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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의 소중함
  • 나이트 워치
  • 세라 워터스
  • 15,120원 (10%840)
  • 2019-05-13
  • : 553

 

대학교때 친한 후배가 있었다. 참 순수한 친구였다. 사람들에게 따스하게 대하고 농담으로 항상 분위기를 재미있게 해 주었다. 주변 사람들의 고민상담을 잘 들어주고 따스한 위로도 잊지 않던 친구였다. 그 친구가 군에 입대를 한 후 거의 3년 동안은 보지 못했었다. 그리고 3년 만에 다시 복학한 그를 만났을 때 너무나도 달라진 모습에 깜짝 놀랐었다. 그는 3년 전에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것에 시니컬하게 반응을 하고, 상대방의 말에 전혀 공감을 하지 못했었다. 말과 행동이 거칠어지고 혼자 멍하니 딴 생각을 할 때도 많았다. 결정적으로 어떤 선배와 사소한 언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뛰쳐나갔다. 과연 무엇이 그를 그렇게 변하게 했을까. 가끔 그 친구를 생각하면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그 친구가 겪었을 끔찍한 일들이 상상이 된다. 군대의 어두운 곳에서 심한 구타를 당하고, 내부만의 구석에서 온갖 욕설과 핀잔을 듣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내가 떠올리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을 겪었을지도 모른다.그럼에도 끝내 그의 고백을 듣지 못해서 그가 왜 그렇게 변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세라 워터스의 [나이트 워치]라는 소설을 읽으며 그 후배를 떠올렸다.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1947년의 배경으로 6명의 런던의 젊은이의 삶을 묘사한다. 거리에는 폭격으로 부서진 건물들의 잔해가 여전히 방치되어 있고, 아직도 전쟁 흔적을 털어버리지 못한 제대한 군인들이 넘쳐나고 있다. 겉으로는 모두들 안정을 되찾은 것 같지만 사람도 거리도 여전히 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시기였다. 그중 유독 여섯 명의 사람들만이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안정적인 직장이 있고, 나름 전쟁 후의 세상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불쑥 불쑥 그 안에서 무언가가 터져나와 현실에서 뛰쳐 나가고자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평화에 불안해 하고, 지금의 삶을 마치 꿈 속의 삶처럼 현실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소설의 초반에는 그들의 과거에 대한 언급이 너무 희미하기에 그들의 자학적인 생각들과 행동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겪었을 끔찍한 일들을 혼자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과연 이들은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일까.

 

이 소설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전쟁 후의 1947년을 배경으로, 그다음에는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을 배경으로, 그리고 마지막은 전쟁이 막 시작하던 1941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시간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여섯 명의 인물들이 겪은 전쟁의 광기와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변하게 만들었는지를 역 추적한다. 소설의 시작은 '케이'라는 여성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결국, 케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인간이 됐단 말이지. 벽 시계도 손목시계도 죄다 멎어서, 주인집 현관으로 들어서는 불구자가 누군지를 보고 시간을 가늠하는 꼴이. (P 11)

 

케이는 짧은 머리에 잘생긴 청년 같은 외모를 주는 여자였다. 그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거리를 배회하지만, 그의 말투나 행동에서 그가 상류층 출신이며 군대와 관련된 일을 했음을 추측하게 한다. 그녀는 계속 거리를 방황하며 누군가를 찾아다닌다. 그리고 결국 전쟁의 시기에 같이 일했던 미키라는 여성을 찾아가 자신의 상태를 고백한다.

 

케이는 뒤로 푹 물러나 앉아 스스로에 대한 역겨움에 고개를 돌렸다. "우리뿐 아니라 수천수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죄다 똑같은 일을 겪었어. 누군가를 혹은 뭔가를 잃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런던 거리 아무 데서나 손을 뻗어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 다들 연인을 잃거나 아이를 잃거나 친구를 잃었다고. 근데 난...... 헤어날 수가 없어. 미키. 거기서 헤어날 수가 없다고." 케이는 비참하게 웃었다. "헤어나다니. 이 표현 진짜 웃기다! 사람의 애통함이 무슨 무너진 집인가, 지천에 수북이 깔린 잔해를 헤치고 일어나 다른 멀쩡한 곳으로 나와야 한다니...... 키미, 나는 건물 잔해 속에서 길을 잃었어.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문제는 애초에 나갈 생각도 없다는 거지. 아직도 내 인생 전부가 그 잔해 밑에 깔려 있는데......" (P 148-9)

 

도대체 케이는 전쟁터에서 무엇을 잃어버렸던 것일까. 그녀는 전쟁터에서 어떤 끔찍한 것을 겪은 것일까. 비록 겉모습일지 몰라도 모두들 다 회복해서 아무렇지 않게 사는데 왜 그녀만 이토록 괴로워하며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비단 케이뿐만이 아니다. 헬렌이라는 여성은 줄리아라는 여성과 동거하며 끊임없이 그녀에게 집착한다. 비브는 다정한 레지라는 유부남과 만나다가 어느 순간 레지에게 폭발하며 소리를 지른다. 누구보다도 어둡게 사는 사람은 덩컨이라는 남성이다. 덩컨은 비브의 남동생인데 철저히 자신의 과거를 숨긴 채 양초공장에서 일을 한다. 그리고 과거에 알던 프레이저를 만나자 갑자기 공포에 빠진다. 과연 무엇이 이들의 영혼을 이처럼 처참하게 파괴했을까. 

 

1944년을 배경으로 하는 2부가 시작되어서야 그 비밀이 조금씩 드러난다. 1944년의 런던은 하루에도 몇 번씩 공습 사이렌이 울리고 독일 폭격기들이 폭탄을 투하한다. 건물이 송두리째 날라가고 사람들은 그 폭탄에 몸이 찢겨 생명을 잃거나 불구가 된다. 케이는 미키와 함께 구급 대원으로 일을 하고 있다. 그는 폭발로 폐허가 된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며 폭파된 건물 속에서 시신과 부상자들을 접한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머리에서 흘린 피로 얼굴이 보이지 않고, 심지어 폭탄에 몸이 갈가리 찢긴 시신들을 접한다. 그러면서도 사랑 때문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다른 청년들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초반에는 전혀 연관이 없던 것 같던 이들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전쟁 시기에 이리저리 관계를 맺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런던에 폭탄이 떨어지던 날, 그 폭탄과 함께 케이를 비롯한 사람들의 삶이 산산조각 나는 그 진실이 밝혀진다.

 

이 소설은 시간의 역구성을 통해 케이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상처를 쫓아가기에 더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만약 이들이 전쟁 때 어떤 상처를 당했는지를 이야기하고, 그로 인해 이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이야기했다면, 그래도 덜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로 올라가며 그들이 경험한 끔찍한 전쟁의 시대와 그 시대의 광기로 인해 상처들을 발견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2차 세계대전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한 유대인이 그의 책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그렇다! 우리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묻지 말아 달라!"

 

보통 사람들은 살아남았다는 것에 안도를 한다. "어쨌든 살아남지 않았느냐? 어쨌든 그곳에서 무사히 돌아왔지 않느냐? 그러니 너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러니 아무렇게 않게 적응하며 살아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살아남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그렇게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잃어버리고 와야 하는 것이 있었을 텐데. 사람들은 왜 그 잃어버린 것을 외면하려 할까. 그들이 통과했을 전쟁터의 폐허 같은 끔찍한 공포를 왜 외면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시대에 여러 가지 아픔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때로는 일제시대와 태평양 전쟁 때 위안부나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겨우 생명만 가지고 돌아온 사람들. 6.25전쟁 때 가족들이 처참히 죽임을 당하고 자신만 살아남은 사람들, 군사정권 때 고문하고 학살로 가족이나 자식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배가 침몰하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까지.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말한다. 살아남았으니 그냥 살아가라고. 그들이 과연 그냥 살아갔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케이를 비롯한 5명의 사람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전쟁의 상처를 잊으며 서서히 회복되었을까. 아니면 죽을 때까지 여전히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 그리고 앞에 언급했던 그 후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그는 다시 예전의 그 모습으로 돌아왔을까. 아니면 자신의 이전의 모습은 그 군대의 어둡고 힘들었던 시간에 놓고 변해버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세라 워터스는 우리에게는 [핑거 스미스]라는 소설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스릴러로 유명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역사를 배경으로 시대와 인물들을 묘사하는데 탁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세라 워터스의 진짜 놀라운 점은 시대와 상황으로 인해 찢겨진 인간 내면의 모습을 너무도 끔찍하리만큼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트 워치]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2차 세계대전의 공포와 시대의 광기, 그리고 그 전쟁의 공포와 광기 속에서 한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파괴되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본 리뷰는 출판사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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