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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ha Green’s Bookshelf
유한한 존재로서 덧없이 살다 갈 인간의 본질인 존재론적 운명을 감히 대면하며 살아가기에 고통은 버겁고, 이러한 인간 실존적 문제는 극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외면하고 살고 싶으나 실시간으로 생의 유한성을 곧잘 감각하는 섬세한 실존적 감수성을 타고 난 탓에 회피란 불가능하다.
종교, 동양철학, 서양철학 등에서 답을 찾으려던 시절도 있었다. 한때 철학서적을 탐독하던 이과생이었으나 어설프게 알면 알수록 고통은 더 커져갔기에 철학서는 다시는 손도 대지 않겠다 다짐하고 결국 인체를 탐구하고 치료하는 응용과학쪽으로 진로를 확고하게 굳혀버렸다. 전인적 사고를 하자고 다짐함에도 불구하고, 생물학, 화학, 유기화학, 기초생리학, 발생학, 해부학 등을 공부하며 알게 모르게 환원론적 사고가 더욱 굳어간다. 인간은 DNA를 전파하는 생존기계에 불과할 뿐이나 끔찍하게도 자아라는 괴물을 가지게 된 진화론적 돌연변이와 같은 종種일뿐.

쳐다보지도 말자고 다짐했던 철학서들에 올해는 손이 다시 자주 가게 된다. 북클럽 모임에 기회가 닿아 서울대 철학과 박찬국 교수님의 하이데거 강의를 엮은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를 접하며 뜻하지 않게 존재론적 위안을 얻게 된다.
스물한 살 풋내기 대학생 시절, 미학과 교양인 <시각매체예술론>을 들으며 학점 짜기로 악명 높았던 모 교수님께 발표수업 도중 실존주의에 대한 문답론적 폭격을 들었던 적이 있다. 당시 발표하다 말고 문답론에 이끌려 존재자는 세계와의 존재연관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던 기억이 나는데 당시엔 몰랐(거나 잊어버렸)지만 이 주제가 바로 하이데거의 사상이었던 것이다.

이미 AI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고 레이 커즈와일 같은 미래학자들은 인류는 AI와 결합하게 되는 특이점이 곧 도래할 것이니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인 현 시대에, 과학기술에 대한 반성적 성찰은 낡은 시적 유물인 것인가? 지배에의 의지, 즉 의지에의 의지는 강화와 증대의 목적만으로 질주하며, 맥락이 조금 다르지만 후에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인 장 보드리야르가 *소비의 사회*에서 차이표시기호는 소비자의 욕구를 절대로 만족시킬 수 없기에 무한대로 욕구를 증식시킨다고 했던 지적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과학과 기술은 이미 도구적 이성을 넘어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되어버렸다. 의지에의 의지가 증대할수록 존재자의 존재는 사라져가므로 만성적인 공허감에 시달리게 된다. 도구적 이성과 비판적 이성을 나눈 기존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기반해 인간이 비판적 이성을 회복하여 이성적 주체가 된다고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이에 종교적 회심이 필요하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여러모로 후대에 큰 영향을 남긴 실존주의의 대가이나 (본인은 실존주의자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던 듯) 나치 부역자라는 최악의 오점을 남기게 되었고 제자이며 그 역시 저명한 사상가인 한나 아렌트와의 열애로도 유명한 마르틴 하이데거. 얼마나 대단한 사상가이기에 모두가 딜레마로 고통받으며 그의 사상을 접한단 말인가? 본작은 그런 역사적 배경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난해하기로 유명한 하이데거의 사상을 알기 쉽고 친절하게 안내한다. 중요한 개념에 한해 자주 동어반복적인 전개로 후반버 약간 피로감이 오는 점은 강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 저서라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유명한 ‘실존,’ ‘존재,’ ‘존재자,’ ‘현존재,’ ‘근본기분,’ ‘경이,’ ‘경악,’ ‘불안,’ ‘사역,’ ‘시적 이성,’ 하이데거의 건축론 등에 대한 개념에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어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용기를 얻고 최근 재출간된 *존재와 시간* 이기상 교수님의 번역본도 천천히 읽어나가는 중이다.

위대한 걸작을 남겼으나 윤리/도덕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예술가에 대한 딜레마를 다룬 클레어 데더러의 문제작 *괴물들* 을 사두었었는데 다음 차례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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