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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ha Green’s Bookshelf
  • 의지력의 재발견
  • 로이 F. 바우마이스터 & 존 티어니
  • 16,200원 (10%900)
  • 2012-02-15
  • : 2,199

지름신이 강림하여 절제력도 없이 신나서 책 쇼핑만 해 놓고 읽지 못할 때마다 자괴감에 휩싸이곤 했었는데, 요즘은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면서 초조해지는 강박관념을 버렸다. 비록 잠시 찬 밥 신세가 되어 잊히더라도, 꾸준히 관심을 놓지 않은 주제이면서 필요하면 언젠가는 다시 찾아 읽게 된다는 것을 다년간의 독서 경험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그런 책이다. 2018년 재발견한 책. 의지력이 너무 나약해서 자극 좀 받으려고 5-6년 쯤 전에 사 놓고 읽지 않아 책장 한 구석에 얌전히 숨 죽이고 있던 책이었는데 요즘 다시 의지 박약 상태가 되어버린 나를 도우시려는 신의 계시인지, 최근 번뜩 눈에 띄어 단숨에 읽어내렸다. 다만 읽고 바로 감상을 남겼어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두 달이 넘어 리뷰를 적으려고 하니 감동만 남고 막상 체계적으로 언어화된 감상은 거의 남지 않아버렸네. 나의 언어로 재정의가 확고히 되지 않은 채 많은 부분이 증발해버렸다. 하아. 크게 자극을 받고 도움이 된 책이었는데, 역시나 짧게라도 감상문을 적지 않으면 금세 휘발되어 버린다. 주의하자. 


사설이 길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의지력은 한정된 자원이니 적절한 때에 효율적으로 잘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골자이다. 저자들은 “생각, 느낌, 행동을 제어하는 능력이 소진된 상태”를 ‘자아 고갈’ 상태라고 정의하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역설한다. 여러 가지 재미있는 사회심리학적 실험을 통해 자아 고갈 상태에서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은 인간 본성임을 보여주고, 생리학적인 연구 결과로 이를 뒷받침한다. 의지력 발휘를 위해 뇌는 상당한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포도당 고갈상태가 되고 결과적으로 더 고차원적인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부분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며 따라서 기초적 욕구를 지향하는 원시뇌의 지배하에 떨어지게 된다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가설을 제시한다. 위로가 된 것은, 의지력이 강하다고 널리 알려진 사람들조차도 당연히 자아 고갈 상태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저자들은 어떤 요인들이 자아 고갈 상태를 가속화시키며 따라서 어떤 전략이 유효한지, 특별히 의지력이 강한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잘 활용하며 어떤 방식으로 극복하는지 보여준다. 


굉장히 재미있는 사례가 많았는데 읽은 지 두 달 정도 지나서 다 기억은 안 나서 아쉽지만 몇 가지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던 예를 들면 다이어트 산업이 흥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히 실패율이 거의 100퍼센트 가깝기 때문이라고 한다. 본과 3학년 때 한 외과 교수님께서 위장관의 생리학과 호르몬 조절에 대한 강의 도중 비만 치료에 대한 연구 결과 몇 가지를 소개하시며 다이어트 산업은 사기꾼 산업이라고 일갈하셨는데 (일종의 불편한 진실) 맞는 말이다. 단기간으로 보면 급격히 감량한 것이 가능해 보이지만 10년 내에는 거의 100퍼센트의 확률로 본래 체중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분명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이 정신적 지주가 되어 강한 정신력으로 많은 다이어터들의 귀감이 되며 그들을 이끌어 주고 있는 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 책에 따르면 사회심리학적으로 보았을 때 ‘사회적 선언’효과인 것인데, 유명인이고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위치라는 사회적인 강력한 체면이 그들에게 놀라운 의지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들도 요요가 찾아오지만 대중 앞에 서기 위해 다시 뼈를 깎는 절제력으로 체중을 감량하고 몇 년 후에 또 체중이 불었다가 다시 감량하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실제로 환자들에게 음주나 금연 교육을 할 때 중요한 전략 중 하나가 금연일이나 금주일을 정하고 되도록 많은 주변 사람들에게 선언하라는 것이 이를 응용한 것이다.

내가 배운 또 좋은 전략은 많은 일들을 습관화시키라는 전략이었다.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불규칙한 생활을 하고 있다면 아침에 침대에서 빠져나오는 데에 의지력을 낭비하게 되고, 앞서 기술했듯이 의지력은 한정된 자원이므로 결국 그날은 망쳐버리고 ‘나레기’라면서 자기비하를 하게 되는 것인데(아아…)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일상의 많은 부분들을 의지력을 사용하지 않게 습관화를 하라는 것이다. 가장 흔한 예로 매일 아침 영어 학원을 등록한다든지 말이다.

종교를 갖는 것도 도움이 된다. 종교인들이 비종교인들에 비해 자기 절제력이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도 재미있었다. 종교인들은 그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신이 도와주셔서’라고 믿겠지만, 좀더 보편적인 사회과학적 시각으로 해석을 해 보자면 종교 집단마다 특유의 공동체 규범이 확고히 자리잡아 있게 마련이고 이러한 공동체 속에서 같은 교인들과의 친교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절제력을 더욱더 내면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한경쟁시대에서 감수성이 섬세하며 의지력이 나약한 사람들은 낙오자라는 딱지가 붙거나 결핍이 있는 모자란 사람으로 취급받기 십상이고 나 또한 스스로의 의지력 부족을 나약한 정신력 문제라며 생각하고 자책하곤 했었는데, 큰 위안이 되었다(하하). 기타 재미있는 사례가 넘쳐나서 정말 즐겁게 읽었다. 이과계통 전공이고 문알못이라 인지심리학 실험은 항상 볼 때마다 그 재치와 기발함에 무릎을 치거나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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