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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은 짧고, 나는 가볍게 살기로 했다
  • 조이연
  • 9,900원 (10%550)
  • 2026-08-10
  • : 90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출근길부터 피부를 찌르는 태양 빛과 밤새 식지 않는 열대야는 몸의 에너지를 고갈시킬 뿐만 아니라, 마음의 여유마저 남김없이 말려버리곤 합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도 뜨거운 가스불 앞에 서서 무언가를 조리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여름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뜨거운 열정이나 근성이 아니라, 이 무시무시한 열기로부터 나를 살려낼 최소한의 식힘입니다.


인문학과 철학을 탐구하며 일상의 언어를 고민해 온 조이연 작가는 신작 『여름은 짧고, 나는 가볍게 살기로 했다』에서 이 지독한 무더위와 삶의 과열 상태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끝없는 자기계발과 끊임없는 연결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여름 폭염은 과열된 삶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더 차려내야 하고, 더 많이 성취해야 하며, 타인과 비교하며 마음의 온도를 필요 이상으로 올리곤 합니다.


『여름은 짧고, 나는 가볍게 살기로 했다』는 푹푹 삶아지는 열기 속에서 열심히 살라는 말 대신, 자기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자원 관리를 하자고 말합니다. 불 앞에 오래 서지 않는 식탁, 약속 하나를 비워두는 여백, 화면 속 타인의 선명함에서 눈을 돌려 내 방의 그늘을 바라보는 침묵이 왜 필요한지 들려줍니다.





여름철 무더위는 몸의 기운만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반사 신경마저 둔하게 만듭니다. 타인의 미세한 어조에 쉽게 상처받고, 사소한 요청에도 과부하가 걸리는 순간, 스스로를 자책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온도 조절 장치의 고장일 뿐이라고 합니다.


에피소드 <냉장고 앞에서 한참 서 있던 날>에서는 일상에서 누구나 겪는 멍한 순간을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문을 오래 열어두면 냉기가 빠져나가듯, 마음도 너무 오래 열어두면 금방 지친다. 그러니 오늘은 하나만 꺼낸다. 가장 쉬운 것 하나, 가장 차가운 것 하나, 가장 부담 없는 것 하나. 그리고 조용히 문을 닫는다." (p.19)라는 문장이 와닿습니다.


40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서 가스불 앞에 서서 뜨거운 열기를 견디는 것은 때로 나를 돌보는 일이 아니라 나를 학대하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에피소드 <오이 하나면 되는 날>, <토마토를 써는 저녁>, <찬물에 헹군 국수 한 그릇> 등을 통해 가벼운 식사의 가치를 들려줍니다.


가볍게 먹는다는 것은

대충 산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의 나에게 맞는 무게를 고르는 일이다.

많이 차리지 않아도 나를 돌볼 수 있고,

오래 애쓰지 않아도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여름의 식탁은 그런 사실을 조용히 알려준다.

뜨거운 불 앞에 오래 서지 않아도,

나를 위한 저녁은 가능하다고.

- p6


<복숭아를 먹는 저녁>에 등장하는 부드러운 과육을 씹는 동안 마음도 함께 풀린다는 묘사를 보며 그야말로 나를 위한 에피소드인가 싶어 반가웠습니다. 시기별로 딱복, 신비복숭아, 망고복숭아 등 도장 깨기 하듯 매주 주문해 먹는 복숭아 마니아로서, 퇴근 후 복숭아를 깎아 먹는 시간이 요즘 제 일상 최고의 힐링 루틴이기도 하거든요. 복숭아 한 조각이 주는 이 달콤한 구원 앞에서는 그토록 싫었던 여름이 끝나는 것마저 아쉬워질 정도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내려놓을 때 죄책감을 느낍니다. 목표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혹은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불안 때문입니다. 저자는 <덜어낸다는 건 포기가 아니다>에서 포기와 덜어냄은 다르다는 것을 짚어줍니다. 포기는 마음을 닫는 일에 가깝지만, 덜어냄은 계속 가기 위해 손을 비우는 일에 가깝다고 말이죠.


<약속 하나를 비워둔 날>이나 <결제창을 닫는 저녁>에서 보여주는 행동들은 소극적인 회피가 아닌,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적극적인 선택입니다. 주말 일정을 빽빽하게 채우지 않고 달력에 빈칸을 남겨두는 것은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진정한 회복의 공간을 확보하는 행동입니다.





「나를 덜 힘들게 하는 정리」 에피소드에서는 정리를 미래의 나를 위한 배려라고 이야기합니다. 옷장을 열었을 때 찾는 옷이 있고,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한숨이 나오지 않고, 방 안의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물론 이런 정리가 삶을 극적으로 바꾸지는 않는다는 걸 알지만, 대신 그것만으로도 다음 날의 피로가 조금 줄어듭니다.


부록으로 수록된 '불 안 쓰는 여름 식탁 12가지'와 '장마철 마음을 말리는 문장 20개'는 여름철 몸과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는 노하우가 담겼습니다. 책을 읽으며 공감했던 태도를 바로 오늘 식탁에서 활용할 수 있고, 하루를 견디는 데 필요한 짧은 문장들을 통해 마음에도 통풍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책의 물리적 두께마저 얇고 가볍습니다. 푹푹 삶아지는 폭염 속에서 두껍고 빽빽한 책을 읽는 것조차 마음의 짐이 되곤 하는데, 이 책은 손에 쥐는 느낌부터 부담이 없습니다. 책의 부피마저 덜어낸 이 가벼움은 독서마저 과업으로 만들지 말라는 다정한 배려처럼 느껴집니다.


『여름은 짧고, 나는 가볍게 살기로 했다』는 여름이라는 특정 계절을 다루고 있지만, 실상은 폭염처럼 과열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365일 생존 안내서입니다. 삶이 무겁고 과도하게 느껴질 때 필요한 것은 더 높은 열정과 노력이 아니라, 내 삶의 무게를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조이연 작가는 인문학적 사유를 차가운 오이 한 토막, 얼음물 한 잔이라는 일상의 감각으로 들려줍니다. 번거로운 형식과 무거운 타인의 시선을 털어내고, 나만의 작은 식탁 앞에서 스스로의 온도를 되찾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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