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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무는 썩은 나무는 아니다

증오

_황인찬

 

 

표기에 오류가 있었어요

여기 표기가 표고라고 되어 있어요

 

사무실에서 선생님이 내게 말한다

 

이런, 정말 그렇군요

나는 표고를 표기로 고친다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요?

선생님이 묻지만 나는 그냥 머리만 긁는다

 

역시 영혼일까요?

 

정오가 지나면 점심시간도 끝이 난다 그렇다면 이제는 다시 일해야 한다

 

나는 회사를 나와 오류동 집으로 돌아간다

 

-『2021현대문학상 수상시집』(현대문학, 2020), p.39.

 

    

    

사무실에 팀장님이나 과장님이 아니고 왜 선생님이 있을까? 아마도 선생님은 나를 가르치려 드는 자일 것이다. 잘못 썼다니까 고치지만 나는 정말 잘못 쓴 것일까. 선생은 나의 오류가 내 영혼의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나는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나의 집은 온갖 선생들이 오류라고 부르는 마을에 있다. 그 마을에서 살겠다. 한 인간을 오류라고 하는 자를 증오한다.

 

증오하면서 이렇게 담담히 글을 쓸 수 있다니. 원인이 성별이든, 피부색이든, 정체성이든, 신념이든... 인간 존재를 오류라고 여기는 자가 있다면 기꺼이 그를 증오하리라. 그러나 선생 앞에서는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을 이해한다. 나의 모습이다. 그런데 누구를 증오하기에 내 마음이 이 시를 맴도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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