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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글러,《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갈라파고스, 2007.
10년쯤 전에 대형 서점 신간 코너에 전시된 이 책을 보았던 것 같은데, 여전히 초특급 스테디셀러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진다. 세계 기아 문제와 그를 야기하는 구조적 모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구나 해서.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항상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었다. 무려 10년 전 부터 읽을지 말지 고민하며 서점에서 집어 들었다가 여러 번 내려놓은 책이다. 그러다 며칠 전 우연히 바자회 중고 장터에서 발견하고 냉큼 구입, 집에 와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사실 나는 이 책의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감수성이 섬세한 편이라 아주 오래 전부터 쭉,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이미지를 기아와 굶주림의 이미지로 소비하는 방식이 상당히 불편했었다(게다가 이 책에 따르면 기아 인구는 숫자로만 따지면 아프리카가 아니라 아시아에 훨씬 많다고 하는데, 국내 번역본에서 굳이 안일하게 관습적인 방식의 이미지를 사용한 것은 분명히 문제이다). 특히 작년 초에 한 달 동안 서아프리카의 한 나라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뒤로 더더욱 거부감이 든다. 흔히 소비되는 어떤 종류의 이미지들은 구조적 모순을 은밀히 은폐하고 유지하고픈 기득권의 이해관계와 부합하며 차별적 인식을 강화하는 시스템의 세련된 선전물로서 작용한다. 아프리카라는 대륙에 수많은 국가와 다양한 역사적 배경을 지닌 민족들이 있으며 그들이 막대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삭제된다. 타인의 불행을 포르노처럼 소비하면서, 구조적 약자라는 이미지를 강화하고, 그 이외의 가능성을 차단시켜버린다. 인식론적인 폭력이다. 강대국들은 아프리카의 자원을 헐값에 착취하는 대가로 독재자들의 장기집권과 만행을 눈감아주거나 은밀히 후원하는 한편, '못 사는 아프리카를 도와주는 발전한 서구권 국가들의 선량함'이라는 이미지 메이킹을 하며 생색내듯 원조와 봉사활동을 한다.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오브 아프리카》와 같은 아프리카의 오랜 사회구조적 문제와 그를 야기한 역사를 다룬 책들에 의하면 서구권 선진국들이 아프리카의 자원을 착취해서 얻는 금전적 수탈이 원조하는 양의 2-3배를 훨씬 상회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많은 국제적 단체들의 노력과 활약을 깎아내리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타인의 불행을 아파하고 공감하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지적인 존재이며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노력은 경외스럽고 그들의 행동 앞에서는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기아와 국제 원조에 대한 감상적 접근은 위험하며 (저자는 원조 물자가 테러 집단으로 흘러들어가 내전을 더욱 촉발시킨 예를 든다) 원조하고자 하는 나라의 사회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역학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통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책의 저자는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으로서 기아 문제에 정통한 전문가로서의 풍부한 현장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기아 문제에 대한 실상을 알리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제국주의 시대의 수탈로부터 시작하여 신자유주의 시대에 고착화된 부의 불평등과 자본의 자기 증식 욕망, 투기 때문에 식량이 버려지는 극심한 분배의 불의가 기아 문제의 핵심이다. 세계적으로 생산되는 식량은 전 지구 인구를 먹여 살리는 데 결코 부족하지 않으나, 식량 자본으로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세력이 수요공급 곡선을 따라 줄타기를 하며 시카고 곡물거래소에서 투기 놀이를 하는 동안 죄없는 많은 어린이들은 제대로 된 영양분을 공급받지도 못한 채 죽어간다. 자국민의 안위보다는 장기집권이 더 중요한 독재자들과 끊임없는 내전과 같은 정치적 혼란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이런 국가들은 도로, 항구와 같은 사회적 인프라도 부족하여 식량이 필요한 어린이들에게 접근성도 떨어진다. 양심의 가책을 달래기 위한 생색내기 원조로만으로는 뿌리깊은 기아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아프리카 대륙의 문제들에 방점을 두긴 하였지만 기아 문제는 아프리카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기아 인구가 가장 많은 인도네시아와 같은 동남아의 국가들, 동유럽과 구 소비에트 연방의 일부 국가와 북한의 인권과 기아 문제도 심각하다고 한다. 특히 북한의 기아 문제는 오래된 이념 논쟁과 맞물려 현실적인 접근은 거의 미비한 실정이다. 한쪽 진영에서는 이념을 뒷받침하기 위한 도구로만 소비하고 있으며 다른쪽에서는 또 다른 이념 때문에 북한의 기아 실상을 애써 축소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서구의 부자 나라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신화가 있어. 그것은 바로 자연도태설이지. 이것은 정말 가혹한 신화가 아닐 수 없단다. 이성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의 6분의 1이 기아에 희생당하는 것을 너무도 안타까워해. 하지만 일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불행에 장점도 있다고 믿고 있단다. 그러니까 점점 높아지는 지구의 인구밀도를 기근이 적당히 조절하고 있다고 보는 거야. (중략) 이런 설명은 전형적인 유럽적·백인 우월주의적 '정당화'란다. 자신들은 절대로 굶어 죽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p.38.
맬서스 이론은 근본적으로 틀렸지만, 심리적 기능을 충족시키거든. 날마다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구호시설에서 웅크린 채 죽어가는 아이들, 수단의 덤불 속을 비쩍 마른 몸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일반적인 감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거든.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진정시키고, 불합리한 세계에 대한 분노를 몰아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맬서스의 신화를 신봉하고 있어. 끔찍한 사태를 외면하고 무관심하게 만드는 사이비 이론을 말이야. pp.42-43.
금융자본은 결코 가치를 창조하지 않는다. 증시는 매일 24시간 돌아간다. (중략) 그러나 유능한 물리학자들이 조립한 모든 컴퓨터 모델에도 불구하고 - 컴퓨터는 리스크를 줄이는 데 봉사한다 - 증시는 완전히 비이성적으로 돌아간다. 증시를 돌아가게 하는 엔진은 이윤극대화, 손실에 대한 공포, 파산 리스크에 따르는 신경전, 그리고 정신착란과 황홀경을 뒤풀이하는 무제한의 이윤추구 등이다. p.160.
아들에게 설명해주는 포맷을 차용하고 있어서 용어의 명쾌한 정의들이 돋보이는데, 신자유주의의 비인간성에 대한 일침이 뜨겁다.
저자는 원조보다는 개혁이 우선이라고 역설한다. 사회적 인프라의 확충과 오랜 모순을 개혁하는 것이 기아 문제의 핵심이다. 사회의 오랜 모순을 해결하고 개혁하며 민중을 위한 정치를 펼치려다 살해당한 부르키나파소의 개혁가 상카라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에서도 만났었기에 반가우면서도 착잡했다.
책장을 덮으면서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표지였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이 출간된지 (원서 기준) 17-18년의 세월이 흘렀기에 그 사이에 인류의 기아 문제가 개선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 관련된 이야기들에 관심을 잃지 않고, 다른 책들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 다음은 아프리카의 사회구조적 모순의 깊은 뿌리에 대해 개괄식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좋은 책들이다.
루츠 판 다이크,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웅진지식하우스, 2005.
월레 소잉카, 《오브 아프리카》, 삼천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