오다’에서는 티파사를 재방문하여 20대에 그곳에서 했던 자연과 합일되는 강렬한 체험을 떠올리며 “겨울 한가운데서 마침내, 내 안에 보이지 않는 여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삶의 긍정을 되새기는데 이 장면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한편 DSM-5 진단 기준에 따르면 이인증/비현실감 장애라는 해리장애 하위 범주가 있는데, (*정신과 및 임상심리학 전공과 관련 없는 무지랭이 의견임에 주의) 이인증, 비현실감, 현실 검증력 유지 같은 특성들이 있다. 카뮈의 “결혼 여름”을 읽으면서 그가 묘사한 자기 인식의 경계가 흔들리는 체험을 읽다 보니, 이인증과 자기초월이라는 서로 다른 현상을 함께 떠올리게 되었다. 그는 자아 경계가 느슨해지는 자기초월의 체험을 자주 경험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경험이 실존주의적(카뮈가 실존주의자로 불리길 싫어했다는 것은 알지만…) 사유를 밀어붙여 “시지프 신화”에까지 이르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한편 그의 문장을 읽다 보면, 자기초월과는 다른 방향의 자아 경계의 흐려짐, 이를테면 현대 임상심리학에서 말하는 해리 현상의 묘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들도 종종 눈에 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작품을 읽으며 떠올린 개인적인 연상일 뿐이다.)
“바람에 내 몸도 돛대처럼 우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몸 한가운데가 패이고, 두 눈이 불타고, 입술이 덜덜거리고, 피부가 바싹 말라붙어 더는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전에는 바로 이 피부로 세계의 문자를 해독했더랬다. 세계는 피부를 여름의 숨결로 덥히거나 얼음장 같은 이빨로 깨물어, 자신의 다정함이나 분노의 흔적을 새겼다. 하지만 바람을 그토록 오래 맞으며 한 시간 이상을 시달리고 버틴 끝에 얼떨떨해진 나는 몸에 새겨진 흔적을 의식하지 못했다.”
“결혼 여름”에 실린 에세이 ‘제밀라의 바람’에 나오는 대목인데 DSM-5에서 말하는 이인증의 현상학을 떠올리게 했던 구절. 물론 카뮈가 실제 해리장애나 이인증을 겪었다는 주장은 아니다. 다만 ‘내 피부가 더는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는 묘사는 꽤 인상적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카뮈가 이 감각을 자연과의 자기초월과 일체감으로 전환시킨다는 것이다.
철학 에세이 “시지프 신화”와는 달리 “결혼 여름”은 의식의 흐름과 감각의 흐름이 종잡을 수 없이 크게 도약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읽기 난해한 부분이 곧잘 등장한다. 읽는 내내, 임상심리학에서 말하는 사고의 도약을 연상시킬 정도로 의식과 감각의 흐름 및 이에 이어지는 논증의 도약이 빠르게 전환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미지, 체험, 추상적 개념이 언뜻 논리적 연결 없이 크게 건너뛰며 서술되어 어렵게 느껴질 수 있고 그래서 진도가 잘 안 나간다고 호소하시는 분들을 종종 보았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이를 일일이 이해하려 멈추는 것보다는 큰 맥락에서 카뮈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와 해당 주제에 대한 태도를 신경쓰며 독해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압생트 풀향기 대체 어떤 향인지 넘나 궁금한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