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Isha Green’s Bookshelf
  •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 진은영
  • 15,120원 (10%840)
  • 2024-09-15
  • : 15,924
읽기의 고통이 곧 즐거움이란 것은 역설적인 쾌락인데, 양질의 책을 읽느라 뇌근육에 쥐가 나는 순간을 견뎌가며 뇌를 단련시키는 즐거움에 열심히 읽다 보면 인생을 뒤흔드는 강렬한 감동으로 진하게 남기 때문…인 줄 알았다. 허나 정말인가? 시인의 말처럼 세월이 지나고 나면 다 휘발되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두꺼운 벽돌책 및 고전들 소싯적에 정말 많이 읽었는데 다 어디로 갔니? 단 몇줄이라도 읽은 감상을 나의 언어로 해석을 거쳐야 기억 한 귀퉁이에 겨우 자리 잡을까 말까 하다. 절망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진은영 작가에 따르면 독서 내공이 깊은 작가들도 마찬가지라니 다행이다.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이라는 쿨한 제목 하나에만 이끌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작년 말에 서점에서 업어온 책이다. 저자는 헤르베르트 시인이 언급한 독서의 무용성을 소개하며 서문을 시작한다.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야 하는 이유는, 자기와 꼭 들어맞지 않는 세계 속에서 싸우는 주인공들을 등장시키는 작가를 만드는 것이 독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소 무거운 주제의 독서 중간중간에 머리 식힐 겸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집인줄 알았는데 고전 중에서도 비교적 덜 대중적인 고전을 소개하는 책소개글 모음집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시지프 신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메가톤급 인기 고전도 일부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기본적으로 섬세하고 다정하면서 유머러스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진은영 작가(시인)는 스스로를 평범한 독자라고 겸양하게 표현하지만 읽기의 내공과 성찰의 깊이가 범상치 않다. 작가는 백석 시인의 열거법을 예찬하지만 이책의 소개 도서 목록을 보았을때 진은영 작가님 본인도 남다른 성실함을 지닌 작가로 보인다. 목록이지만 전체가 유기적으로 엮여 숨쉬는 느낌이다. 이를 어쩌나, 영업당해 알라딘 보관함에 또다시 못 읽을 책들을 잔뜩 담아버렸다. 넓고 깊으면서도 성실한 성찰, 닮고 싶다.
카프카가 ‘문학적 전복‘에 관해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읽어보자. "만일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단 말인가? (…)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고통을 주는 재앙 같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 던 누군가의 죽음 같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멀리 숲속으로 추방된 것 같은, 자살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들이지,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위대한 책들의 타격 아래서 우리는 번번이 죽고 또 번번이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 문학의 공간이란 그런 곳이다.- P61
아름답고 난해한 이 책에서 가장 크게 메아리치는 것은 이 오만한 실존에 대한 저항이다. 블랑쇼는 ‘나는 나의 죽음을 절대 경험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말처럼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P58
담담하게 쓰인 마지막 한 줄이 종이에 무심코 손가락을 베일 때처럼 통증을 유발한다. 이런 사실의 가벼운 나뭇잎들이야말로 가라앉지 않고 마음의 수면 위를 계속 맴돌며 고통의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평범함은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를 유지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 우리가 그 상태를 지키기 위해 인생의 한순간도 교활하거나 타협하거나 아첨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런 순간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그는 우리 보통 사람들을 대표하여 발언한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이거다 / 놈들이 / 그놈들이 아직도 / 제 자식을 / 고문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게 어떻게 해서 / 한 애비의 기쁨이자 한 에미의 기쁨이 되는지 말이다 / 그건 / 그 애가 잡혀간 지 다섯 달 될 때까지는 / 아직 살아 있었다는 뜻이고, 우리의 최대 희망은 / 놈들이 그 애를 고문하고 있다는 소식을 내년에 / 듣게 되는 것이다 여덟 달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오랜 무명 생활 끝에 상을 타는 배우가 수상 소감을 말하면서 긴 감사의 목록을 읊는 상황을 떠올려 보라. 그는 단 한 사람의 이름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애쓴다.
만일 누군가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을 잊는다면 그거야말로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돕고 지켜온 그 사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극도로 무례한 증거라도 된다는 듯이 말이다. 나열할 목록이 아무리 길어도 소중한 존재들의 이름은 기타 등등으로 생략되지 않는다.
「모닥불」처럼 단순한 시가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도 잊지 않고 모든 것을 호명하는 사랑의 단순함. 그 성실한 단순함.
이 아이들이 유창하게 구사하는 유일한 어휘는 이 사회의 진부한 표현들이다. 사실 나는 독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은 언어의 통달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아직도 몸 바쳐 믿고 있기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살지 않는다는 말을 할 때 ‘결손가정’ 출신이라는 표현에 만족하는 아이들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
베유는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나라, 계급, 성별, 재능 등 개인적 표식을 지워버린 채로 다가가야 한다고 말한다. 인류에게 공통적 처참함을 만들어내는 몰개성적인 힘의 폭력에 맞설 수 있는 것은 몰개성적인 사랑뿐이라는 뜻이다.- P150
모든 것을 의심하고 회의하라. 심지어 행복을 원하는 마음까지도. 니체는 춤추는 별을 언급한 다음, 행복을 찾아 다니는 것은 비천한 인간의 일이라고 덧붙인다. 행복이 현대인을 지배하는 새로운 신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사라 아메드는 『행복의 약속』에서 우리가 행복이라는 관념 아래 특정한 삶의 방식을 강요당한다고 말한다. 행복이 지배의 기술이 되었다는 것이다. 행복은 이제 우리가 따라야 할 절대적으로 올바른 길로 간주된다. 이를 확인해주는 기본 지표들도 있는데, 결혼이나 안정된 가족 같은 것들이다.- P210
작가라는 곤경, 가수라는 곤경, 화가 혹은 배우라는 곤경. 필연성은 하나의 이름 아래 주어질 모든 곤경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만 생겨나는 위대한 속성이다.- P215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