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추월차선The Millionaire Fastlane’, 제목 한번 정말 잘 지었다. 제목이 확 눈에 띄어 잡게 되는 책은 대개는 독자들에게 어그로를 끄려고 다소 무리하게 가져다 붙인 책들이 많은데 다 읽어보니 어그로를 제대로 잘 끌면서 책의 핵심 내용을 그대로 요약한 제목이었다. 말 그대로 남들보다 빠르게 부자가 되는 길을 제시하는 책이다. 2013년에 나온 책인데 아직도 대형 서점 매대에 꽤나 넓은 공간을 차지하며 자리잡고 있길래 한번 읽어보고 싶은데 소장하고 싶을 정도는 아니어서 중고 시장을 뒤져보았으나 당췌 매물이 나오지도 않고, 도서관에서도 예약이 밀려 예약불가인 곳이 많아 힘들게 찾아 한참 기다려서 읽었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주문 고고씽! 소장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나는 다소 꽃밭에서 사는 유형의 인간인지라 딱히 기를 쓰고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는데, 이 책은 부자가 되려는 사람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자아 실현을 위해 노력하려는 사람들 또한 교훈으로 삼을 만한 이야기가 많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책에 있는 이야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승자가 될 수 있는 방법론이므로 기본적으로 불편하더라도 승자독식 체계를 인정한 다음 읽어 나가야 한다. 부를 여럿이 나누는 분배의 정의는 이 책의 목표가 아니니까. 저자는 젊은 나이에 람보르기니를 소유하겠다는 ‘구체적 목표’를 가지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달려왔으며 웹서비스 회사의 성공으로 돈방석에 앉았으며 37세에 은퇴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 가치관과는 좀 맞지는 않아서 불편한 점은 우선 제쳐두고, 구체적 목표의 실현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체계적으로 분석, 접근하여 노력한 저자의 이야기를 보면 참 대단한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 승자독식이므로 당연히 나의 베팅이 성공할 확률을 높인다는 철저한 목적 아래 확률론적인 접근을 사용하고 있으며, 다 읽고 나서 결론을 내리자면 역시나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점이 적잖은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지점인 것 같다. 모두에게(나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말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저자의 관점으로 이 책의 성공을 해석해 보자. 저자에 따르면 ‘돈이 열리는 나무’의 씨앗 다섯 가지는 임대 시스템,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 시스템, 콘텐츠 시스템, 유통 시스템, 그리고 인적 자원 시스템이다. 저자는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 시스템 카테고리 중 하나인 웹서비스 사업으로 부자가 된 후 은퇴하고 이 책을 썼다. 그는 부자가 되는 정보를 이 책에 정리하여 판매하였고, 베스트셀러로서 성공했다. 정보란 소프트웨어와 마찬가지로 복제가 쉽고 이윤을 남기기 좋은 아이템이다. 다만 저자가 말한 ‘진입의 계명’에 의하면 ‘진입 장벽이 낮을수록 그 길의 유효성은 감소하는 반면 경쟁은 치열’해지며 낮은 진입장벽을 넘어서려면 남다른 탁월함이 요구된다. 재테크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책은 시중에 널리고 널렸다. 그러나 이 책은 소위 대박을 쳤으며 ‘진입의 계명’을 위반했으나 유효한 이유는 ‘탁월’한 방식으로 책을 구성하였기 때문인데, ‘다량의 욕구를 해결하도록 영향력을 발휘해 가치를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순이익 = 판매 개수(규모) * 단위당 이익(중요도) 공식을 기억해야 한다. 이 공식에 적용했을 때 이 책은 ‘빨리 부자가 되는 법’이라는 다량의 강력한 욕구를 제시하는 컨텐츠이고 복제가 쉬운 아이템이다. 그러나 읽고 나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왜 불편한 사람들이 생기는가?
흥미와 헌신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흥미 있는 사람은 책을 읽지만, 헌신하는 사람은 그 책을 50번 응용한다. (중략) 흥미는 세 번째 실패 후 단념하게 하지만, 헌신은 백 번의 실패 이후에도 지속하게 한다. p.251.
불안정성 속에서 남들과 다른 전략을 일관적으로 뚝심있게 밀고 나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구처럼 나도 흥미가 있어 책을 읽었지만 부의 추월차선을 타기 위해 딱히 50번 응용하며 책을 읽을 것 같지는 않다. 나는 그냥 범인이니까.
다만 내 삶의 가치와 맞는 부분들을 교훈으로서 주워 담아 삶의 교훈 노트에 메모한다. 정리하자면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인간이 아니라 가치를 생산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며, 단순한 자기 만족을 위한 개인적 관심사가 아니라 타인의 니즈를 읽을 줄 아는 통찰력이 필요하고, 부의 증식을 위해 보다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방식의 사업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흔들리지 않는 주관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실현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며, 그리고 철저하게 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최적의 확률을 찾기 위한 프로세스대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 가장 중요한 교훈은 시간이라는 변수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를 잊으면 시간을 허비하는 노예가 되어 살아가기 쉽다는 것이다.
방법론 중에서 인상깊었던 것 밑줄. 살면서 소소하게 이것저것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도 잘 사용하고 있던 방법이었다.
첫 번째 의사 결정 도구는 최악의 결과 분석법(WCCA)이다. 이 전략은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과 잠재적 결과를 분석하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 분석법에 따르면 모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다음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봐야 한다.
1) 이 선택에 따른 최악의 결과는 무엇인가?
2) 그 결과가 나올 확률은 얼마나 되는가?
3) 그 정도 리스크는 받아들일 수 있는가? pp. 217-218
+ 앞서 여러 번 밝혔듯이 더불어 잘 사는 삶에 대한 고민을 중점적으로 독서를 하는 분들에게는 불편한 지점이 적지 않은 책이다. 솔직히 나 또한 읽으면서 감탄하는 한편 불편했던 부분들도 있었음을 인정한다. 다음을 보자.
다음 중 무엇이라도 100만 명에게 제공해 보라.
1) 기분을 좋게 해 주어라.
2) 문제를 해결해 주어라.
3) 교육해 주어라.
4) 외모를 발전시켜라. (건강, 영약, 옷, 화장)
5) 안전을 제공하라. (주거지, 안전예방책, 건강)
6) 긍정적인 정서를 유발하라. (사랑, 행복, 웃음, 자신감)
7) 기본적인 욕구(음식)부터 외설적인 욕구(성욕)까지 충족시켜라.
8) 삶을 편하게 해 주어라.
9) 꿈과 희망을 고취하라. p.268.
위의 전략을 잘 따라서 돈방석에 앉은 이들의 많은 전례가 떠오르는데, 한줄한줄 읽으면서 섬짓한 느낌이 들었다. 목표가 부의 증식이고 가치판단이 배제되니 사회적으로 강력하게 부정적인 영향력을 미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증식하는 냉혹한 자본의 실체와 생생하게 목도한 느낌 때문이다. 돈 나무가 되는 어떤 컨텐츠들은 사회적 불의에 해당하는 강력한 통념과 차별, 혐오를 강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음이 떠오른다. 위디스크와 파일노리 등 웹하드 카르텔에서 불법 촬영물을 달랑 100원에 팔았지만 ‘규모’가 큰 시장(수많은 남성들)의 ‘외설적인 욕구’를 해결해 주었기 때문에 불티나게 팔렸고, 돈을 벌기 위해 여성의 기본권 침해와 인격살인이라는 윤리적 문제 의식 따위는 전혀 필요 없었다. 저자는 ‘다음을 100만명에게 제공해 보라’고 하였는데 양진호 일당은 이 법칙을 아주 잘 알았던 것이 틀림없다. 별다른 자본 없이도, 심지어 적지 않은 여성들이 목숨을 끊었는데도 ‘유작’ 마케팅으로 더욱더 떼돈을 벌 수 있었으니 분노가 치밀지 않을 수 없다.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부의 추월차선은 많은 이를 이롭게 하는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길도 포함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무조건적 증식이라는 부의 본질적인 속성에 대해 목도하고 나서, 부자가 되고자 하는 개개인의 욕망이 많은 이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는 무조건적인 부의 추월차선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성숙한 사회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더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