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에 앞서 저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제가 이 책,『TED 프레젠테이션』을 읽게 된 이유에 관한 꽤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남들이 잘 하지 않는 복수전공을 선택했는데, 불교명상(정확히는 선=Zen) 학과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저는 수학 공식 하나를 보더라도 그 공식이 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했습니다. 예를 들면 수학시간에 1부터 10까지의 합을 배우면서 (1+10)*10/2 라는 공식을 외우기보다는, 그 원리(1+10, 2+9, 3+8, 4+7, 5+6 을 각각 짝지워서 더함)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더 오래 기억하고, 다른 모든 상황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으니까요. (수학공식 얘기를 더 하면 마우스 휠 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릴 것 같아 재빨리 마치겠습니다.) 저는 어쨌든 세상의 이치가 궁금했고, 그것을 알아가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성격 덕분에, 이런 의문들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왜 살까?
이 질문의 답은 금방 나왔습니다. 행복해지려고.
행복해지려고
하지만 진짜 중요하고 어려운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행복해지지?
여기서 더 이상 질문하기를 그치고 '어떻게' 행복해질지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면 나의 삶은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인생에서 가지 않은 길의 풍경을 알아낼 방법은 없습니다. 저의 호기심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갔습니다.
나는 어떻게 행복해지지?
질문이 '나'에서 멈추고 보니, 나는 내가 누구인지 거의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분명 더 행복해지고 싶은데,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나에 대해 (느끼고는 있지만) 정확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나'에 관한 탐구를 시작했습니다. 심리학과 철학과 불교 책들을 읽고, 수업을 듣고, 사람들에게 묻고, 나 스스로에게도 물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풀리지 않는 궁금함과 답답함이 점점 커져서,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다른 모든 일들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마음으로 오직 이 질문만을 가득 품고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떴는데 내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나라고 믿고 있던 어떤 존재가 사라진 상태, 작은 방이 마치 우주 한 가운데 있는 것처럼 넓게 느껴지고, 내 몸과 정신과 외부를 나누던 모든 경계가 사라진 느낌.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고요한 관찰자가 있었고, 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금빛 노을이 반짝이는 넓은 강물의 흐름 속에 목까지 몸을 담그고 서있는 나를 보았습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 - 헤라클레이토스
강물의 흐름은 저에게 '시간'으로 보였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 나는 늘 새로운 순간, 현재를 살고 있었습니다. '과거'와 '미래'라는 것은 실제로는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둘은 단지 우리의 믿음 속에 존재하는 것.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도깨비로 착각한 사람이 있다면 그 도깨비는 존재하는 것일까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지구에는 원래 주인이 없는데, 땅과 바다 위에 약속으로 선을 긋고 사고파는 우리에게 그 소유권은 있는 것일까요, 없는 것일까요. 이들은 지극히,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내가 사라진 아침의 경험은 (그 원인이 무엇이든, 그것이 어떤 현상이든) '나 자신'과 '시간'에 관한 나의 굳은 믿음들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결코 알 수 없지만, '내가 아닐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다면, 비록 조금 답답하고 막막한 낮과 밤들을 지나게 될지도 모르지만, 저와 함께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보지 않으시겠나요?
삼천포로 빠진 듯한 저의 이야기는 곧 제대로 결론에 도착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가 바로 '나를 찾는 여행' 때문이거든요. 앞으로 한 달 후, 2013년 1월부터 저는 <나를 찾는 소셜리딩>이라는 이름의 독서토론&명상 스터디를 진행합니다. 6주 동안 매주 한 번씩 만나 '자신을 찾는 여정에 관한 책(『연금술사』)' 또는 '삶의 지혜가 담긴 책(『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중 한 권을 골라 각자 읽고 서로 이야기 나누고, 자아탐색의 시간을 주제별로 구체화시킨 6가지 질문을 매주 하나씩 참가자들에게 줄 것입니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며, 다른 사람들의 경험도 참고할 수 있도록 함께 이야기합니다.
이 스터디를 시작하면 저는 (비록 소수의 인원일지라도) 사람들의 집중을 받으며 말을 해야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저에게 흔치 않은 경험이고, 새로운 영역의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소통의 방법을 배우고 싶어 『TED 프레젠테이션』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는 왠지 말하기 힘들었던 저의 지난 이야기들을 할 기회를 주신 여러 분들께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신 당신도 그 여러 분들 중 한 명입니다. 감사합니다.
===== 서평의 시작 =====
이 책을 읽고 어떤 방식의 서평을 써볼까 꽤 고민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떠올렸다. '이 책에서 배운 방법들을 활용해, 내가 TED 강연장에서 진짜 프레젠테이션을 하듯 말해보자. 그리고 이 프레젠테이션에서 적용한 기법들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서평을 써보자.' 그리고 이것을 실행에 옮겼다. 이 책에서 말하는, 멋지고 감동적인 프레젠테이션 하는 법을 위의 글을 분석하며 소개한다.
1. [저의 이야기]
- 사적인 이야기로 시작하라: 오프닝
p.61
성공 확률 100%의 오프닝 코멘트는 사적인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한다. 단, 그것은 <강연의 주제와 연관>이 있어야 하며, 자신만의 이야기이며 <자신이 느낀 감정을 청중과 교류>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셋째와 넷째, 다섯째 요건은 <풍부한 감성이 담긴 감각적 스토리>일 것, <대화를 다양하게 활용>할 것, <청중이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일 것이다.

나도 이 오프닝을 택했다. 사적인 이야기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강연의 주제는 <나만 할 수 있는 그것>이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이 말을 정확히 표현하는 존 우든의 TED 강연을 인용한다.
"우리의 운명을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고… (중략) 이 순간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해시키려 한 세 가지 규칙이 기억나는군요. 징징대지 마라. 불평하지 마라. 핑계 대지 마라. 밖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너의 능력을 최선을 다해 사용하라. 아무도 그 이상은 할 수 없다."
* TED * UCLA의 전설적인 농구 감독 존 우든, <승리와 성공의 차이> 中
http://www.ted.com/talks/lang/ko/john_wooden_on_the_difference_between_winning_and_success.html

2. [나는 왜 살까](슬라이드 자료 넣기)
-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적을수록 좋다: 심플, 더 심플하게
p.182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슬라이드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슬라이드는 청중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지, 연사가 참고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슬라이드 자료는 적을수록 좋고, 프레젠테이션의 핵심 메시지는 나의 입을 통해서 나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왜 살까?
나는 위의 글에서 총 5개의 대화상자를 썼고, 최대한 글을 압축하여 넣었고, 같은 디자인과 색을 유지했으며, 약간의 변화만을 주어(글자 크기 및 바탕색 강조) 주제를 표현했다. 커다란 텍스트에 몇 개의 단어만을 쓰는 방식(다카하시 방식)이다. (참고로, 저는 이 포스팅 전체에서 문장을 최대한 압축해 쓰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풍부한 이미지 자료를 이용하는 경우(고든 방식)도 있다.
* TED * 이미지가 풍부한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으로 유명한 세스 고딘, <우리가 이끄는 부족들>
http://www.ted.com/talks/lang/ko/seth_godin_on_the_tribes_we_lead.html
→ 강연의 내용이 매우 마음에 들고, 재밌다! 변화를 만들어내는 이단적인 사람들의 역할에 관한 이야기. ★★★★★ 미치 추천 강연

↑ 책의 앞표지. 나도 곧 누군가의 앞에 서야한다.
3. [금빛 노을이 반짝이는 넓은 강물의 흐름]
- 말하지 말고, 그저 보여주기만 하라: 스토리텔링의 법칙
p.117
스토리텔링은 연사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관찰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을 1~2개 정도의 강렬한 이야기와 사실에 녹여내는 작업이다. 그저 '사실'들을 나열하는 강연은 지루해지기 쉽다. 연사가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청중과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쌍방향 소통을 이뤄낼 때 강연은 의미가 있고, 이것이 곧 TED의 설립 취지이기도 하다.
나는 위의 글에서 최대한 솔직하게 친구에게 말하듯 나의 경험을 꺼내 놓으려 노력했고, 몇몇 묘사들을 시도했다. 이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이나 평가는 어떨지 모르겠고, 너무 솔직한 글을 쓴 탓에 누군가에게 처음 속살을 보인 듯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그러나 이것이 글을 읽는 이들과 나의 진실한 소통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용기를 냅니다.)
책에서는 이야기를 통해 강연을 이끌어가는 좋은 예로, 말콤 글래드웰의 TED를 소개한다.
* TED * 스토리텔링의 강자, 세계적 베스트셀러『티핑 포인트』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 <스파게티 소스에 관하여>
http://www.ted.com/talks/lang/ko/malcolm_gladwell_on_spaghetti_sauce.html
→ 최고의 맛(레시피)이 있다는 믿음에서, 사람마다 다른 맛을 선호한다는 다양성의 이해로 이동한다. ★★★★ 미치 추천 강연
↑ 책의 목차. 프레젠테이션 책답게 목차도 짧고 명쾌하다.
4.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
- TED 강연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결론 맺기: 콜백 스타일
p.106
'콜백(Call back)'의 본래 뜻은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웃긴 내용을 재차 언급하는 것이며, 이 책에서는 처음의 이야기나 질문으로 돌아가는 결론 맺기 방식을 말하고, 많은 TED 강연자들이 이를 선호한다. 예를 들면, 비행기에서 만난 낯선 소녀가 나에게 했던 질문을 첫머리에 꺼내고, 강연의 마지막에 자신이 소녀에게 어떤 답을 했는지 이야기하는 스타일이다. 나의 글에서도 첫 문장에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를 얘기하겠다고 말하고, 결론에 이르러 그 이유를 밝혔다.
종종 인용구로 결론을 맺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양날의 검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수도 진부해질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참고로, 오프닝에 인용구를 사용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라고 함) 그리고 또다른 결론 맺기 방식으로는 캐치프레이즈 함께 말하기, 본론에 나온 '어떻게'를 누군가의 삶에 대입시켜 희망적인 이야기로 정리하기 등이 있다. 그리고 피해야 할 결론 맺기 방식은 밋밋한 보고서 스타일로 요약을 하거나, 본문에 언급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결론에 추가하는 것이다.
* TED * 비행기에서 만난 소녀의 질문 "어떻게 해야 성공하죠?" 리차드 세인트 존, <Richard St. John의 8가지 성공비결>
http://www.ted.com/talks/lang/ko/richard_st_john_s_8_secrets_of_success.html
↑ 책의 파노라마(?) 사진
책에는 이상의 4가지 프레젠테이션 팁 이외에도 많은 내용들이 담겨 있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관심을 갖는 4가지 요소(소속감, 개인적인 이익, 자기계발, 미래에 대한 희망), 첫인상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각인효과/초두효과/후광효과), 스토리 속 인물에 따라 무대 위의 정해진 위치로 움직이기, 목소리의 크기와 속도 조절하기,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큰 손동작, 좋지 않은 인상을 주는 제스처 등을 말한다. 그리고 훌륭한 내용이 없으면, 결코 어떤 기술로도 그 내용의 부족함을 넘어설 수 없다는 점을 필자는 양심선언(?) 한다. 하지만, 같은 값이라면 사람들은 다홍치마 가게 앞에 몰릴 것이다. 우리에게 이 책이 필요한 이유다.
P.S. 꽤 오랜 시간(퇴근하고 집에 와서 그대로 8시간 째, 이전에 쓴 시간을 더하면 11시간 이상) 이 글 하나를 쓰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은 상대방의 눈빛으로 확인된다. 나를 보고 있는 상대방의 눈치 빛나고 있다면,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이다." - 보스턴 필하모닉 지휘자, 벤자민 젠더
이 포스팅을 보는 당신의 눈이 빛나면 좋겠지만, 그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저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이야기하고자 노력할 뿐. 다만 이 글이 하늘로 쏘아올린 작은 신호탄이 되기를 바랍니다. 외로운 빈집 같은 도시의 밤에, 불빛 보고 놀러온 동네 친구들 함께 어느 옥상에 달빛 별빛 켜고 앉아, 치킨에 맥주 한 잔, 쓴 커피에 초콜릿 한 조각 나눠먹고 싶습니다.
즐겁게 읽어주셨다면 감사합니다. 대충 읽으셨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수십 가지 수백 가지 스파게티 소스를 즐기며 살아가는 다양한 입맛의 사람들이니까요. 그리고 <나를 찾는 소셜리딩>은, 시작하면 블로그에 소개글 올리겠습니다. 서평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