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_신용목
잤던 잠을 또 잤다.
모래처럼 하얗게 쏟아지는 잠이었다.
누구의 이름이든
부르면,
그가 나타날 것 같은 모래밭이었다. 잠은 어떻게 그 많은 모래를 다 옮겨왔을까?
멀리서부터 모래를 털며 걸어오는 사람을 보았다.
모래로 부서지는 이름을 보았다.
가까워지면,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의 해변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잤던 잠을 또 잤다.
꿨던 꿈을 또 꾸며 파도 소리를 듣고 있었다. 파도는 언제부터 내 몸의 모래를 다 가져갔을까?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지 않아도
나는 돌아보았다.
-신용목,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창비, 2017)
아침에 인간극장을 봤다. 치매 걸린 아버지를 모시는 효자 이야기다. 그 아버지가 그런다. 나는 열 몇 살이었는데 지금은 아흔이 넘었다고. 가짜로 나이를 먹은 건지, 가짜가 아닌지... 정확히는 아니지만 이런 말이었다. 그 아버지는 열 몇 살이던 자신이 어떻게 아흔이 된 것인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파도는 언제부터 그 노인의 몸에서 시간의 모래를 다 가져갔을까. 내 몸에는 얼마만큼의 모래가 남아 있을까. 내게서 흘러나간 모래는 다 어디로 가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