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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ha Green’s Bookshelf
  • 소설 보다 : 가을 2025
  • 서장원.이유리.정기현
  • 4,950원 (10%270)
  • 2025-09-11
  • : 21,870
소설보다 가을 2025 🚨스포일러 주의⚠️‼️



1. 히데오

작가의 이름은 ‘서장원’. 남성으로 보이는 이름이며(여성 작가였다!), 서술 시점은 일인칭 관찰자이다. ‘나’의 성별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쉽게 성별을 특정하기 어렵도록 조심스럽게 서술이 시작된다. 이는 경계에 서 있는 존재에 대해 함부로 명명하거나 규정하지 않으려는 전략이기도 하며, 의도라면 매우 성공적이다.
‘나’는 히데오(끝내 한국어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를 일인칭 시점에서 ‘히데오’라고 지칭하는데(작품 안에서만), 굳이 재일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숨기고 다니는 연극영화학과 재학생인 히데오를 ‘히데오’라 명명하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명명으로 행해지는 폭력적 차별과는 결이 다르다. 히데오를 ‘히데오’라고 부르는 행위, 즉 명명은 지정학적, 시간적, 관계적 저울추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정치적으로 복잡한 행위다. 때로는 차별의 흔적이며, 때로는 특별함의 추억이다.
‘나’는 희곡을 쓰며, 히데오에게 마음이 있다. ‘나’는 ‘히데오’와의 친한 선후배 또는 제작자-연기자 이상의 경계를 차마 넘어서지 못한다. ‘나’의 전남친 ‘영도’와 ‘히데오’와의 서사가 자주 비교되는데, ‘영도’는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고, 이성애자이며, 한국인으로서 경계의 주변인이 아닌 영역의 주인으로서 어디서나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
반면 히데오는 자신의 이름 ‘히데오’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조차 꺼려하며, 영도와 달리 소수자성에 더 섬세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호감의 중요한 지점인 듯하다. 후에 ‘히데오’라는 이름이 아닌 히데오가, 시스템 중심부에 자리 잡으며, ‘재일한국인이라는 숨기고 싶었던 서사’가 조심스러웠던 결을 완전히 뒤집어 ‘당당하게 발화되는’ 변화가 의미심장하다.
혐오와 편가르기의 시대에 소중한 서사적 가치로 다가온다.


2. 두정랜드

아직 소설보다 겨울: 2025가 발간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출간된 9편의 계절별 소설 중에서 감히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대학 진학과 상경을 통해 계층상승을 원하는 주인공의 속물성과 가식, 허세가 비호감이라 초반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읽다 보면 지리적 계층화, 욕망, 상징, 설계, 은유, 소설 구조, 블랙코미디적 요소까지 완벽하여 등단 5년이 안된 신인의 작품이 맞나 싶어 즐거운 읽기였다.
‘크리갈의 침공‘ 안내 멘트가 총 5회 반복되는데 맥락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안내방송의 울림이 재미있다. 롤러코스터와 함께 추락하는 이미지가 강렬한 작품 말미는 어떤 가치의 몰락을 보여줘 짜릿하고, ‘자유이용권’으로 무한히 추락과 죽음을 복제(혹은 유예)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환상적이다.



3. 공부를 하자 그리고 시험을 보자

허영심과 인정욕구가 강렬하여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승주’의 모험기. 숫자로 모두 최고로 평가받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일탈과 허세도 남달라야 한다. 작품이 서사적 재미는 확실히 있는데 일종의 성장물이라 하기도 모호하고 블랙코미디라고 하기도 어중간하다. 풍자의 대상이 시스템인가 승주라는 잘 훈련된 청소년 개인인가. 오독일지 몰라도 내게는 승주 개인으로 읽히는데 그게 시의성면에서 왜 필요한가? 게다가 작가님이 의미하신 바는 있겠으나 독자 입장에서 보기에는 없어도 별 문제없는 씬이 있어 불편했다. 묘사하지 않아도 충분히 성장기의 성이슈를 다룰 수 있다 생각한다. 헤르만 헤세가 이미 멋지게 그걸 증명했듯이.

한줄평: 순전히 취향순으로 매기자면, 이유리>서장원>>>>>>>정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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