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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무는 썩은 나무는 아니다

절필

_장하빈

 

 

새가 날개 접으면 새의 주검 되듯

밥그릇 엎으면 하얀 사리 무덤 되듯

붓을 꺾으면 생의 불꽃 사그라지네

붓끝에서 불꽃이 피어나는 까닭이네

 

-장하빈, 『신의 잠꼬대』(시와 반시, 2021)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글을 쓸 수 없게 되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그 정도의 마음이어야 글을 쓸 만한 걸까. 글을 쓴다는 게 뭘까. 신의 잠꼬대가 끝나면 저절로 절필이 될까. 시인에게 절필은 하얀 사리 무덤 같은 걸까. 몇 달 전 만났던 노시인이 당신은 늘 옆길로 샜다고, 아니 옆길에서 살았다고 하셨다. 그 옆길이 직장이었다고. 그러니까 생계가, 생활이 옆길이고 시와 문학이 본길이었다는 말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살아서 시인이 되었을까. 시인이 되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붓끝에서 불꽃이 피어나야 살아있는 것 같은 사람들이 정말로 있다. 장하빈 시인도 그런가 보다. 절대로 절필할 수 없다는 절필의 시를 쓰는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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